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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Sep 28. 2015

#09 마라 평원에 내리는 비

수, 묵, 담, 채

웬만한 조각구름은 마라 평원의 하늘을 한 번에 다 덥지 못한다. 그래서 마라의 어느 한켠은 작렬하는 태양에 타들어 가는데 또 다른 한켠은 시원스러운 비에 촉촉히 젖기도 한다. 게다가 그 광활한 공간이 장애물 하나 없이 탁 트여 있다 보니 눈만 돌려도 마라 분지 구석 구석에서 벌어지는 기상현상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의자를 몇 발짝만 뒤로 물려 놓기만 해도 다시 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산등성이에 앉아 평원 반대편에 쏟아지는 폭우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그 경이로운 광경에 순간 넋을 잃고 만다.  

마라 평원 한켠에 쏟아지는 폭우

평원으로 내려와서 크루저를 타고 다니다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비가 쏟아지는 광경을 목격할 때도 있다. 이런 비는 또 그 나름 대로의 운치가 있다. 원근(遠近)에 따라 사물에 농담(濃淡)을 주어 풍경에 깊이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마라 평원의 풍경에서는 신비로움 마저 묻어 난다.

비가 만드는 수묵담채화

그 광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고개를 들면 농묵(濃墨)의 장막을 높다랗게 친 먹구름이 어느새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얼른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 삼각대를 접어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부리나케 크루저로 뛰어 들어 비가 들이치지 않게 창문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으면 주위는 금세 어두워 지고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던 소음은 점점 커져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요란스러운 빗소리가 된다.


마라 평원 한 가운데서 그 소리를 들으며 크루저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진다. 평원의 모든 것들이 비에 흠씬 젖고 있지만 나는 아직 보송보송 하다는 안도감 일까? 마루에 누워 함석 처마 위에 떨어지는 장맛비소리를 가만히 듣곤 했던 어릴 적 기억 때문일까?  


그렇게 크루저의 지붕 밑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보면, 농묵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어느새 맑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마라 평원에 떨어진 빗물은 모여 마라 생태계의 젖줄, 마라강(江)을 이룬다. 마라가 가진 질긴 생명력의 원천은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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