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룰롤로 가는 길에서 목격한 트럭과 코끼리의 충돌사고는 케냐가 직면한 개발과 야생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03 올룰롤로 가는 길: 지뢰밭의 코끼리). 케냐의 많은 야생동물들은 개발의 그늘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높은 경제 성장률과 인구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는 케냐에서 개발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고 개발과 야생의 충돌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호구역 밖의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마사이 마라 보호구역 내의 동물들도 개발이익을 노리는 이해집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미 보호구역 주변은 늘어나는 인구와 경작지로 지역 주민과 야생동물 또 이를 보호하려는 정부와 야생동물보호단체 간의 갈등이 첨예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도 없지 않다. 2014년 나록자치구 정부는 매년 마사이 마라에서 나오는 관광수입의 19%를 기부해 '마사이 마라 지역개발 기금(Maasai Mara Community Development Funds: MMCDF)'을 조성하고 이를 지역주민의 복지 향상과 개발 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부패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공정한 부의 분배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MMCDF가 보호구 주면 인구 증가를 오히려 촉진하고 개발 기회비용을 상승시켜 결과적으로 보호구역 주변의 야생과 인간과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그러나 누가 이들에게 개발을 중단하라 말할 수 있나? 대륙을 휘젓고 다니며 대이동하던 어메리칸 버펄로들을 대부분 죽이고 국립공원에 몰아 넣어 꼼짝 못하게 만든 미국이나, 대륙 전체에서 곰과 늑대의 씨를 완전히 말린 유럽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마을에 멧돼지만 나타나도 바로 사살해 버리는 우리나라다 (#03 올룰롤로 가는 길: 지뢰밭의 코끼리 참조).
2005년 네이처 논문에 따르면 1990년부터 사자에게 희생된 사람은 탄자니아에서만도 563명에 이른다 (Packer et al., 2005). 매년 아프리카에서만 100명 이상이 사자에게 희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주민들의 눈으로 본 마사이 마라 보호구역은 부패한 정부와 유착된 일부 지역유지들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며, 야생동물 보호를 통해 자신 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로 인해 늘어나는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뿐인 것이다.
케냐인들에게 생물다양성 보호의 책임을 다 떠안고 원시시대로 돌아가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마사이 마라를 문명 이전의,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preservation)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인간의 능동적인 보전(conservation) 노력을 통한 문명과 야생의 공존을 모색하는 길 밖에는 없다. 두 가지 극단적인 보전 전략을 생각해 보자:
(1) (성공한) 쥬라기 월드 모델.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출입을 완벽히 통제하고 인간이 능동적으로 야생동물을 관리한다. 야생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극적으로 관광수입을 발생시키고 이를 보전사업에 재 투자한다. 인간이 생태계를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다.
(2) 자유 방임형 모델. 최소한의 보전활동만을 수행하고 야생동물과 인간이 알아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배우도록 한다. 주변지역의 주민이 계속해서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를 입으면 알아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이고, 야생동물들도 지역주민들에게 보복을 당하다 보면 알아서 민가를 피할 것이라는 낙관적 가정이 깔려있다.
두 극단적인 모델 모두 실현 가능성이 적다.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실현 가능한 방법은 아마도 이 두 극단적인 모델 사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모델은 두 번째, 자유 방임형에 가깝다. 그러나 조금씩 적극적 통제 모델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
여기서 질문: 보호구 주변에 그냥 울타리를 치면 안 되나요?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가 제주도 80% 면적인데 울타리? 일견 터무니없는 발상인 것 같다. 정말 그럴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근 연구를 보면 기존의 장벽이나 담과 같은 장애물로 만든 울타리 대신 소리, 냄새, 빛 등 야생동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무형의 생태 울타리를 통해 야생동물의 접근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Hayward et al., 2009; Dickman, 2012).
비용은 어떤가? 한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사자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막으면서 울타리 내 사자의 번식을 저해하지 않는 데는 평방 킬로미터당 미화 $500 가량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Packer et el., 2013). 그렇다면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가 1,500 평방킬로미터 (#02 마사이 마라는 어떤 곳인가? 참조)이니 $750,000, 우리 돈으로 8-9억 원이면 보호구 전체를 울타리로 보호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렝게티-마라 생태계 전체 면적인 25,000 평방킬로미터 모두를 커버한다 해도 1,25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0억 원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마라-세렝케티의 관광 수입과 보호 가치를 감안하면 결코 터무니없는 비용도 아니다. 실제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한 일본인 사업가가 마사이 마라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20km 밖으로 이주시키는 조건으로 2.35억 파운드, 약 3억 달러(약 4,000억 원)를 기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첫째, 그 돈으로 강제이주가 쉽지도 않고 되레 주민과의 갈등, 인권문제만 더 키울 뿐이다. 둘째, 그렇게 해 봐야 똑 같은 문제가 이제 20km 밖에서 벌어질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셋째, 그 돈의 400분의 1도 안 되는 돈, 즉 한 달 이자만큼의 돈이면 마사이 마라 전체에 울타리 설치가 가능하다.
야생동물의 습성을 고려한 생태 울타리가 생각처럼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 더해서 마사이 마라를 지속적으로 유지, 보전하려는 노력과 재원이 더 필요하다. 아직은 이 같은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
그러나 앞으로 이러한 노력은 케냐만의 부담이 아니라 국제사회 모두의 책임이 될 길이 열리고 있다.
올해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프랑스 파리에선 유엔 기후변화 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가 열린다. 여기에선 앞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져야 할 책임과 이를 어떻게 각국에 할당할 것인가가 논의될 것이다. 곧 기후변화 국제협상이다.
생태 문제에 관해서도 지난 2013년 '생물다양성과 생태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플랫폼 (Intergovernmental Platform on Biodiversity and Ecosystem Services; IPBES)'이 105개 회원국 정부 대표를 모아 첫 회의를 가졌다. 기후변화로 말하자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이나 마찬가지인 기구다.
IPBES가 출범했다는 것은 가까운 미래에 생태서비스도 국제협상을 통해 각국의 책임과 의무가 결정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서비스도 국제협상을 통해 <국가적으로 책정된 기여 의도>, INDC(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각국이 생물다양성 보호와 생태서비스를 위한 분담금과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국제사회에 약속하는 것이다.
물론 국내 생태 서비스와 생물종 다양성 보호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도 국제 생태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세계가 요구하는 우리 몫도 찾아야 할 것이다.
마사이 마라는 생태계의 질긴 생명력과 생명의 경이로움과 경외감을 깊이 느끼게 해 주었다. 또한 이 곳을 꼭 지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앞으로 지상 동물의 낙원 마라 평원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 개발, 인권, 보전, 부패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있어 더욱 그렇다. 마라 평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보다도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먼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노력과 관심이 절실한 일이라는 인식이 아닐까 한다.
Dickman, Chris R. "Fences or ferals? Benefits and costs of conservation fencing in Australia." Fencing for Conservation. Springer New York, 2012. 43-63.
Hayward, Matt W., and Graham IH Kerley. "Fencing for conservation: Restriction of evolutionary potential or a riposte to threatening processes?."Biological Conservation 142.1 (2009): 1-13.
Packer, Craig, et al. "Conservation biology: lion attacks on humans in Tanzania." Nature 436.7053 (2005): 927-928.
Packer, Craig, et al. "Conserving large carnivores: dollars and fence." Ecology letters 16.5 (2013): 635-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