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 창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상원 Sangwon Suh Dec 19. 2016

우리가 이해충돌과 부패문제에 대처하는 방식

우리는 조만간 다시 거리로 나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기 감옥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감옥의 문은 고장이 나 잠기지 않고 항상 열려 있습니다. 눈치를 보던 죄수들은 열린 감옥문을 통해 하나둘씩 유유히 탈옥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 감옥의 간수들은 이렇게 푸념합니다:

탈옥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또 탈옥하다니!

이 감옥의 간수들은 감옥문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죄수들의 준법정신 부족만을 탓하고 있습니다.


여기 작은 어촌이 하나 있습니다. 이 마을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제도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생선의 관리는 고양이에게 맡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마을은 오래전부터 생선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생선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럴 때마다 이 마을은 회의를 열고 생선 관리 부실의 책임을 물어 현직에 있는 책임 고양이를 경질하고 신임 고양이를 앉힙니다. 그런데도 이 마을의 생선 관리 부실 문제는 좀처럼 사라질 줄 모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죄수들의 준법정신과 생선관리 고양이의 양심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고장 난 감옥문을 고치지 않는 간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제도가 문제입니까?


우리 사회가 부패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부패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국민은 분노하고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면 부패 문제는 계속 대물림될 것이고, 우리 국민은 조만간 다시 거리로 나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해상충

부패된 사회에서 열린 감옥문,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제도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이해상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충돌'이라고도 하지요. 영어로는 'Conflict of Interest'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빈번히 쓰이는 편이라, 줄여 'COI'라고도 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봤는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다음 국어사전,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이해상충'이나 '이해충돌'이 나와있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국내 언론에서 '이해상충'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해상충'에 대한 이해가 보편화되어있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Merriam-Webster사전은 '이해상충'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공적 의무와 사적 이익 간 마찰 (a conflict between the private interests and the official responsibilities of a person in a position of trust)


'이해상충'은 우리가 자주 쓰는 '공사(公私)를 구분 못한다'라는 표현과 비슷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해상충'은 공적 의무와 사적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공사 구분'은 공적 의무 대신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지요. 왜 '행위' 보다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할까요?


인간은 이해충돌 상황이 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능한 나 자신,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 내 가족, 내 친구, 내 선후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공사를 구분 못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하는 것부터 원천적으로 뿌리 뽑아야 합니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충돌 상황에 그대로 노출되는 시스템은 놔두고 그들의 행위와 도덕성만을 탓하는 것은 열려있는 감옥문은 놔두고 그리로 유유히 탈옥하는 죄수들의 준법정신 부재만을 탓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해충돌의 예방과 공개

미국에서는 큰 이권에 개입할 소지가 그다지 많지 않은 저와 같은 대학의 교수나 연구자도 이해충돌에 대한 교육을 받고 연구 수임, 제안서 심사 등의 과정에 이해충돌 상황이 있는지를 사전에 담당기관에 보고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으로부터 위탁연구과제를 수임하기 전 연구 책임자가 해당 기업으로부터 식사, 여행경비, 강의료, 컨설팅 계약 같은 금전 또는 현물 지원을 받은 적은 없는지, 또는 연구 책임자가 해당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사전에 대학 측에 보고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또한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게재할 때도 저자는 연구비의 출처를 명시하고 연구내용과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정부의 국책사업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제출된 제안서를 심사할 때도 금전적 이해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심사대상 제안서를 작성한 연구자와 지난 5년간 공동연구를 진행한 사실만 있어도 해당 제안서 심사에서 배제됩니다. 개인적 이해관계나 동료 간의 친분이 공정한 연구, 공정한 과제심사라는 연구자의 의무와 상충되는 상황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만약 이러한 이해관계, 이해상충 상황을 미리 보고하지 않고 연구 수임과 제안서 심사를 진행했다면 설령 이러한 이해관계가 그 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처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부패 문제를 척결하려면 이해상충 상황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이를 사전에 공개하도록 하며 조장, 은폐, 방조할 경우 의사결정에 미친 영향과는 상관없이 처벌하는 강력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해상충 방지와 공개에 관한 법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부패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이해상충

이제까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분들이 얼마나 각종 이해충돌 상황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해충돌 백화점이라 해야 할 것 같더군요.


차병원의 경우를 볼까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소하 의원실이 작성한 자료를 보면 차병원은 현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많은 혜택을 받을 수도 있고 큰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더군요.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영리 목적 의료서비스가 허가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였고, 차병원 계열의 '차의과대학'은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의 규제완화를 복지부에 요구했으며,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면 국고지원도 받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정부가 해결해 줬으면 하는 대형 '민원'이 많았다는 얘기지요.

 

이 경우 정부의 공공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차병원과 이해관계로 얽히게 되면 이해상충 상황이 성립되는 것이죠. 따라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정부의 공정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차병원과 이해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했음은 물론, 만약 이전부터 지속된 이해관계가 있었다면 이를 조속히 청산하고 소상히 공개함으로써 필요하다면 본인이 공공의사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 있도록 신속히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차병원 계열사인 차움병원에서 1억 5000만 원짜리 VIP 회원권을 사실상 무상으로 양도받고 각종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했습니다. 차병원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무슨 이유에서 인지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대통령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였고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1/4 가격에 차병원 계열 일본 병원에서 국내에서는 불법인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으며,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와 그 가족들은 수백 회의 고가(高價) 주사제 처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부 업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실세가 '민원인'으로부터 개인적인 향응을 장기간 무상 또는 저가로 제공받은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던가요?


다른 모든 의혹을 다 떠나서 국정운영에 책임이 있고 정책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그 최측근이 그 혜택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이해당사자로부터 일반인이 쉽게 받을 수 없는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장기간 제공받았고 이러한 이해관계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했다는 것 그 자체, 즉 이해충돌 상황이 조성되는 것을 피하거나 기존의 이해관계 사실을 공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은폐하고 방조했다는 것부터가 정부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입니다. 차병원이 그렇게 해서 결국 특혜를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특혜를 받았다면 얼마나 큰 특혜인지, 또 그러한 결정에 대가성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러한 것들은 둘째 문제입니다. 대가성이나 특혜가 없었더라도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명백한 이해상충 상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이를 은폐, 방조한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이 가능해야 합니다.


이해상충 상황 가담, 은폐, 방조의 문제는 대통령이 대기업으로 부터 특수관계자가 사실상 소유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지원금을 낼 것을 종용한 상황,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자를 만나 특수관계자인 정유라씨에게 승마관련 지원을 요청한 상황, 주요 정부 인사에 특수관계자가 특정 인물을 천거하거나 인사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한 상황, 이화여대에서 학사관리와 입학허가를 책임진 분들이 권력실세로 추정되는 인물의 가족에게 학점관리와 입학 편의를 제공한 사실 등 이제까지의 탐사보도, 검찰수사, 청문회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수많은 상황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가성 여부를 떠나서 말입니다.


대가성 여부

물론 이러한 이해상충 상황이 '상황'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비 동결 난자 사용을 허가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복지부는 그로부터 2개월 만에 차병원 측이 제출한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계획’을 조건부 승인했습니다. 대통령은 아주 이례적으로 차병원 소유의 연구소인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대통령 업무보고를 받음으로 관련 담당자들에게 본인의 의중과 차병원이 '특수관계자임'을 내비쳤습니다. 또한 차병원은 190억 원이 넘는 국고 지원도 받았고, 바라던 의료서비스 영리화도 이루어졌습니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모두 차병원 측에 혜택이 가는 결정들이었습니다. 우연일까요?

지난 1월 18일 차병원 계열 연구소인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개최된 대통령 정무업무보고 (자료: 청와대)
JTBC 손석희 앵커의 차움병원 정부지원 보도. 화면 캡쳐.

물론 청와대는 이 과정에 대가성은 전혀 없었고 모두 정상적인 법과 절차를 통해, 또 공익을 위해 진행됐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대가성을 따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잘 알려진 대로 대가성이나 이들 사건 간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왔다면, 또 그 대상이 인사권과 정보권을 모두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누가 봐도 이런 상황에서 무대 뒤에서 일어날 일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가성보다는 이해충돌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김영란 법과 이해충돌

우리나라에도 이해충돌 상황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 있습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흔히 말하는 '김영란 법'이지요. 김영란 법은 공직자와 언론사, 사립학교, 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 사진 등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기준을 초과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각종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우리 사회에서 책임 있는 직책에 있는 분들에 대한 향응은 이해상충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이지요. 합헌 결정을 낸 헌법재판소도 이 법이 공익에 기여하는 바가 그 사회적 비용보다 월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영란 전 대법관

김영란 법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직무관련성이 전혀 없더라도 일회 100만 원, 누적 연 300만 원을 넘는 선물이나 이에 상당하는 서비스를 해당 법 적용 대상자와 주고받으면 처벌 받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각종 민원 해결은 물론 대기업 경영진 인사에 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기업으로부터 774억을 뜯어내고, 각종 이권을 챙겨줄 수 있는 위치에서 수억 원대의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챙긴 대통령과 그 최 측근들. 그러나 그들은 검찰 조사, 국정조사, 헌법재판소에 보낸 답변서에서 모두 대가성이 없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더군요. 밥 한 끼에도 이해충돌 상황을 피해야 하는 국민들. 명백한 이해충돌 상황에서 수억, 수백억 원이 오가도 아무 문제없다는 이들. 이 상황을 과연 국민이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요?


꼭 필요한 어휘, 이해상충

고도로 복잡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부패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려 하면 답이 없습니다. 엄밀한 공직 수행의 의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하고 이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대가성보다는 이해충돌 상황의 조성, 유지, 방치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고 이것만을 근거로 해서 기소하고 처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부패 문제가 그 형태를 바꿔 계속해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상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도 이해충돌 상황의 위험성과 해악을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해충돌'이나 '이해상충'이라는 단어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항상 숙지하고 있는 실용 단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회 곳곳에서 공공성이 위협받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혹시 예방하지 못한 이해충돌 상황이 있다면 이를 신속히 파악해 공공성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가성을 증명할 수 없더라도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명백한 이해상충 상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이를 은폐, 방조한 것만으로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상원 (캘리포니아대학교 환경과학경영대학원 교수)


매거진의 이전글 400년 전 한 장의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