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 창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상원 Sangwon Suh Feb 19. 2016

400년 전 한 장의 편지

이 편지를 보시고 제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1998년 경북 안동 택지 개발 현장. 분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잘 보존된 유골과 함께 "원이 아버님께 [...]"로 시작하는 한글 편지가 한 장 발견된다.

원이 엄마의 편지
[...] 당신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그런데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셨나요? [...] 함께 누우면, “여보,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 같을까요?”라고 당신에게 말하곤 했는데,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 이런 천지가 온통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있을 뿐이니 아무래도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이 편지 보신 말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써서 넣습니다. [...] 이 편지를 보시고 제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저는 꿈에서 당신 볼 것을 믿고 있나이다. 몰래와 보소서. [...] 병술(1586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아내가

이 글이  발견된 후 고성 이씨(固城 李氏) 세보를 통해 이 분묘가 어린 아들 원이와 임신한 아내를 남기고 만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응태(李應台, 1556~1586)의 것으로 밝혀졌다. 임진왜란이 1592년이니 원이 아빠는 임난 직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종이가 비쌌던 당시 종이를 한 장 밖에 못 얻은 그의 아내가 입관할 때 떠나는 남편에게 주려고 여백까지 빼꼭히 채워 쓴 글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애절함, 원망, 꿈에서라도 남편을 꼭 보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아내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베어 난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꿈에 나타나 달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한다.


이 편지와 함께 머리카락과 삼으로 엮은 미투리(짚신)가 발견되었다. 미투리를 싼 종이에 "이 신 신어 보지도 못하고 [...]"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원이 어머니가 몸져누운 남편의 쾌유를 빌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엮어 신을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부장품으로 발견된 미투리

사랑...


수 백 년이 지났지만 이 편지와 미투리는 원이 엄마의 간절한 사랑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수신인은 이미 망자가 되었으니 400년 후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 이 한글 편지는 아마 글 쓴이 외에는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한 여인의 비밀을 고이 간직하고 남편 곁을 지키던 이 편지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을 막 잃고 입관 전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원이 엄마의 내면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과연 그날 밤 원이 엄마의 꿈엔 그토록 꿈에서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던 남편이 나타났을까?


한글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에 그 날 원이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절망 스런 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한 장의 아름다운 편지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남들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이 편지에 담아 절실했던 위로를 구했으리라. 글로 옮김으로써 우리는 감정의 폭풍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내면을 잠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상황을 조금은 객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또 누구나 쉽게 쓰고, 읽고, 공감할 수 있는 한글이 있다는 것,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한글 편지가 없었다면 아마도 원이 엄마의 애절한 심정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벌써 오래전에 잊혔을 것이다. 글이 전하는 시대를 초월한 공감의 힘, 한글에 대한 고마움, 사랑의 의미, 부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이 편지를 처음 접하고 깜짝 놀랐다. 가슴 뭉클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감정의 표현, 과거 회상에 대한 묘사, 평이한 구어체의 문장 등이 너무나도 현대적이었기 때문이다. 1586년이라면 영국의 셰익스피어(1564?~1616)가 활동하던 시기다. 이 시기에 쓰인 글들은 대체로 고문(古文)을 현대어로 번역해 놔도 표현, 수사법, 서술 방식 등에서 시대적 이질감이 금방 느껴진다. 그러나 원이 엄마의 편지는 문어체 표현, 상투적, 형식적 문구가 없고, 그냥 대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아마도 당시 한글의 쓰임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는 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한글이 없어 이 내용을 한문으로 적어야 했다면 어땠을까? 이처럼 쉬운 대화체가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편지를 통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구어(口語)와 그것이 표현하는 정서가 높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편지는 발견 당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대학원에 있었을  때였는데 이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옛 한글 서간을 수집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미국 저명 고고학 학술지인 Archaeology에 "Korean Love Affair"란 제목으로 2011년에  소개되어 외국에도 알려졌고 안동에서는 원이 엄마 동상과 공원도 조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국립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편지 원본, 미투리와 함께 발견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에 안동을 지날 일 있으면 한 번 들려 봐야겠다.


관련 링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