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 창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상원 Sangwon Suh Dec 17. 2015

일상 속 글 쓰기의 행복

오늘부터 글을 써보자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읽고 쓸 줄 모르셨다. 어린 나와 내 동생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보시며 한글을 배우셨는데 그렇게 한글을 깨치신 후에는 글씨가 큼지막한 책도 읽으시고 라벨 대신 반창고에다 물건들의 이름을 써 붙여 넣으시면서 뿌듯해하셨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 소중함과 즐거움을 잊고 산다.


작가 지망생이라야, 타고난 글재주가 있어야만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깨알 같은 행복, 불현듯 떠오른 생각, 팍팍한 삶이 주는 좌절감 속에서도 얼마든지 글감을 찾아 누구나 글쓰기가 주는 위로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독자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나 자신만을 위한 글도 좋고,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글 이라라도 상관없다. 화려하고 멋들어진 글일 필요도 없고, 고상한 주제일 필요는 더욱 없다.


왜 글 쓰기 인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은 그 허점을 교묘히 감추는 재주가 있다. 글이라는 몸뚱이를 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생각은 그 허물을 드러낸다. 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제도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면 어지간히 애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면 머릿속에만 있을 때는 알아채지 못했던 논리의 비약이나 근거의 부족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막연하고 허술한 생각의 허점을 드러내 야무지고, 날카롭고, 치밀한 생각으로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글은 느리고 깊은 생각을 담아내는데 제격이다. 나는 생각이 느린 편이다. 그래서 대화중에 내 생각을 그때그때 표현하지 못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글을 쓸 때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천천히 생각할 수 있어 좋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퇴고(推敲)의 기회가 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하는 생각, 느린 생각은 역시 글로 적는 것이 좋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뜯어볼 기회, 삶을 돌아보고 음미할 수 있는 여유도 제공한다. 글 쓰는 시간은 바쁜 일상에서 벋어나 잠시 추억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기는 감정일지(emotion log)는 막연한 부정적 사고의 악순환을 끊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잘만 활용하면 글쓰기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마음을 가꾸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을 찍는 카메라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면 카메라를 처음 장만해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사진을 찍듯 글을 써보자. 카메라가 사물의 외형을 담아낸다면 글은 사람의 내면을 담아낸다. 나의 내면, 사유의 공간을 떠도는 이런저런 생각 조각들에 글 쓰기 카메라를 들이대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라는 에세이를 보면서 어찌보면서 하찮을 정도의 작은 경험, 찰나의 느낌에서도 그럴듯한 글감을 발견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면모에 감동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글감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글감을 글감으로 보게하는 작가의 감성, 작가의 눈이다. 사실 전문 작가가 아닌 대다수의 우리에게 현실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의 싹이 돋으면 이를 열심히 잘라내도록 자신을 훈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이 메마른 삶에선  글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마음에 고이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수 있을 때 글감은 제 모습을 하나 둘씩 드러낸다.


글감을 찾았다면 무작정 글을 써 보자. 시작도 하기전에 기승전결이니 수미쌍관이니 하는 이론이나 기술부터 따질 필요는 없다. 경험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글로 써내려가면 그만이다. 그렇게 쓴 글들을 묵혀 두었다가 가끔씩 들춰보면 '아, 내가 그때 이런 생각도 했구나!'할 때가 있다. 가끔은 20대의 나와 다시 만나 시답지 않은 고민을 들어줘야 하기도 한다. 오래된 앨범을 보면 '아, 그때 그랬지!' 하며 웃음 짓게 되는 것처럼 가끔 꺼내 읽는 묵힌 글들은 신선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생각 앨범'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일단 생각을 만족스럽게 글로 옮겼다면 얼마나 많은 이가 내 글을 읽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하는 글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다. 그러나 글쓰기의 수혜자는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이다. 글이 쓰이는 과정에서 글은 제 효용을 다 베푼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으로 내 글을 읽어 줬다면 그 글은 이미 제 몫보다 더 큰 값어치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즐거운 글 쓰기

생각을 글로 담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한 지 350만 년이 지났지만 문자를 사용한 것은 고작 최근 5,000 년 전의 일이라니 그럴  수밖에. 인류는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인 셈이다. 그래서 여간해서는 고민 없이 후딱 쓰이는 글이 별로 없다. 머릿속 생각을 글이라는 몸뚱이로 끄집어내는 데는 어김없이 산고(産苦)가 따른다.


그래서 나는 글 쓰는 시간 만큼은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고, 커피를 내리거나 차를 한잔 우리는 여유를 부린다. 글쓰기가 직업이 아니라면 굳이 글을 쓰면서 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뭐있나? 글쓰기는 물론이거니와 그 산고마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음미해줘야 마땅하다.


그때그때 스쳐 지나는 생각과 감정을 포착해 글로 담아내는 일상 속 글쓰기. 오늘부터 소소한 일상 속 글쓰기에서 삶의 위로와 행복을 찾아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