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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Feb 21. 2016

별들의 마지막 인사

별들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그냥 잊혀지기 싫은 모양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당신에겐 수십 억년 전 별들이 보낸 작별인사가 끊임없이 도착하고 있답니다. 우주선(cosmic ray;  宇宙線)이지요. 배 선(船) 자를 쓰는, 타고 다니는 '우주선(spaceship, 宇宙船)'이 아니라 '광선(光線)'할 때 쓰는, 줄기 선(線) 자의 우주선(宇宙線) 말입니다.  


일정 크기의 별은 수명이 다하면 제 질량에 스스로 무너져 폭발하거나, 이미 퇴화된 별이 다시 핵융합이 가능한 온도에 도달해 폭발함으로써 그 일생을 마감한답니다. 수퍼노바(supernova), 즉 초신성 폭발이라고 하지요. 우리 은하계에서만도 백 년에 평균 2번 정도의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외부로 방출되는데, 그때 양자나 원자핵과 같은 입자가 강력한 에너지를 싣고 머나먼 우주로 기약 없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죠. 이 입자들이 우주선 이랍니다.  

약 3,000 만 광년 떨어진 물고기자리의 나선은하(Messier 74)에서 관측된 초신성 폭발 (SN 2013ej). 11시 방향 깜빡이는 점이 폭발 전과 후의 모습입니다.

긴 시간을 '억겁(億劫)의 시간'이라고들 하죠? 1겁(劫)이 1억 년이라네요.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 즉 138겁이네요. 생각해 보세요, 수십 겁 전 광활한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서 초신성 폭발과 함께 별 하나가 그 생을 마감합니다. 별 하나가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터져서는 완전히 우주에서 자취를 감추는 거죠.


케플러 망원켱이 사상 최초로 포착한 초신성 폭발순간. 우주선은 13.5초 부근 섬광과 함께 우주여행을 시작한답니다 (2016년 3월 22일 NASA)

그런데 이 별들은 지구 같이 작은 행성도 아니고, 별 중에서도 웬만한 별보다 훨씬 무거운 거대질량 별(massive star)이란 말이에요. 얼마나 대단한 녀석들이냐고요? 태양의 부피는 지구의 부피보다 130만 배 크다고 해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거죠. 그런데 거대질량 별은 태양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나 더 무겁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왕년에 무게 좀 잡았다는 별들인데, 안타깝게도 수명이 수 백만 년 밖에 안된답니다. 물론 우리 인간에 비하면 무지 길지만 이 광활한 우주, 장대한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거대질량 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지는 티끌 같은 존재일 뿐이죠. 그렇게 사라지고 나면 그 별이 거기 있었다는 걸 누가 알기나 하겠어요?


거대질량 별들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그냥 잊혀지기 싫은 모양입니다. 우주 저편에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와 그 마지막 순간을 알리고 싶은 거죠. 어떻게 알릴까요? 거대질량 별은 글을 쓸 줄 모르니 에너지를 듬뿍 담은 우주선을 띄워 자신의 마지막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널리 알리는 거예요. 나 이렇게 장렬하게 간다고. 짧았지만 멋지게 살다가, 남은 몸뚱이 눈이 부시게 밝은 빛으로 다 태우고, 이제 영영 간다고.

약 5,000만 광년 떨어진 처녀자리의 NGC 5426은하 부근 초신성 폭발 (SN1994D). 하단 8시 방향 밝은 점이 초신성. 허블 우주 망원경 사진.

그 장렬한 죽음의 파편이 수십 겁 고독한 우주여행을 마치고 인간들이 사는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는 겁니다. 지구에 다다르지 못하고 목성이나 화성에 떨어졌다면, 아니면 태양계를 아쉽게 비껴갔다면 어땠을까요? 멀고 고단한 여행을 마친 우주선의 수고, 불꽃같이 살다 간 거대질량 별의 최후를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나마 지구로 들어와 안개상자에라도 도달해야 우주선도 비로소 우리에게 별들의 작별인사를 고하고, 수십 겁 동안 우주를 가로질렀던 고단한 여행을 평화롭게 마감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마땅히


그래, 너 참 수고 많았다. 그 오랜 시간동안 적막하고 광활한 우주를 쉬지 않고 홀로 날아오느라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니? 너를 보내고 사라진 별들처럼 이제 너도 고이 잠들려무나.  


이렇게 격려와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줘야하지 않겠어요?


거대한 초신성 마저도 잠시 한 번 깜빡이고 마는 반딧불이처럼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우주. 오늘 밤엔 별들을 보면서 우주 어느 구석에서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사라진 거대질량 별들과 그들의 작별인사를 전하러 우주를 가로질러 우리 품으로 막 날아든 우주선들에게, 또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쓸쓸히 사라져 버린 다른 모든 것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요?

Stars Above Haleakala, Haleakala National Park, Maui, HI by Daintyheart (cc-by-2.0)


아, 안개상자(cloud chamber)가 뭐냐고요? 우주선들과 이들이 대기 중 입자와 부딪혀 부서진 파편들은 너무 작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답니다. 너무 작아 우리 몸도 그냥 투과해 버리죠. 다행히 얘네들을 확인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안개상자랍니다.


응결점 부근의 과포화된 알코올 증기 사이로 전하를 띤 입자가 지나가면 주변 입자들이 이온화되면서 알코올이 순간적으로 응결되기 때문에 우주선이 지나가면 그 자리에 흰색의 자취를 남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흰색의 자취는 우주선은 아니고 우주선이 지나가는 모습을 응결된 알코올 구름이 보여주는 거죠. 손바닥 만한 안개상자라도 수없이 많은 우주선과 그 파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러토리움(Exploratorium)에 있는 안개상자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걸 구경하느라 그만 한 나절을 다 보냈답니다.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러토리움의 안개상자. 흰색 선이 여러 우주선과 이들의 충돌로 발생하는 파편들의 자취입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 전하, 질량에 따라 여러 궤적을 보입니다.

안개상자는  드라이아이스와 알코올, 수조만 가지고 집에서도 만들 수 있어요. 아래 링크를 보세요.

집에서 만드는 안개상자

별이 가득한 산타바바라 하늘 아래, 서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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