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그냥 잊혀지기 싫은 모양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당신에겐 수십 억년 전 별들이 보낸 작별인사가 끊임없이 도착하고 있답니다. 우주선(cosmic ray; 宇宙線)이지요. 배 선(船) 자를 쓰는, 타고 다니는 '우주선(spaceship, 宇宙船)'이 아니라 '광선(光線)'할 때 쓰는, 줄기 선(線) 자의 우주선(宇宙線) 말입니다.
일정 크기의 별은 수명이 다하면 제 질량에 스스로 무너져 폭발하거나, 이미 퇴화된 별이 다시 핵융합이 가능한 온도에 도달해 폭발함으로써 그 일생을 마감한답니다. 수퍼노바(supernova), 즉 초신성 폭발이라고 하지요. 우리 은하계에서만도 백 년에 평균 2번 정도의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외부로 방출되는데, 그때 양자나 원자핵과 같은 입자가 강력한 에너지를 싣고 머나먼 우주로 기약 없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죠. 이 입자들이 우주선 이랍니다.
긴 시간을 '억겁(億劫)의 시간'이라고들 하죠? 1겁(劫)이 1억 년이라네요.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 즉 138겁이네요. 생각해 보세요, 수십 겁 전 광활한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서 초신성 폭발과 함께 별 하나가 그 생을 마감합니다. 별 하나가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터져서는 완전히 우주에서 자취를 감추는 거죠.
그런데 이 별들은 지구 같이 작은 행성도 아니고, 별 중에서도 웬만한 별보다 훨씬 무거운 거대질량 별(massive star)이란 말이에요. 얼마나 대단한 녀석들이냐고요? 태양의 부피는 지구의 부피보다 130만 배 크다고 해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거죠. 그런데 거대질량 별은 태양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나 더 무겁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왕년에 무게 좀 잡았다는 별들인데, 안타깝게도 수명이 수 백만 년 밖에 안된답니다. 물론 우리 인간에 비하면 무지 길지만 이 광활한 우주, 장대한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거대질량 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지는 티끌 같은 존재일 뿐이죠. 그렇게 사라지고 나면 그 별이 거기 있었다는 걸 누가 알기나 하겠어요?
거대질량 별들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그냥 잊혀지기 싫은 모양입니다. 우주 저편에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와 그 마지막 순간을 알리고 싶은 거죠. 어떻게 알릴까요? 거대질량 별은 글을 쓸 줄 모르니 에너지를 듬뿍 담은 우주선을 띄워 자신의 마지막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널리 알리는 거예요. 나 이렇게 장렬하게 간다고. 짧았지만 멋지게 살다가, 남은 몸뚱이 눈이 부시게 밝은 빛으로 다 태우고, 이제 영영 간다고.
그 장렬한 죽음의 파편이 수십 겁 고독한 우주여행을 마치고 인간들이 사는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는 겁니다. 지구에 다다르지 못하고 목성이나 화성에 떨어졌다면, 아니면 태양계를 아쉽게 비껴갔다면 어땠을까요? 멀고 고단한 여행을 마친 우주선의 수고, 불꽃같이 살다 간 거대질량 별의 최후를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나마 지구로 들어와 안개상자에라도 도달해야 우주선도 비로소 우리에게 별들의 작별인사를 고하고, 수십 겁 동안 우주를 가로질렀던 고단한 여행을 평화롭게 마감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마땅히
그래, 너 참 수고 많았다. 그 오랜 시간동안 적막하고 광활한 우주를 쉬지 않고 홀로 날아오느라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니? 너를 보내고 사라진 별들처럼 이제 너도 고이 잠들려무나.
이렇게 격려와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줘야하지 않겠어요?
거대한 초신성 마저도 잠시 한 번 깜빡이고 마는 반딧불이처럼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우주. 오늘 밤엔 별들을 보면서 우주 어느 구석에서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사라진 거대질량 별들과 그들의 작별인사를 전하러 우주를 가로질러 우리 품으로 막 날아든 우주선들에게, 또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쓸쓸히 사라져 버린 다른 모든 것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요?
아, 안개상자(cloud chamber)가 뭐냐고요? 우주선들과 이들이 대기 중 입자와 부딪혀 부서진 파편들은 너무 작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답니다. 너무 작아 우리 몸도 그냥 투과해 버리죠. 다행히 얘네들을 확인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안개상자랍니다.
응결점 부근의 과포화된 알코올 증기 사이로 전하를 띤 입자가 지나가면 주변 입자들이 이온화되면서 알코올이 순간적으로 응결되기 때문에 우주선이 지나가면 그 자리에 흰색의 자취를 남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흰색의 자취는 우주선은 아니고 우주선이 지나가는 모습을 응결된 알코올 구름이 보여주는 거죠. 손바닥 만한 안개상자라도 수없이 많은 우주선과 그 파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러토리움(Exploratorium)에 있는 안개상자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걸 구경하느라 그만 한 나절을 다 보냈답니다.
안개상자는 드라이아이스와 알코올, 수조만 가지고 집에서도 만들 수 있어요. 아래 링크를 보세요.
별이 가득한 산타바바라 하늘 아래, 서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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