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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Mar 18. 2016

불신의 사회적 비용

불신 사회에 기반을 둔 경제는 경쟁력을 잃고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 12년 전 네덜란드에 살 때였다. 노동계 지도자들이 헤이그에 있는 사회경제위원회(SER)를 방문하는데 통역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같이 위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네덜란드의 사례를 바람직한 노사 합의 모델로 언급한 직후였다. 사회경제위원회는 1950년 설립된 네덜란드의 정부 자문기구로 노동자 측, 사용자 측, 정부에서 임명한 전문가 각각 11명으로 구성된 노사 간 단체협의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1982년 이 기구에서 이끌어낸 바세나 협약이 노사 간 상생과 네덜란드의 경제 성장을 일궈내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1년 5월 15일 역사적인 SER의 노사정위원회 모습 (ANP, Ton Schutz). 세 변에 노, 사, 정이 각 11명씩 앉게 되어 있다. 현재도 똑같은 구조다. 

사회경제위원회의 직원이 나와 위원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 후 본격적인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노동계 지도자들이 던진 질문 중 하나는 "단체협의 때 노사 간 이견을 어떻게 좁히는가?"하는 것이었다. 사회경제위원회의 직원은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우리 노동계 지도자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다시 질문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화로 해결이 안 될 땐 어떻게 하느냐"고.


그 직원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화를 통한 합의가 우선이지만 이견이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표결에 부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답변에 장내가 잠시 술렁거렸다. 잠시 후 노동계 지도자 중 한 분이 입을 열었다. 표결은 사용자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제도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아 바로 통역을 하지 않고 먼저 그분에게 되물었다. 사용자 측 11명, 노동자 측 11명, 전문가 11명이 표결에 참여하는데 왜 표결이 사용자 측에만 유리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대답은 이랬다. 정부는 사용자 편이기 때문에 결국 사용자 측 22명, 노동자 측 11명이나 마찬가지인데 표결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부가 임명한 전문가의 독립성, 전문성을 믿지 못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었다. 골 깊은 노사정 간 불신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아무리 좋다는 선진 제도를 외국에서 들여와 봐야 근본적인 신뢰 회복 없이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사회의 구석구석을 보니 불신이 초래하는 비용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불신 사회에서는 간단한 업무 하나를 처리하려고 해도 요구하는 증빙 서류가 이것저것 많다. 법인카드를 유흥 목적으로 쓰지 못하게 하려고 심야시간 대 법인카드 사용을 원천봉쇄해놔 시차가 있는 해외 출장지에서 주간에도 카드를 못쓰게 되는가 하면, 해외 출장을 가서는 업무 시간을 줄여서라도 담당자와 사진을 꼭 찍어 증거로 남겨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많은 나라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전자 결제에 공인인증서니 공공 아이핀이니 하는 것이 필수다. 협상 테이블에서도 협상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무슨 꼼수를 감추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대표 간 협상이 이루어져도 결국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면 야합이니 뭐니 하며 수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신 사회는 부정을 감시하고 협상을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신뢰 사회보다 높다. 바로 경제학자들이 얘기하는 불신의 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는 요즘 불신 사회에 기반을 둔 경제는 경쟁력을 잃고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회에 만연한 불신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그런 골 깊은 불신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10만 명이 넘는 서민들이 피해자가 된 부산저축은행 사건, 대우그룹과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등 정경 유착을 통한 불공정 축재의 역사를 직접 목격해온 국민에게 조건 없는 신뢰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공정한 사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한 직업윤리가 함께 자리 잡아야 비로소 신뢰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위원회를 방문한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때의 노사정 위원회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라는 좀 더 거창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 과연 우리 사회의 신뢰는 얼마나 더 두터워졌는지 돌아볼 일이다.


서상원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



이 글은 <월간 에세이>에 제가 연재하고 있는 '아침 창가에서' 칼럼에 2016년 1 게재된 글입니다. 브런치에도 게재를 허락해 주신 원종목 편집주간님과 고경원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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