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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Apr 18. 2016

내 꿈의 고도는 몇 km인가?

팰콘 9 추진체의 해상 착륙이 가지는 의미

우주에서 바라보는 푸른 행성, 지구. 어떤 음파도 다다를 수 없는 완벽한 고요, 온통 암흑뿐인 우주공간. 그 가운데 걸려있는 푸른 지구의 찬란한 모습.


인간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사물 중에 이 보다 더 아름다운 것도 드물 것이다. 1972년 아폴로 17호가 찍은 '블루 마블'이라 불리는 이 한 장의 컬러 사진은 보는 이들에게 우주여행의 꿈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Blue Marble'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지구의 사진. 1972년 아폴로 17호의 승무원, Harrison Schmitt 또는 Ron Evans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약 30년 후 2001년 미국의 부호 데니스 티토(Dennis Tito)는 당시 약 240억 원가량으로 예상되는 거액을 지불하고 국제 우주정거장(ISS)에서 7일 22시간 4분을 보냄으로써 민간 우주여행 시대의 막을 열었다.

국제 우주정거장 (ISS)
데니스 티토 이후 우주여행은 고가의 여행 상품이 되었다
340km 상공 국제 우주 정거장(ISS)에서의 활동

그 이후 세계 각국의 여러 부호들이 각각 200억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우주여행의 꿈을 실현했다. 그들이 경험한 국제 우주정거장의 고도는 해발 340km.


그에 비해 민간 우주 여행사,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이 판매하고 있는 우주여행 상품의 목표 고도는 국제 우주 정거장 고도의 1/3 수준인 110-120km. 대신 버진 갤럭틱이 제시하고 있는 가격은 약 3억 원으로 우주정거장 여행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또 다른 민간 우주 여행사 엑스코어(XCOR)가 핀매하고 있는 상품의 목표 고도는 103km. 2016년 예약 가격이 한화로 약 1억 7천만 원가량이다.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의 뉴 쉐퍼드(New Shepard)가 발사에 성공한 고도도 약 100km 정도다. 참고로 우리가 타는 여객기의 일반적 순항고도는 해발 약 8.5-10.6km 수준.


그런데 수억 원대의 가격을 지불하고 버진 갤럭틱社나 엑스코어社의 여행 상품으로 즐길 수 있는 실제 우주 경험은 고작 4-6분(分). 데니스 티토가 우주정거장에서 머물었던 7일 22시간 4분을 모두 분(分)으로 환산하면 11,404 분이니 그가 지불했다는 240억 원의 분당 가격은 210만 원 꼴. 그에 비해 버진 갤럭틱社과 엑스코어社의 최근 상품은 분당 2,800만 원에서 5,000만 원 이니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데니스 티토가 지불했던 비용보다 훨씬 비싼 셈이다. 게다가 이들 상품은 지구와 우주의 경계로 알려진 100km 상공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다. 이 정도의 고도는 미군의 X-15기가 이미 반세기 전부터 넘나들던 고도와 비슷한 수준.

미군이 1959년 최초로 비행한 X-15. 1960년대에 이미 수차례 카르만 라인을 지나 우주를 다녀왔다.

허블 망원경의 고도가 595km, GPS 궤도위성의 고도가 20,350km, 이미 1969년에 인간이 무사히 다녀온 달까지의 거리가 384,000km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한참 떠들썩한 민간 우주여행의 고도, 100-120km는 사실 별로 대수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2016년 4월 8일 민간 우주 탐사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자 결제 회사 페이 팰(PayPal)과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Tesla Motors)를 창립했던 일런 머스크(Elon Musk). 그가 세운 스페이스 엑스(SpaceX)의 팰콘 나인(Falcon 9) 로켓의 1단 추진체가 대서양의 무인선에 성공적으로 수직 착륙한 것이다.


팰콘 나인의 1단 추진체의 성공적 해상 착륙 장면. 2016년 4월 8일 (4K UHD 버전).


왜 이 사건이 그렇게 대단한가?


미 항공우주국, NASA는 이제까지 국제 우주정거장에 우주인과 화물을 보내는데 평균 1,500-1,600억 원의 비용을 지불해 왔는데, 스페이스 엑스社는 이미 이 비용의 절반 이하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우주로 발사되는 로겟의 가격은 아직까지 너무 비싼 것이 현실. 그런데 높은 로켓 가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추진체다.


추진체(booster)란 뭔가? 블루 오리진社의 뉴 쉐퍼드나 엑스코어社의 링스가 해발 100km-110km 고도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반해 팰콘 나인은 340km 상공의 국제 우주정거장에 까지 승객과 화물을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승객과 화물의 무게도 훨씬 더 많고, 필요한 추진력도 더 크다. 이를 위해서 팰콘 나인은 목표 고도까지 승객과 화물을 밀어주고 로켓과 분리되어 지구로 낙하하는 분리형 추진체를 쓰는데 기존의 로켓 추진체는 바다에 떨어져 다시 회수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대당 650-730억 원 하는 것으로 알려진 팰콘 나인의 상당 부분이 일회용품인 셈. 그래서 민간 우주 탐사 회사들은 추진체를 회수하는 기술을 앞다투어 개발해 왔다. 스페이스엑스社는 지난 2015년 12월 팰콘 나인 추진체의 지상 재착륙 및 회수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블루 오리진社도 올 4월 이미 같은 추진체로 세 번째 발사와 지상 회수에 성공한 바 있다.


2015년 12월 팰콘 나인(Falcon 9) 1단계 추진체의 성공적인 지상 회수
2016년 4월 Blue Origin은 같은 추진체로 세번 째 발사와 착륙에 성공했다.

일런 머스크에 따르면 추진제를 회수할 경우 관련 비용을 1/100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회수시 추진체를 만드는 가격의 1/100의 돈이면 추진체를 다시 쓸 수 있는 상태로 보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당 비용, 650억-730억 중 추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회수된 추진체를 재사용할 경우 30% 싼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하니 아마도 추진체 회수를 통해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 우주정거장에 우주인과 화물을 보내는 비용, 1,500-1,600억 원을 이미 절반으로 줄인 스페이스 엑스社가 추진체 회수기술까지 확보했으니 또 한 번 상당한 비용 절감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면 앞서 추진체의 지상 착륙에 성공한 마당에 왜 해상 무인선 착륙을 시도했나?

Falcon 9 추진체의 해상착륙 개념도

보통 로켓은 적도에서 가까운 연안에서 발사해 해상으로 날아오르게 되는데 분리된 추진체를 다시 지상에 착륙시키기 위해서는 추진체가 먼 거리를 되돌아와야 할 뿐 아니라 돌아올 때 쓸 연료를 추진체에 남겨 둬야 한다. 그에 비해 추진체가 자연스럽게 낙하하는 해상에 띄운 무인선에 추진체를 착륙시킬 수 있다면 추진체가 먼 거리를 되돌아 오게 하느라 많은 연료를 남겨둬야 할 필요도 없고 착륙 실패로 인한 지상의 재물 손괴나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 따라서 해상 착륙이 가능하다면 스페이스 엑스社는 또다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보다 저렴한 민간 우주여행 시대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배 위에 150km 상공에서 떨어진 추진체를 자동으로 제어해 정확히 수직 착륙시킨다. 웬만한 배짱 없이는 감히 시도도 하기 힘든 기술이다. 물론 쉬울 리 없다. 난다 긴다 하는 스페이스 엑스社도 여러 번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다. 그러나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진보가 가능했고 드디어 4월 8일 역사적인 해상 무인선 착륙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번 실패했다고 관련자 문책하고 지원 중단하는 분위기라면 이러한 성과는 아마도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2015년 4월 해상 착륙 실패 징면

무엇이 일런 머스크의 이토록 과감한 도전을 가능하게 했을까? 나는 그것이 그의 남다른 목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340km 상공의 국제 우주 정거장도 아니고 120km 고도에서 이루어 지는 6분짜리 우주 관광도 아니다. 그의 목표는 지구와 가장 가까왔을 때의 거리만 따져도 무려 56,000,000km나 떨어진 화성이다.


그는 2011년 인터뷰에서 2021-2026년 정도에 화성에 사람을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그동안 여러 경험을 겪으면서 그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가 우주 관광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 훨씬 더 원대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애초부터 그의 목표가 100 - 120km 상공에서 6분 동안 부자들을 우주선에 태워주고 수억 원을 챙기는 것이었다면 해상 무인선 착륙이라는 난제에 도전할 필요도 없었을 뿐아니라, 몇 번의 좌절을 겪고 나서는 쉽게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누구라도 목표를 모두 다 이루면서 살기는 힘들다. 또 정말 목표를 다 이루기라도 한다면 심심해서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기왕 정한 목표를 완벽히 다 이루지 못 할 바엔 목표를 높게라도 정하고 실패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싶다. 꿈을 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이루지 못한다 해도 높은 꿈이 부여하는 동기의 혜택 만으로도 꿈은 일단 크고 높게 꾸고 볼 일이다.


일런 머스크와 스페이스엑스의 높은 목표의식과 거침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2016년 4월 8일 발사된 Falcon 9의 1단 추진체가 발사지점에서 300km 떨어진 해상 무인 착륙선, Of Course I Still Love You호에 착륙해 있다.
2016년 4월 8일 발사된 Falcon 9의 화물이 해발 340km 상공의 국제 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해 있는 모습 (4월 10일 Canadarm 촬영)



서상원은 과학, 건강, 환경, 시사, 교양에 대한 글을 쓰는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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