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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Jun 21. 2021

댄디? 노, 대디 (Dandy? No Daddy)

중고 신입의 여덟 번째 이야기

(Dandy? No, Daddy)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하다 보면, 작은 것 하나가 이야깃거리가 되곤 한다. 

이를테면 직원이 새로운 옷을 입고 오거나,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다 보니 나의 외모에서 뭔가를 새롭게 바꾸거나 할 경우, 직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 이발하셨네요?”     


“응, 날씨도 더워지고 해서 짧게 잘랐지. 어때?”     


“앗! 예~. 시원하시겠어요. 헤헤.”     


월요일 아침, 내가 이발을 하고 출근을 하면, 어린 친구들의 반응이 모두 한결같다. 

내가 이발한 모습을 보고 인사를 건네지만, 그들은 주관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젊어 보여요.’, ‘잘 어울려요.’, 또는 ‘예뻐요.’ 같은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누구나 동의하는 객관적인 사실들만 나열할 뿐이다.

‘이발하셨네요?’, ‘시원하시겠어요.’, 아니면, ‘음...’     


사실,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많은 사무실이다 보니 그들의 반응은 생각 외로 솔직하다. 

직접적으로 지적을 하지는 않지만, 절대로 좋다거나 어울린다는 등의 아부성 멘트를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감정을 표정으로 짐작할 뿐이다.   

       

처음 출근하여 어린 직원들의 모습을 봤을 때, 엔지니어 회사가 아닌 디자인 회사 또는 의류 관련 회사에 온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들의 키는 기본적으로 180 이상 넘을뿐더러, 몸 자체가 슬림하면서도 균형 잡힌 모습이 너무도 예쁘다. 

평소에 운동과 식이 요법을 통해 몸에 신경 쓴 흔적들이 그들의 외모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내가 보았던 여성잡지에 실린 ‘댄디한 남성 패션’이라는 제목과 함께 선보였던 모델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다양한 옷으로 자신을 표현할 줄도 알고, 때에 따라서는 조금은 대담하게 몸을 노출할 줄도 알았다.      


“오우야, 멋진데! 역시 키가 있으니까 뭘 입어도 태가 나는구나?”     


아침마다 그들의 패션을 볼 때면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보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미 중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건강에 대한 개인적인 안타까움이 생긴다. 나이도 나이지만, 지금까지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170이 안 되는 키에 전형적인 중년의 몸매를 보유하고 있는 나는 언제나 몸을 가릴 수 있는 어두운 톤의 펑퍼짐한 옷을 찾을뿐더러, 편안한 차림으로 사무실에 출근할 때가 대부분이다. 


"노가다 뛰는 사람이 무슨 옷에 신경을 써?"


더군다나 옷이나 패션에 전혀 문외한이라 유행을 따라 옷을 입는 것도 과감한 도전도 하지 않는다.     

‘이생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저들처럼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팀장으로서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을 정도만 신경 쓰자고 다짐을 했다.           


얼마 전, 어지러움증으로 인해 병원을 다녀왔다. 업무 스트레스와 함께 요산 수치 증가로 인한 통풍 및 성인병에 대한 경고 아닌 경고를 받고 왔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즐겨 먹던 맥주와 통닭을 피해야 한다는 말에 조금씩 건강에 관한 염려가 생기기 시작했다.      

의사의 마지막 충고 사항인 다이어트를 하라는 말에 이제라도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왕 해야 할 힘든 다이어트라면 목표를 갖고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목표는 나와 함께 일하는 어린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살을 빼야겠다는 자극과 함께 좀 더 멋진 모습의 외모를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다짐은 한 주가 지나기도 전에 절망감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새로운 다짐의 의미로 머리 스타일부터 바꾸기로 했다. 평소에 다니던 팔천 원짜리 미용실이 아닌 남성 컷트에 이만 원이나 하는 고급 미용실을 다녀왔다. 평소와 조금은 다른 헤어스타일로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짧은 머리 스타일만을 고집하던 나는 굳이 비싼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남들이 이야기하는 고급 미용실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갔던 고급 미용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인테리어도 일반 이발소나 저가의 미용실과는 달리 자리 배치부터 자유로웠다. 

의자의 편안함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쉽게 일할 수 있도록 모든 게 전동으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크게 차별화된 것은 그들의 서비스였다. 샴푸와 함께 두피에 좋다는 특수 약물과 마사지까지. 

왜, 여자들이 미용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스트레스를 푸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뒷머리랑 옆머리는 짧게 잘라주시고요. 앞머리랑 위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부탁드려요.”     


내가 이야기하면서도 좀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비싼 돈 들여서 간 헤어숍인데 이 정도 주문은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요청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디자인 샘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적지 않게 당황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네. 뒷머리랑 옆머리 좀 쳐올리고 나면... 뭐랄까, 음. 위쪽 머리숱이 많지 않아서요.”  

   

그렇다. 윗머리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지가 10년이 넘었다. 

매일 보는 나의 모습에 익숙해져서였는지 아무런 생각 없이 주문을 했던 것 같다.     

계속해서 나의 머리를 보며 고민을 이어가던 디자인 샘은 잠시 후, 뭔가 작심한 듯이 바리깡을 집어 들고서 뒷머리부터 쳐올리기 시작했다.     

옆머리까지 깔끔하게 밀어 올린 그녀는 나의 시선을 가린 채로 시간을 들여 앞머리에 집중했다. 분무기로 물을 충분히 머리에 뿌린 샘이 빗으로 앞머리를 정갈하게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이마의 상단에서 자로 잰 듯이 일자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디자인 샘이 비켜서고 나서야 나의 머리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언뜻 보면 내가 어렸을 때 하고 다니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머리 스타일처럼 보였지만, 나름 괜찮았다. 항상 짧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던 나였기에, 디자인 샘이 어떻게 해주시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얼마 후, 친구에게 심한 놀림을 당하기 전까지는.     


출근한 월요일 아침, 직원들은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모습이었고, 간혹 예민한 여직원들만 ‘머리 새로 하셨네요?’ 정도의 인사만 받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의 어색한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좀 이상한가?'     


그리고 며칠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자 내 컴퓨터 선생의 반응이 대박이었다.     

 

“어? 머리가 왜 이래? 크하하.”     


“왜? 이상해?”     


“응, 완전 바본대!”     


“바보?”     


“우리 어렸을 때, 드라마에 나오는 바가지 머리하고 다니는 바보들 모습인데?”     


원래 표현이 거친 그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다만, 좀 비싼 돈 들여서 바꾼 머리 스타일이 '바가지 머리'란 놀림감으로 전락한 것이 조금은 속상했다. 

    

“미용실 원장님이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그랬어.”     


“뭐? 무슨 유행?”     


“이태원 클라슨가 하는 드라마에 주인공 박새로이 머리 스타일.”   

  

약간 욱했던 나는 미장원 원장님까지 끌어들이며 어린아이가 떼쓰듯이 항변했다.     


“응, 내가 보기엔, 배 나온 노가다 아저씨 얼굴에 박서준이 가발 씌워 놓은 것 같아. 푸하하. 

이태원 클라스는 무슨, 노가다 클라스면 몰라도.”     


신이 난 그가 한마디를 더 보탠다.     


“이 머리 스타일하고 회사 가서 ‘나 예쁘지? 

이거 박새로이 머리 스타일인데?’하고 물어보고 다닌 건 아니겠지?”     


나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재밌었는지 그의 놀림은 한층 더 심해졌다.


“안 봐도 뻔~해. 꼴에 차장이라고 말도 잘 못하는 어린 여직원들 쫓아다니면서 물어보고 다녔구먼.

자꾸 직원들 앞에서 외모로 갑질 하지 마. 이런 모습으로 사무실에 나타나면 애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그는 자신이 말한 상황이 상상되었는지, 오열하듯 웃기 시작했다. 


‘내가 예를 심하게 잘못 들었구나.’ 그리고, 

‘친구 사이에 살인이란 행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세상에 없는 놀림을 당한 다음 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엎질러진 물을 담기엔 이미 늦었다. 단지 그 물이 마르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근우 씨가 보기에도 내가 이상해 보여?”     


소심하게 물어보는 나의 물음에 그들은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다.     


어린 친구들을 따라 댄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중년 아저씨의 변신은 다이어트와 함께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다만 나의 건강을 위해 몇 가지 작은 실천을 시작하기로 했다. 맥주 안 마시기, 튀긴 음식 안 먹기, 밀가루 음식 피하기 정도의 실천 등이다. 그러다 보면 댄디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건강한 대디 스타일의 모습은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젠 나이에 맞지 않는 무리한 댄디 함도, 나만의 것을 고집하는 꼰대 스타일도 버려야 할 것 같다.    

  

빨리 머리카락이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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