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근처에 장기 임대아파트와 유치원이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퇴근 시간이면 회사 건물 옆 새로 개장(?)한 놀이터에는 동네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고 아이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도 어려 보이는 이들이 유모차와 커다란 가방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아이들이 새로 만든 복합 놀이터에서 미끄럼을 타고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그녀들은 벤치에 앉아 자신들의 육아 경험과 정보들을 교환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은 놀이터의 입구와 차도가 가깝게 붙어있다는 점이다. 인도를 따라 휀스가 쳐져 있기는 하지만 어린아이가 도로를 향해 뛰어나갈 경우, 언제라도 달리는 차량에 사고가 날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차도의 폭이 넓지 않을뿐더러, 양재천을 끼고 있어서 차량의 유동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사실, 그곳에서 노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어 어린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신입사원 시절, 나는 자주 외근을 다녔다. 차가 없는 나는 서울시 교육청과 구청 등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날도 오전부터 이어진 외근을 마치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오기 위해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일을 마친 나는 여유롭게 플랫폼에서 내가 탈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습관처럼 평소에 읽던 책을 가방에서 꺼내려는 순간, 반대편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이 굉음을 울리며 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거의 처음 듣는 지하철 경적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반대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사고는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났고, 차량이 지나간 후에야 내가 본 것이 무슨 일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울부짖듯 요란한 경적에 눈을 들어 건너편을 보았을 때, 이제 막 걷기 시작했을 정도의 어린아이가 플랫폼 끝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플랫폼 아래로 떨어졌다.
너무도 가깝게 걸어오는 아이를 발견하고 차량은 다급하게 제동장치를 작동하였지만 육중한 차량은 그대로 아이의 몸을 쓸고 지나가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나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차량이 아이를 덮치는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급제동으로 인한 철로의 쇠 긁히는 소리와 그 아이의 가느다란 뼈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의 귀에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느 할머니의 비명 소리까지.
그렇게 사고는 일어났고, 양쪽 플랫폼에 모여있던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는 사람들이 할머니 주변으로 몰리는 것 같았다. 지하철 내부의 사람들도 급제동으로 인해 번잡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있으면서 찢겨진 아이의 몸을 볼 용기가 없었다. 조금씩 내 주변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피해 그대로 지하철 역을 빠져나왔다.
살면서 죽음을 목격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사고로 인해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기에 이 사건은 오랫동안 내 삶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회사로 돌아오는 내내 나의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도 그 아이의 주변인들이 받을 고통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걷기조차 불편해서 아이를 놓친 할머니와 회사에서 고통스러운 소식을 듣게 될 부모, 그리고 차량을 운행했던 운전사까지. 그들이 받았을 충격은 내가 가늠하기조차 힘든 것들이다.
그래서 주변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안전이 먼저 걱정된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나의 트라우마가 오늘 퇴근길에 만난 아이들을 통해 다시금 생각이 났다.
금요일은 다른 때와는 달리 정시퇴근을 목표로 어떻든 남은 일을 다음 주로 미루기 위해 바쁘게 노력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애매한 것들은 모두 다음 주로 미룬 상태로 퇴근을 서둘렀다.
회사를 나와 놀이터를 지날 때 보이는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놀이터를 지나 그 길 끝에 있는 건널목에 다다른 순간, 두 어린 여자아이들이 건널목 앞에 위험스럽게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건너편에 서 있는 또래 아이를 향해 또박또박 끊어지는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지금 거기로 갈 거야. 자 간다!”
서로 손을 잡고 있던 아이중 한 아이는 말을 하는 순간에도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한쪽 발이 차도로 조금씩 미끄러지듯이 내려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아이는 당장이라도 튕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차도의 앞뒤에서 여러 대의 차량이 진입을 시작했다. 중형 세단과 SUV 차량 들은 퇴근길 혼잡을 피하려는 듯이 그 작은 길에서도 급하게 속도를 내고 있었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이라 나는 급한 마음에 아이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들의 엄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달려가 먼저 그들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얘들아? 너희들 저기로 건너갈 거야?”
“응, 친구 있어.”
아이의 말투는 조금 어눌했지만, 또박또박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나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건너편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아저씨랑 같이 건너갈까?”
나의 말이 끝나자 한 아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나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나의 새끼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꼬옥 쥐었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아이의 행동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어 어린아이의 손을 잡을 일이 없었을뿐더러, 어린아이의 손이 이렇게까지 부드러운지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갓 태어난 강아지를 손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나의 손을 잡은 아이의 순수함이 내 손을 타고 올라와 심장까지 움켜쥐는 것 같았다.
사실, 세상의 인식이 옛날과는 달라서,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을 범죄 의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기에 나로서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인도로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차량 들을 모두 보내고 천천히 아이들과 길을 건넜다. 건너는 내내 나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는 건널목을 건넌 후에야 잡았던 손을 놓았다. 아이들은 그대로 친구에게 달려갔고, 아이 중 한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이에게 아이들을 인계했다. 아이의 아빠들보다 더 나이 많은 아저씨는 어설픈 손 인사와 함께 그들과 헤어졌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한 잠깐의 시간이 나에겐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양재천을 따라 걷는 내내 아이가 잡았던 나의 손에서 여전히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저린 느낌이 올라왔다.
아빠가 느끼는 아이에 관한 애틋함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래서 아이를 낳는 모양이다.
걷는 내내 짧은 만남을 생각하며 괜히 흐뭇한 미소를 짓던 나는 어느덧 십 차선이 넘는 대로변에 다다랐다. 그리고 건널목 앞에 선 나는 조금 전과 달리 혼자서 건너는 이 건널목이 너무도 길어 보였다. 삶에서 맞닥뜨린 나의 운명처럼 여겨졌다.
이미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엔 나이가 너무 들고 말았다. 혹시 인연이 된다면 새로운 생명과 마주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각별하게 원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를 감당할 수 있는 나이도 지났을뿐더러, 어린 생명에 대한 책임과 그에 따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이미 알고 있기에 그러한 삶으로 돌아가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내 삶의 경험 속에서 죽음의 순간을 먼저 만난 것이 생명이 자리 할 기회마저 지워버린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잠시 나를 붙잡았던 그 아이의 따뜻한 손이 마치 나의 과거를 위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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