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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Jul 26. 2021

신입을 위한 회사는 없다.

중고 신입의 아홉 번째 이야기

“사람 구하기가 왜 이리 어려워?”     


“어디 쓸만한 경력직 없냐?”     


요즘 들어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수시로 채용 사이트에 공고를 내고 인원을 구하고는 있지만,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요즘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쓸만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쓸만한 경력자를 구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우리 같은 엔지니어 사무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기술자의 경력은 곧 실력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그들의 경력은 연봉과 직결된다. 그러다 보니 적정한 연봉에 쓸만한 경력자들을 구하기 위해 회사마다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 업계에는 ‘경력 3년에서 5년 차의 경력직들이 가장 비싼 값에 팔린다’는 말이 있다. 이럴 정도로 회사의 중추적인 허리 역할을 하는 기술자의 이동이 유난히 잦다.      


분명 개인차가 크게 존재하겠지만, 처음 신입 기술자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기본적인 기술 프로그램을 습득하고 한두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로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다음 과정으로, 아직은 완벽하진 않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일에 관한 이해도와 실력을 갖추게 된다. 하다못해 팀장이 시키는 일에 큰 실수 없이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만 갖추고 있어도 상당히 괜찮은 기술자로 인정받는 실정이다. 

그러나 신입이 기술자로서 인정을 받을 때쯤이면 회사를 옮기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처음 입사한 회사들이 그들을 경력직 기술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실력 있는 기술자로 인정받고 그만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빠른 길을 찾게 된다. 이직이야 말로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선배들을 통해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동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회사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신입 직원들을 채용하기보다는 기존의 직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쥐어짜듯이 그들을 다른 프로젝트 여기저기에 끼워 맞춰 넣는다. 우리 사무실도 한 사람이 두세 가지 일을 맡는 것은 이미 다반사가 돼버렸다.     


내가 회사에서 진행하는 일도 인원이 모자라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의 팀은 나를 포함한 4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순차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내가 리더로서 팀에 합류한 이후, 조직을 새롭게 개편하고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노력했다. 최대한 팀원들의 의견을 듣고자 다가갔고, 가능한 한 개인의 성격과 업무 성향에 맞는 일을 맡기려고 그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복잡한 업무 프로세서를 과감하게 삭제하고 팀장과의 과격한(?) 협의를 통해 필수 업무의 단순화를 꾀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한 이유는 팀원들과의 협업을 잘하기 위함도 있지만, 지금의 팀원들이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나 회사를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팀이 안정을 찾다 보니 기존에 박힌 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 팀 리더에 대한 불신과 복잡한 업무 과정으로 불안정했던 팀원들이 새로운 팀으로 안정을 찾아갈 때 즈음이었다.

팀 총괄을 맡고 있는 전무이사가 우리 팀을 여기저기로 찢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는 자신의 것을 최우선으로 앞세웠다. 다른 일에 관해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두가 회사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회사 일에 포함되어있는 자신만의 일에 몰두했다. 두세 가지씩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 그의 일은 언제나 큰 짐이다.   

  

먼저는 내가 속한 팀 내 중간 직급의 직원을 전무이사가 주도하는 일에 전격 투입해 버렸다. 요란스러울 정도로 부장단 회의를 개최해 자신이 수주한 일에 관한 성과를 자랑했다. 해외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던 디자인 경력자를 고용한 데다, 그를 도와줄 인원으로 내가 속한 팀의 직원을 직접 선택해서 뽑아가 버린 것이다.   

  

거기에 더해, 해외 현장 지원을 나가야 하는 인원을 우리 팀에서 내보내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차 직원으로 군대 대신에 산업체 요원으로 일하는 직원이었다. 3개월 이상 해외 근무를 할 경우, 산업체 근무 기간이 늘어나는 불이익의 상황임에서도 불구하고 회사의 명령에 따라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임원들과 전무이사의 결정으로 인해, 이 직원은 발령받은 지 일주일 만에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직전에도 그들의 결정으로 이틀 만에 장기 지방 출장을 가기도 했었다.  

   

이렇듯 한 달 사이에 이어진 여러 일로 인해 내가 맡은 팀은 거의 와해 직전의 분위기였다. 나와 남은 단 한 명의 팀원은 여전히 남은 프로젝트와 추가된 잔여 작업을 소화하느라 매일매일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남겨진 프로젝트를 소화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은 필요하다고 생각된 나는 인원 보충을 부장들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는 뭔가 다른 시각의 답답한 대답들 뿐이었다.    

  

‘데려올 만한 사람이 없어.’, ‘쓸만한 경력직 있으면 김 차장이 소개 좀 해봐.’. ‘신입은 안돼. 언제 가르쳐서 써먹겠어?’     


그들의 입장에서 회사의 인사 원칙을 말한 것이겠지만, 실무를 뛰는 나로서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춘 신입이라도 절실한 상황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렇게라도 사람을 써야 하는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실무와 상관없이 결정권만 있는 그들의 말이 비아냥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젊은 기술자들의 경우,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직원이 원하는 일에 배치, 둘째는 회사 복지였다. 이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충족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들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양보를 받아내는 과정이 회사와 직원의 미래를 위해 모두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 박힌 돌들은 대뜸 권위적인 모습으로 나를 힐난했다.     


“이봐, 김 차장? 

기술자가 자기 것 먼저 챙기고 그러는 거 아니야? 

회사를 먼저 생각하고 따라야지. 자기 좋다고 회사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 

그럴 거면 왜 회사에 나오나? 그냥 자기 사업해야지.”     


더는 그들과 대화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우리 팀의 일을 도와줄 경력직 기술자들을 수소문했고, 나에게 기술을 가르쳤던 컴퓨터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경력자는 아닌데, 4년제 졸업하고 한동안 인턴으로 일을 한 경력이 있더라고.

 기술 습득 능력도 좋고 열심히 하는 친군데. 어때 한번 써 볼 생각 있나?”     


지금 추천할 수 있는 최상의 기술자라고 생각한 나는 그녀의 이력서를 받아 들고 부장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도 지금 현실을 감안할 때, 최선의 선택지라 생각했는지, 그녀의 입사 진행이 일주일 만에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녀는 전통적인 2차원 설계가 아닌 3차원 설계를 하기를 원했고, 그에 따른 기술을 습득한 상태였다. 

요즘 많은 회사가 3차원 설계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통 방식의 설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일정 기간은 우리 팀에 합류할 거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추천한 사람이기에 그에 대한 지분(?)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녀가 입사하기도 전에 모든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신입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그들도 새로운 직원에게 눈독을 들인 것이다.    

  

조직 내 박힌 돌들은 시스템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을 대항하기엔 불가능에 가깝다. 그들은 내가 신입을 추천했다는 것도 ‘의미 없음’으로 간주한 채, 전무이사는 그녀를 자신의 프로젝트에 또다시 보기 좋게 꽂아 넣었다.     

그는 신입사원 면접부터 첫 출근 면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프로젝트만을 그녀에게 주지시켰고,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하기까지 했다. 사람을 소개해 놓고 심지어 다른 팀에 빼앗기는 일까지 당했지만, 정작 그녀를 데려간 간부로부터 어떠한 인사도 변명도 듣지 못했다.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왜? 기술자들이 한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하고 옮겨 다니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새로운 기술자를 소개해 준 사람도 일을 시작하는 신입도 모두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지 못한 채 회사의 명령에 따라 부품처럼 채워지기 바빴다.

회사 내 조직의 일이라는 것이 권한을 받은 이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 직원들의 의견과 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에 본 뉴스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기업들이 정시 채용을 수시 채용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내용인즉슨, 신입의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 채용을 최대한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회사의 입장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신입사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 친구들에겐 절망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회사는 효율 면에서 떨어지는 신입이란 과정을 버리고, 능숙하게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사람들만 고용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람이나 재화가 공급되지 않는 사회나 조직은 결국 고사당하고 만다. 신입이란 과정 없이 경력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들이 관점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이익만을 쫓겠다는 셈이다.          

 

“요즘 것들은 조금만 가르쳐 놓으면 도망가기 바빠. “     


내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기성세대의 한결같은 레퍼도리 이다. 그래서 신입사원 뽑는 것을 어려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회사를 통해 얻는 성취감보다는 부품처럼 소모되는 젊은 기술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이동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경험과 실력을 갖추고 들어오는 경력자들도 기존의 박힌 돌들에 의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의 시스템과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묻고 싶다. 

요구하는 싸가지와 경력만큼 지금의 세대에게 당신들은 얼마나 예의와 실력을 갖추고 대하는지를.


강남 야경 https://www.gettyimagesbank.com/visitk/%EA%B0%95%EB%82%A8%EC%95%BC%EA%B2%BD/jv1131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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