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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Aug 11. 2021

그녀들이 무서운 이유

어설픈 한 인생의 답변

“난 안 그런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이들 없을 때, 와이프 샤워하러 간다고 하니까 갑자기 겁이 덜컹 나는 거야.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서워지더라고.”     


내 질문에 대한 결혼한 친구의 답변이었다.    

  

20대 후반에 조금은 이른(?) 결혼을 했던 친구들에게 던졌던 짓궂은 물음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들이 친구들 사이에 주제가 된 지 오래다.      


“사실, 요즘 많이 고민돼. 약이라도 먹어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러다가 쫓겨나게 생겼어. 

너는 혼자니까 잘 모르겠지만, 몸 관리 잘해라. 

그렇게 살쪄가지고 어디 팔려는 가겠냐? 

요즘 들어 여기저기 아프다면서. 쯧쯧.”     


“그래도 난 새것이잖아? 

단지 구석에 박혀 있어서 그렇지 중고 아닌 새것. 하하하.”     


“웃기고 자빠졌네. 

요즘 추세가 한 번도 안 쓴 새것보다는 그래도 꾸준히 써온 중고가 나은 것 아직 모르나 본데. 

혹시 그 몸 쓸 일 없으면 중고 나라나 당근 마켓에 라도 내놔봐? 

혹시 아냐? 새것이라고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크흐흑.”     


자신들의 현실 한탄을 늘어놓던 그들의 마지막 타깃은 결국 혼자 사는 나에게로 향한다. 

걱정인 듯, 놀림인 듯한 말과 함께 음탕한 눈을 치켜뜨곤 나를 한번 훑어보는 그들의 모습이 일반적인 친구들 간에 대화의 패턴이다.  

   

가끔은 기혼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내밀한 말들을 경청하지만, 사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란 것은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그들처럼 가정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는 고사하고, 어떻게 새로운 이성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아직 스스로도 찾지 못한 대답에 대해, 주변인들이 ‘왜?’라고 묻곤 한다. 처음에는 그러한 질문이 부담스럽게 다가왔고, 불편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요즘은 간결한 대답으로 퉁치고 만다.     


“눈이 높아서요.”     


그러나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공포감은 그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나와 내 주변에서 경험했던 기억들이 여자를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 것 같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은 내가 근처 또래들과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뒷골목의 흙바닥을 열심히 뒹굴고 다니던 시절, 앞집 친구와 너무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공유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바쁘게 돈을 벌러 다니던 엄마의 손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다. 학교 숙제는 물론이고 일일 학습지마저 며칠씩 내팽개치고 놀러 다니기 바빴던 우리였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집안의 가장 큰 빌런인 아빠의 여동생, 고모란 존재들이 있었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에 맞춰서 그녀들은 각자의 집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거의 동시에 타작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시작됐다. 그리고 마지막엔 빤스 바람으로 문 앞에 쫓겨나는 것이 다반사였다. 

각자 비슷한 시간에 쫓겨났기에 서로의 꼴을 보면서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넌 뭘로 맞았냐?”     


“난, 헤라(플라스틱 구두 주걱)”     


“넌?”     


“난 빨래 방망이. 큭.”     


무엇으로 맞았는지를 비교해 가며, 먼지 뒤덮인 얼굴에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모습을 보며 킥킥대고 웃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에게 느꼈던 고통의 감정은 육체적인 고통뿐만이 아니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느껴지는 정신적인 고통 때문이었다. 당시의 문제들을 단순히 어른들의 세계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나를 통해 해소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매질이 감정이 섞인 저주로 이어졌고, 그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그녀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했지만, 중학교 때까지 이어진 한 집살이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만들고야 말았다.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던 엄마와 가출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나의 보호자가 되었던 그녀는 나를 끌고 관악산 밑자락, 지하 연립으로 이사를 했다. 

어린 마음에 모든 문제는 나의 부모로 인한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기에 모든 가족에게 미안했고, 미움도 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모든 것을 숨겨온 가족들 특히 고모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지병으로 죽고 나서 가족들로부터 과거에 있었던 숨은 이야기 퍼즐들을 맞출 수 있었다.      

“걔는 여기저기 가족들에게 빌린 돈이 많다면서? 

그런데, 그 돈 다 어디로 간 거야? 

무슨 돈이 있어서 친구랑 술집을 동업하냐고?”     


그녀는 나를 핑계로 어미로부터 많은 돈을 매번 받아냈고, 심지어 우리가 살았던 작은 아파트마저 처분하고 중간에 가로채 갔다. 그렇게 자신의 가게를 내고 친구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다시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기를 반복했다.      


한편으론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가 죽고 나서, 나는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런 여자는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거라고.’     


그런 일이 밑바탕이 되어서였을까, 여자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주변의 여자들에게 자꾸 눈치를 보게 되고, 눈에 들어오는 여자들을 보면서도 그녀들의 말투와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성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또래의 여자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다 돌아서기를 반복했다.

가끔 주변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갖는 여성들을 보게 된다. 어쩌면 그녀들이 갖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주변에서 나에 대해 크게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주변 여성들에게 매우 친절하다는 것이다. 먼저 따뜻하게 인사를 하고, 차를 탈 때나 건물에 들어설 때 문을 열어주고, 대화를 해야 할 경우에도 많은 것들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매우 의식적인 행동이면서 거리를 두기 위한 행동임을 그들은 모른다. 

마치 일본인들의 친절함 뒤에 숨어있는 다른 의도처럼.          


어린 시절부터 오랜 세월 다녔던 교회에서도 친분이 있는 몇 분들이 나이 들어 늙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교회의 일명 ‘자매분’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발 벗고 나서기까지 했다.     


“일단 한번 만나봐. 부담감 갖지 말고.”     


회사에서도 주변 분들을 통한 만남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처음부터 부정적인 기억이 모든 이성과의 만남에 영향을 주다 보니 모든 결과는 뻔했다. 그녀들을 대할 때 적극적이지 못한 나의 태도에 상대방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시도만큼이나 까임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인생 뭐 있어? 그냥 나 좋은 것들 하면서 살다 가면 되는 거지.”     


자포자기에 이르게 되자 점점 내가 좋아하는 단순한 것들에 자극을 받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큰 자극은 역시 먹는 것이었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 갔다. 그 와중에 미국에서의 삶은 더 안일한 습관을 갖게 하였다. 비교 대상이 주변의 넉넉한 미국인들의 몸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스스로가 괜찮은 모습으로 비쳤다.

몸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빌미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부끄러운 이야기다. 

나를 이기지 못하고 아직 과거에 갇혀 있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날 때가 많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에게 이런 설명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딱지가 앉아 아물 것 같던 상처들이 기억 속에서 다시 덧나는 이유는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쯤 이 상처를 바라봐도 고통스럽지 않게 될지 나도 궁금해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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