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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May 17. 2022

출장; 도착

중고 신입의 열두 번째 이야기

뚜뚜뚜뚜 뚜뚜뚜뚜  


이른 아침, 호텔 전체에 화재경보가 울린다.  

공사 현장에서 설치 테스트를 위해 몇 번 들어보긴 했지만, 막상 일상에서 자다가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적 친구들끼리 장난치며 귀에 대고 갑작스레 소리 지를 때의 느낌이랄까? 귀가 먹먹해진다.      


급박함을 알리는 상황이지만, 복도에선 아무런 위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란스럽게 뛰어다니는 소리도, 무언가 타는 냄새도 없었다.

잘못 울린 경보가 아닌가 싶어 문을 열고 복도를 쳐다봤다.      


“뭔 일이래요?”     


머리에 까치집을 한 건넛방 사람이 잘 모르겠다는 듯,  

얼빵한 표정으로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화재경보의 시끄러움 때문에 더는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간단히 점퍼만 걸친 채로 지갑과 여권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출장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뭔 놈의 일이라냐?     


잠결에 어그적 거리며 호텔 밖으로 나갔을 때, 우리를 쳐다보는 외국인들, 아니 현지인들이 서 있었다. 이들은 이미 밖으로 나와 호텔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인들만 귀찮다는 듯이 밖에서 엉거주춤 담배를 피우거나 짜증 섞인 표정으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산책 삼아 밖을 한 바퀴 돌아봤지만, 아무런 위험도 감지되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 일인데, 호텔의 대처가 미숙해 보였다. 명확한 설명도 없이 사람들을 로비에 모아놓기만 했다.      

 

4월 말인데도 눈이 내리는 지역으로 아직 영하의 싸늘함이 느껴진다.  

호텔 로비로 들어온 나는 다시 방으로 가도 되는지 알 수가 없어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한쪽 구석에서 말 많고 시커먼 아저씨들의 수다가 들린다.  

사실 과한 액션과 높낮이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억양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와중에 대충 들리는 몇 개의 단어들을 조합해 보았다.       


“바보... 영보이... 마이크로웨이브... 포일... 등등.”      


대충 해석하자면, ‘아침 식사를 위해 바보 같은 어린 녀석이 쿠킹호일이 씌워진 뭔가를 전자 랜지에 돌렸다.’ 정도의 말이었다.      


시차로 인해 새벽에 간신히 잠든 나를 깨우는 미국 놈들이 영 마뜩지 않았지만, 다행히 주말이라 다시 침대로 향할 수 있었다.           




이번 출장이 내키지 않았던 이유는 경험이 있는 남부가 아닌 북부, 그것도 캐나다와 국경을 맞댄 날씨가 엉망인 곳이라는 점과 미국 내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디트로이트라는 장소 때문이다.      


6, 70년대 자동차 산업의 부흥으로 제조업 도시였던 이곳이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불려지고 있다. 같이 일하는 미국 매니저 중에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가 알기 쉬운 영어를 써가면서까지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나 ‘세 살 밖에 안된 아이(한국 나이로 다섯 살 된 아이)가 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헤드라인과 매일 아침 지역 메인 뉴스에 걸리는 다른 총기 사건은 이곳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게 만든다.

(https://www.actionnews5.com/2022/03/28/3-year-old-shoots-kills-himself-with-ar-15-police-say/)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나에게 있어서 총기 사건만큼이나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이 또 하나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미국 음식이다.

내가 있는 곳은 조식을 제공하는 호텔로서 로비의 일부가 아침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된다. 인상 좋게 생긴 흑인 아줌마와 아침마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히 식사를 하는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미국인들이 먹는 시리얼과 우유, 치즈와 베이글 빵 그리고 오믈렛에 간단한 과일까지 식단은 내가 경험한 다른 호텔에 비해 너무도 훌륭했다.

첫날은 뷔페마냥 모든 음식을 종이 접시에 담아 두 번에 걸쳐 먹었다. 그러나 다음날은 한 접시 그리고 그다음 날은 반 접시로 줄어들었다. 변화가 없는 음식을 매일 똑같이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음식을 준비해 주던 아줌마와 밝게 인사하던 나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해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특히나 다른 나라의 고유한 음식 먹는 것을 좋아했다. 웬만하면 못 먹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식성도 까다롭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때문인지,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먼저 온 한국분들에게 물어 한국 식당을 알아보았다.

다른 대도시에 비해 디트로이트에서 한국 식당은 흔하지도 않고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김치찌개 한 끼를 먹기 위해 차로 1시간이 넘게 달려가야만 한다면 그 수고로움이 영 피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막상 한식 먹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흔한 국밥에 밥 한 공기가 더욱 간절해진다.   



       

처음 엔지니어의 길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나의 로망이 회삿돈으로 가는 해외출장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출장 가는 선배들이 진정한 프로로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여러 해 동안 해외 생활을 하고 낯선 곳에서 일 년이 넘는 파견 생활을 해본 사람으로서 출장이란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돈을 들여 출장을 보내는 만큼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을 무조건 완수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해결사로 가는 것이고, 그만큼 회사가 원하는 결과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도 마찬가지다.

반년이 넘는 동안 전쟁 같은 한국에서의 작업을 마무리 짓자마자 단기간 미국 출장이 잡혔다. 뭔가를 빨리 마무리 짓고 와야 한다는 긴박함이 있는 출장인데도 불구하고, 출발 며칠 전에 전달된 결정이 마치 장난처럼 들렸다.    

  

“일주일만 연기하면 안 될까요? 이번 일 마치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며칠만이라도 좀.”     


“응, 비행기에서 쉬어. 기내식 좋은 미국 비행기로 잡아 줄테니까 밥 먹고 영화도 보고, 잠도 자고.”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나 같은 중저가 기술자를 보낼까 싶기도 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배터리 공장’에 관한 업무에다, 굴지의 대기업이 주관하는 일이라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응, 배터리 공장? 별거 아니야. 가서 시키는 것만 성실히 하고 오면 돼. 사주는 밥 잘 먹고.”     


“엄마 제사가 있다고? 종교가 기독교라고 하지 않았나? 교회 오빠? 아니 이젠 아저씨겠네.”     


“혈압! 나이 먹으면 다 생기는 병이야. 약 잘 챙겨가고, 식단 조절 잘하고. 응.”  

   

핑계도 변명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내 이름으로 티켓은 발부되었고, 호텔 예약까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출장. 주말 내내 짐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먼저 여권과 비자, 그리고 아직 기한이 남은 미국 운전면허증을 먼저 챙겼다. 다음은 내가 먹어야 하는 약들, 마지막으로 달러로 바꾼 현찰까지.

미국 현지에서 검사할 수도 있다는 말에 급하게 백신 부스터 샷을 맞았다. 무엇보다 한국 입국 시에 격리 면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백신 3차는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어버렸다.

비행기 타는 순간까지 백신으로 인한 몸살 기운의 몸을 이끌고 이것저것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미국으로 출장 가서 좋겠다는 이들이 많다. 먼저는 새로운 곳에 가는 것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다. 마치 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평소에 못 먹어본 음식들도 먹을 수 있고, 시간 내서 주변의 여러 곳을 둘러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들 한다.

물론 계획은 한다. 얼마나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출장이 예상된다.

모든 업무가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무탈하게 한국으로 복귀하는 것이 나의 작은 목표이다.     


다음 주에 있을 전체 미팅에서 어떤 주문이 나에게 떨어질지 벌써부터 기대 아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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