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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Jun 13. 2022

출장; 심사

중고 신입의 열네 번째 이야기

공항을 나서기 전 누구나 입국 심사대에 서야 한다. 특히 다른 나라에 입국할 때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공항을 여러 차례 경험해봤지만, 올 때마다 그 부담스러움에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외국인 입국심사 줄에 서서 내 차례가 오기를 한동안 기다렸다. 점점 줄어드는 줄에서 오롯이 관심이 가는 것은 누가 나를 심사하게 될 것인지이다. 심사 요원들의 표정과 입국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하나씩 뜯어보면서 그들 부스에 적힌 숫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음이 가는 숫자를 골라 주술처럼 중얼거린다.   

  

“5번, 5번, 안되면 7번. 제발.”     


다음은 내 차례다.     


“Sir?”     


“Yes.”     


“Number 4.”     


4번 만은 안 걸리길 바랐건만, 언제나처럼 내가 원하지 않는 번호로 지명이 됐다. 결국 안내 요원의 지정에 따라 나는 4번 부스로 향했다. 

미리 출력한 비자 서류와 여권을 들고 입국심사 요원 앞에 선다. 여유롭게 보이고 싶지만, 칸막이 건너편에 있는 경찰 복장의 심사원들을 볼 때면, 마치 취조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 주눅이 들곤 한다.     


무표정한 얼굴, 탄탄한 근육질 몸에 대머리가 인상적인 흑인 아저씨가 나의 입국심사를 진행했다. 무뚝뚝한 표정에 뭔가를 알아내겠다는 의지마저 살짝 비치는 것 같아 조금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언뜻 보기에 마치 마이클 조던이 공항 근무복장을 하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Passport? Visa?”     


그가 여권과 서류를 얇은 틈으로 넣어 달라는 손짓을 한다.

천천히 나의 서류를 확인하는 동안,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의 눈은 그의 표정과 몸짓을 쫓고 있었다.     


-혹시 잘못돼서 ‘진실의 방’으로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해외 출장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경험했다는 ‘진실의 방’. 그곳에 들어가면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거의 하루 종일 잡혀있어야 한다는 그 무서운 방. 

여담이지만 내가 아는 전기 기술자는 자기가 좀 특별한 것을 다룬다는 의미로 ‘스페셜 일렉트릭 엔지니어’라고 말했다가 진실의 방에서 4시간 넘게 잡혀있었다. 공항 관계자들은 집요하게 그 ‘스페셜’에 관해 따져 물었고, 영어 한마디 제대로 말하지 못한 그는 어떤 스페셜 함도 알려주지 못했다. 결국, 전체적인 서류 조사와 통역이 가능한 기술자의 중재로 ‘진실의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진실의 방, 생각만 해도 아찔한 곳이다.     


유심히 여권과 비자를 확인하던 그가 마스크를 내려달라는 손짓을 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스크를 벗고 샤방 샤방한 미소와 함께 그를 쳐다봤다. 내 얼굴은 확인한 그가 딱딱한 표정을 풀고 살짝 미소를 보인다.     


“미국은 무슨 일로 방문하셨나요?”     


“미국 자동차 회사와 미팅이 있습니다.”     


“음, 미팅.”     


이스타 비자로 들어오는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미국에서 일할 수가 없다. 하지만 거짓말로 여행 왔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이곳에 왜 왔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엔지니어들이 이스타 비자를 통해 여러 차례 방문했을뿐더러, 현재도 상당수의 한국인 기술자들이 현지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다만, 한국 회사가 자본을 들여 미국과 거대한 투자 협력을 하고 있기에, 한국의 기술자들이 이스타 비자로 미국을 오고 가는 것에 대해 모르는 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 물어봤으면 보내줄 만도 하련만, 그는 궁금한 것이 더 있었던 모양이다.   

  

“OK. 그런데, 당신 뒤에 있는 사람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그는 내 뒤에 있는 어린 친구를 가리켜 물었다.     

 

“아, 회사 동료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음.”     


그의 머뭇거림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갔다. 

급하게 결정된 미국 출장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사원을 붙여주었고 그것이 어색하게 보였을 것이다.


잠시 후, 그가 말을 잇는다.     


“미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멋진 비즈니스 하시길 바랍니다.”    

 

그는 ‘나는 네가 왜 왔는지를 안다.’는 의미의 인사와 함께 쿨하게 우리를 보내줬다.  

   

“차장님, 뭐라는 거예요?”     


“음, 너 누구냐고?”     


“그런데 그걸 왜 물어봐요?”    

 

내 어린 동료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미국 나이로 18세짜리가 엔지니어라고 미국에 출장을 오는 것도 이상하지만, 너랑 30살 차이 나는 같은 성씨의 사람과 출장 오는 것도 이상했겠지.”  

   

거래처의 급한 요청에 따라 출장이 가능한 직원과 급하게 미국으로 향했지만, 내 생각에도 맞지 않는 조합이었다. 군대 간 친구 아들보다도 어린 직원과 해외 출장이라니. 

어쩌면 아들을 데려온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면허는 있냐? 한국에서 운전해 본 경험은 있고?”   

  

“네, 시켜만 주시면 운전할 수 있어요. 국제면허도 받아 왔어요.”     


“싫어. 내 목숨을 너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가뜩이나 험하기로 유명한 이 동네에서.”  

   

아직은 많이 어린 나이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시켜주면 뭐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어린 친구를 볼 때면 나도 저런 시기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심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짐을 찾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무사히 미국에 입국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배시시 웃는 어린 동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있을 험난한 나의 출장이 훤히 보이는 것만 같다.


시카고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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