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되면 언제 전화나 문자가 올지 몰라 한국에서 가져온 휴대폰을 습관처럼 지켜볼 때가 많다. 한국이 오전 출근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전화기 화면에는 미국 현지시간과 한국시간이 동시에 표시된다. 요즘 유행하는 ‘멀티버스’라는 세계관도 있다지만, 14시간 차의 두 개의 시간대를 살아야 하는 나로서는 일도 생활도 그리 녹록지가 않다.
“몇 시까지 마감하기로 했지?”
“한국시간으로 자정입니다.”
“그럼 여기 시간으론?”
전화기를 보며 한국의 자정을 미국 현지 시간으로 계산해 본다.
“오전 10시 정도...”
잠시 고민하던 이사가 결심한 듯 자신의 생각을 강한 어조로 내뱉는다.
“그럼 내일 아침에 여기로 자료 보내라고 그래.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말일인데, 여기 시간을 기준으로 했다고 하면 어쩔 건데? 어차피 미국 프로젝트니까 여기 시간이 기준이라고 설명하면 돼.”
한국의 여러 기업이 미국에 엄청난 투자를 시작했다. 새로 당선된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기업들이 앞다투어 미국 투자를 발표하였다. 중국을 배제시키기 위한 반강제적인 회유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기업 오너들의 생각이 맞물려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급하게 미국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 하는 기업의 생리상, 그들은 일명 업자들 쥐어짜기, 구워삶기 등,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그들만의 한국식 노하우를 미국에서마저 실행하기 시작했다.
기업 오너의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프로젝트를 급하게 진행하는 주체들도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허둥댈 때가 많다. 나와 같은 실무자들이 일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말해보지만, 그들의 선택은 언제나 조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바빴다.
아무리 급한 프로젝트라도 내가 속해 있는 엔지니어 조직은 언제나 팀으로 일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누군가 온다고 할지라도 북 치고, 장구 치고, 춤추며 노래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여러 분야가 뒤섞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다. 그러기에 우선시 되는 분야는 있을 수 있어도 한 가지 일만 독주하는 분야는 없다. 어떠한 결과도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 나와 있는 관리자들은 이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대부분이 사오십대 한국 남자들로. 이 바닥에서의 ‘짬밥’은 기본이고, 누구와 비교해도 각자가 맡고 있는 분야에서는 누구 못지않은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에 대한 방법을 찾는 것도, 일을 처리하는 속도도 엔지니어들과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다만 그들의 결정이 다른 이들에게는 큰 고통이 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국의 기성세대를 대표하듯 군대식 조직문화와 결과에 대한 조급함에, 말로는 협력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다.
“아니 됐고, 이것부터 정리를 해야 나머지가 정리된다니까!”
“내가 회사를 대변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20년 넘게 이 일을 해봤잖아.”
이어지는 그들의 말속에 무엇이 우선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곤 한다.
한 번은 함께 출장을 온 같은 회사 임원과 언쟁이 시작되었다.
“네, 부장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뭔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일에 대한 범위와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술도 먹었겠다. 나는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우리에게는 하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자신들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어쩔 수 있어’서 이런 고생을 시키는 거냐고요?”
대기업 출신이면서 지금의 관리직들과 친밀함을 이어온 임원이 상대편의 논리로 그들을 대변한다.
“기술자가 불만이 뭐가 그렇게 많아! 이 현장에서 대빵이 누구야? 돈 주는 놈이 대빵이야! 응, 내가 무조건 제네들 말 듣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 안 되는 일 있으면 서로 협의해서 진행하면 되잖아.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같이 협력하면 안 될 일이 뭐가 있어?”
돈 주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것과 ‘나에게 피해 없게 해라.’라는 의미까지 담겨 있다.
“저 같은 중저가 엔지니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네요.”
나의 자조 섞인 말을 들은 그가 꼬투리를 잡아채듯이 말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자존심 섞인 질타에 나는 결국 항복하고 만다.
“너는 왜 자꾸 자신을 비하하는데? 자꾸 핑곗거리 찾는 거야? 뭐라도 잘못되면 너한테 책임 묻지 말라고 미리 약 치는 거냐고?”
허무하게 끝난 언쟁에 미래의 막막함만이 남았다.
‘어떻게 버티지? 도망치면 잡기 힘들겠지?’
처음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만 해도 성공에 대한 나름의 계획과 꿈이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차이를 알면서부터 조금씩 그러한 기대가 꺾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IMF를 거치고, 일명 하청 업체를 전전하면서부터 엄청난 기술자가 되거나,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조차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그 속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사나 조직의 뒷받침 없는 경력과 실력은 나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미국의 관공서를 방문했을 때 봤던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 다양한 동물들이 각자의 악기들을 가지고 연주를 준비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 오케스트라엔 지휘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그림에 대한 나의 해석은 그림을 보는 이가 지휘자가 되어보라는 것으로, 그림 앞에 서는 누구든 조직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재미를 주기 위한 그림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그 그림을 본다면,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각자 다른 성격의 연주자들이 지휘자도 없이 연주를 하겠다고 모여든 오합지졸의 모습으로 보았을 것이다.
나에게 경력자로서 현재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비워진 지휘자의 자리에 함부로 설 수 없는 이로써 현실의 문제에 대해 나 또한 ‘어쩔 수 없음’을 변명할 뿐이다.
미국에 온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앞으로도 최소 17개월 이상을 이곳에 있어야 한다. 요즘 군대가 18개월이라고 하던데, 파병을 나온 것처럼, 해외에서 다시 한번 군 복무를 하는 느낌이다.
오늘도 피곤한 몸을 간신히 누인 푹 꺼진 침대에서 군대에서도 하지 않았던 돌아갈 날짜만을 매일 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