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동안 햇빛에 달궈진 차는 삼겹살을 구울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열을 뿜고 있었다. 아무리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도 차 안의 공기는 쉽사리 차가워지지 않았다. 눈가를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보지만, 땀은 다시금 맺히고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현장을 빠져나오면, 우거진 숲 사이로 뚫려있는 좁은 도로를 맞이한다.
출퇴근 때마다 같은 길을 오고 가지만, 차 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침이면 잠에 취해 인사조차 귀찮아하던 이들이 퇴근 후 현장을 벗어나자마자 무척이나 수다스러워진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각자가 느꼈던 이야기들을 각자의 언어에 맞춰 쏟아내기에 바쁘다.
“이 새끼들은 대기업 다니는 게 무슨 벼슬인 줄 알아. 업체 사람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한다니까. 내가 지네들 노예야? 저것들 아주 선민의식에 쩔어 산다니까.”
“씨벌, 며칠 있으면 노예해방일이라는데, 나도 자유를 위해 그냥 하루 쉬어야겠다.”
“저 매니저 새끼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지 한번 열어봤으면 좋겠어. 한 달 전에 시킨 일을 오늘 또 시키고 앉아있네. 아주 속 터져서 일 못 해 먹겠다.”
욕이 난무한 선배들의 거친 말들을 조용히 듣고 있던 막내도 말문을 연다.
“꼭 빚쟁이한테 쫓기는 기분이에요. 원래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요?”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요구 사항들과 업무 지시들이 그의 눈에도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도 왜 빚쟁이들에게 쫓기는지 잘 모르겠다. 무슨 권한으로 우리에게 이런 일까지 요구하는 지도 모르겠고. 일이니까 한다고는 하지만, 사채업자한테 돈 갚는 것만큼이나 갑질하는 건설회사 놈들한테 일 갚는 것도 장난이 아니네.”
‘하청 업체’ 직원들의 하소연이지만 그들의 말들이 절박하게 들리는 이유는 막내도 그들이 겪은 현실을 앞으로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이들과 같은 거친 말들을 쏟아내는 날들이 오겠지.
한 달 사귄 여자친구를 뒤로하고 미국이란 곳까지 온 이유가 여분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젊은 친구다. 한편으론 미국이라는 기술 선진화된 나라에서 일해 본다는 것이 다시없을 기회라고 느꼈던 것 같다. 현지에서 그들의 기술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경험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 기업과 일을 한다는 것이 큰 함정이었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일을 한다는 점 이외에는 한국에서 일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미국인들과 일을 함께하고, 쉬운 영어로 인사를 하는 정도의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간단한 예로, 한국에서 일할 때 이상으로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들이 ‘지금’, ‘당장’, ‘바로’, 그리고 ‘빨리’ 등이다. 다급하게 다가오는 미래를 의미하는 단어들이 이곳에서는 가장 많이 그리고 중요하게 사용된다.
“차장님, 지금 하시는 작업 말이에요. 아직 안 되셨나요? 현장에서 당장 넘기라고 난리예요. 빨리 정리하셔서 바로 좀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말은 한결같다. 전달되는 말투와 감정이 일의 다급함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일들이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내가 어제 악몽을 꿨는데, 내가 어마어마하게 큰 깔때기 끝에 매달려 있는 거야. 그리고 박프로랑, 정프로 이 새끼들이 나한테 막 뭘 던져. 그런데 그게 깔때기 구멍으로 모여서 다 나한테 쏟아지는 거지.”
말하기 좋아하는 전기설계 담당이 지금의 현실을 깔때기에 빗대서 농담을 던진다.
“그것도 맞는데, 내가 볼 때는 이 동네, 저 동네 똥물, 생활하수 모여서 가는 곳 있잖아요! 종말처리장. 그래, 하수 종말처리장.”
설비 담당의 생각지도 않았던 비유에 모두가 크게 웃는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밀어 넣으면,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일이고. 하수종말처리장이 똥물, 하수돗물 걸러서 정화하는 것처럼 저것들 싸놓은 똥 치우는 게 우리 일이잖아요.”
“이제는 많이 지치네. 정화 능력도 떨어지고, 일에 대한 동기부여도 사라지고. 지들이 싸놓은 똥, 지들이 치워야지. 왜 우리가 치우냐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욕으로 시작했던 대화는 숙소에 다다를 즈음이면 자신들의 한탄으로 끝날 때가 대부분이다.
엔지니어로서 일에 대한 동기부여라는 것이 돈과 책임감도 있겠지만, 기술자로서 느끼는 자부심 또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엔지니어로서 처음 일을 시작할 무렵, 술자리에서 들었던 선배들의 영웅담 같은 이야기나, 그들의 경험에서 배운 기술자로서의 기준들이 나에겐 어떤 가르침보다 큰 동력이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지금의 선배들의 모습은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거나 신세를 한탄하는 ‘루저‘의 모습에 더 가깝게 보인다.
“국가적인 사업입니다. 외국에서 한국을 대표해서 일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이번 프로젝트 잘 마무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70년대에나 들었을 법한 이야기를 하는 임원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 적응은 안 되지만, 그의 말처럼 국가대표급 엔지니어지로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만한 대우를 못 받고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지금의 현실은 하청업체 직원 이상, 이하도 아니다. 우리에게 일을 주는 이들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는지, 던져주는 일들을 불만 없이 빨리 처리해 주는지가 기술자로서 평가받는 기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기술 배우면 평생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해서 배웠는데, 정작 하청업체 ‘노예’가 되어버렸어. 그러니까, 우리 꼴 나지 말고, 어여 대형 건설업체로 옮겨. 아니면 아예 직업을 바꾸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욕하던 관리자로의 길을 조언하는 선배들의 씁쓸한 현실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