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소 Oct 11. 2020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미국으로 언제 돌아가? 코로나 때문에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니야?”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다. 

외국에서 먹고살다 온 사람이 이러한 질문을 듣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일을 잡고 정착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한국의 직장 생태계 안에서 과연 ’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따라붙는 것 또한 현실이다.

과거에 한국에서 일할 때는 온전히 일에 맞춰진 삶을 살았다. 거래처로부터 일과 일정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서 주말에도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돈을 얼마나 받느냐는 둘째 문제였다. 언제나 시간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다. 최근에 한국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삶을 보면 그 당시의 나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다년간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갖게 되었다. 직업의 특성상 한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거의 1년 단위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한국과는 달리 한번 장소를 옮기면 한동안 그곳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이 너무 넓어서 고립되는 현상이다.

혼자 짊어져야 하는 일들로 몸에 무리가 갔고 이로 인한 증상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이와 함께 찾아온 혈압, 스트레스로 인한 잇몸의 붕괴, 그리고 직업병이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상들이 하루하루 나를 힘들게 했다.    

 

앨라배마에서 진행했던 건설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시점에 나는 잠시 한국에 들어가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이왕이면 이번 기회를 통해 회사를 옮길 계획까지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올 초,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부터 모든 일이 꼬여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원하지 않는 프리랜서 엔지니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흔히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로 ‘알바’ 또는 ‘일용직’ 근로자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처음에는 쉬면서 시간 될 때 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이 넘어, 이 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나는 점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가장 먼저 찾아온 두려움은 과거에 경험했던 IMF 시절의 고통을 다시 겪는 게 아닌가 하는 거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나이에 대한 한계였다. 몇 년 안에 엔지니어로서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경력을 만들어 왔다면, 지금쯤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청 업체 또는 작은 규모의 회사들을 알아보는 것과 창업을 통해 내 회사를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의 현실에서 이 모두가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경력자로 새롭게 직장을 알아보는 일도 쉽지 않다. 다름이 아니라 연공서열 때문이다. 연공서열은 ‘신입으로 입사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이 회사를 다녔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분들은 이미 사라진 오래된 구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직업 중 오래된 직종일수록 이러한 문화가 깊이 뿌리 박혀 있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그 형태가 더 단단하다. 그러기에 중간에 들어간 경력직들이 기존의 멤버들과 섞이기가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조만간에 50이란 나이를 바라보는 나로서는 한국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들에 비해 더 나은 매력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어디를 지원해도 나를 받아줄 회사는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더욱 해외에 있는 한국 회사와 외국인 회사를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넌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뭐가 걱정이냐! 지금 애들이 문제지.”      


가끔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친구들로부터 듣는 핀잔이다.

내게 직면한 현실의 문제가 가장 큰일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친구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대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경험했던 IMF 시대와 지금이 너무도 닮아있기에 새롭게 세상에 나오는 세대들이 지금의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큰 걱정 중에 하나다.     


나는 코로나 시기의 취업에 관한 기사를 얼마 전부터 자주 접하고 있다. 포털에 걸린 기사들은 현재의 취업 생태계가 코로나로 인해 무너졌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첫 취업을 준비하는 지금의 세대들의 나이에 관한 마지노선까지 언급하는 기사들도 있었다. 정말로 끔찍했다. 마치 내가 경험한 IMF 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IMF 사태가 그러했듯, 코로나 사태는 미래의 고통을 많은 젊은 친구들에게 전가했다. 때를 맞춰서 진행해야 할 배움의 시기가 엉망이 되었고, 취업의 시기를 더 늦출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사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관계의 회복, 일상으로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이미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너무도 많이 바꿔 버렸다. 언제 다시 발발할지 모르는 유행병의 시대가 되었고, 국가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IMF 세대가 변형된 경제의 모습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듯이, 지금의 세대는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문제들을 안고 사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일상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바라기로는 지금의 코로나 세대가 고통을 떠안는 식의 해결책을 기존 세대가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너희의 잘못이란 식의 문제 해결방안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기회를 잃지 않고 그네들이 기대하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금의 세대가 더 많은 것을 준비했으면 한다. 

그것이 먼저 걸어간 선배로서 가져야 할 미래세대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심재국 화백님의 '대나무'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aekuk.shim


작가의 이전글 빳데리? OR 베러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