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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Sep 28. 2020

빳데리? OR 베러리?

IMF 세대의 미국사회 경험_02

우리가 세대 간의 차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분야가 언어이다. 

특별히 단어 사용에 있어서 그 차이를 가장 많이 느낀다. 신조어가 새롭게 나타나기도 하고, 기존에 쓰였던 단어들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현상들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같은 단어라도 한국과 미국의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콩글리쉬’라고 하는 ‘핸드폰’, 노트북‘ 등이 이에 속한다. 또 다른 현상은 영어 단어를 한국식 발음 또는 일본식 발음 그대로 차용해서 사용하는 경우이다. 특별히 발음 차이에 따른 의미해석의 오류는 이민 사회에서 세대 간의 간격을 크게 만드는 문제로 인식된다. 만약에 LA이나 뉴욕 인근에 한인이 하는 차량 정비소를 들를 일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빵꾸‘라는 단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이란 사회는 우리가 접했던 드라마나 영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사회 전반이 보수적이면서 가정적이다. 한국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닐 만한 곳도, 즐길만한 것도 많지 않다. 특히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중소형 도시의 경우 지루함의 끝을 경험할 수 있다. 저녁 8시만 되도 거의 모든 상점의 불이 꺼진다. 다만 큰 길가에 있는 주유소 상점들만 24시간 영업을 한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하우스 파티를 자주 연다.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나누고, 맥주를 즐기면서 대화를 나눈다. 나도 어린 시절 미국 드라마에서 보던 미국 가정들의 파티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 이민 가정들도 비슷하다. 먼저 정착한 이민 1세대 들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그래서 주변에 새로 이민 온 가정들이나 유학생들을 초대해 같이 한국 음식을 나누고 대화하기를 즐긴다. 

한번은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이민 가정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민 온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아저씨의 경우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도 커서 주변의 한국 사람들을 자주 초대했다.      

저녁 식사의 초대를 받은 나는 마트에서 파는 빵과 과일을 준비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초대받은 사람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가는 게 예의이다. 자기가 직접 데리러 오겠다는 말에 나는 집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에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나갔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네 잘 지냈습니다. 별일 없으시구요?”     


한동안 못 만났던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집사님께 인사해야지!”     


아빠가 딸 아이에게 인사를 재촉했다.


보통 한인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호칭은 ‘집사님’이다. 

신앙심이 투철하지도 않은 내가 미국에서는 어느새 집사가 되어있었다.     


“안녕하세요. 집사님.”     


“그래 휘우도 잘 지냈지? 아이고 볼 때마다 쑥쑥 크는구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는 이런 형식적인 인사만을 마치고 아저씨가 운전하는 차의 옆자리에 앉았다.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가는 동안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의 경제문제, 이민자 가정의 문제점들, 아이들에 대한 기대 및 우려 등등. 

하지만 마지막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항상 차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차 못 보던 건데, 새로 장만하신 건가요?”     


“네, 지난달에 중고 하나 샀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전에 있던 가정용 차 있잖아요! 이민 와서 지금까지 타던 찬데, 팔려고 하니까 너무 아쉽더라구요. 

그래도 어떻하겠습니까! 아이들도 커가는데 좀 큰 차로 바꿨지요.”     


일반적인 남자들이 그렇듯, 그도 차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차에 대한 전문가 마냥 중고차 잘 고르는 방법을 설교하듯이 나에게 말하였다.   

  

“차란 자고로 엔진이 얼마나 좋으냐가 관건이죠. 연식이나 주행거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차를 시험주행 했을 때 느껴지는 엔진의 소리와 떨림이 중고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거죠.”     


나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차에 관한 문외한이다. 어떤 차가 좋고, 어떤 차가 값어치가 있는지 잘 모른다. 

더군다나 차량의 성능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래도 그의 중고차에 관한 지식 자랑에 나는 장단이라도 맞춰줘야 했다.      


“중고차 사면 이것저것 수리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저도 중고차 알아보고 있거든요.”     


그가 보기에 나는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중에 초보였다. 내가 중고차를 알아봐야 한다는 말에 그는 더욱 신이 나서 차에 관해 심도 있는 설명을 이어갔다.     


“김 집사님도 차 보실 때, 먼저 살펴봐야 하는게 빳데리, 빳데리거든요! 중고차 딜러들이 빳데리를 가지고 장난을 잘 쳐요. 다른 부분들이 안 좋은 것을 빳데리 때문에 그렇다고 퉁치거든요. 조심하셔야 돼요.”    

 

나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가며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중고차를 살 때 빳데리를 새로 갈아야 하나요?”     


한참 열을 올리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빠와 나의 말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휘우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마침내 참지 못한 휘우가 둘의 대화의 틈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런데 아빠! 아빠! 빳데리가 뭐야?”     


“.....”     


갑작스러운 아이의 질문이 우리를 침묵하게 했다. 그 아이는 영어인 ‘빳데리’가 뭔지를 몰랐다. 아니, 단어가 가리키는 물건이 뭔지를 몰랐던 것이다.     


“어... 그게 건전지, 건전지거든! 휘우 시계에도 넣고 우리 TV켤 때 리모콘 쓰잖아. 거기에 넣는 것들... 그래, 휘우가 가지고 있는 인형 있지? 거기에 넣으면 말도 하고 ‘알라뷰, 알라뷰’ 말하게 하는거 있잖아!”     


마치, 세상의 아빠들은 자식들의 궁금증을 열심히 풀어줘야 하는 존재인 것처럼 보였다.     


“그거 베러리잖아! 왜 빳데리라고 해!”     


아이의 질문에 우리는 또다시 멍해졌다. 

이 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미국에서 생활해 왔다.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에게 한국식 발음은 같은 단어도 다르게 느껴지게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아이 아빠의 설명이었다.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응, 밧데리는 한국어고, 베러리는 영어라서 그래!”     


그 순간에는 그의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밧데리는 한국어, 베러리는 영어...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설명이었다.     


가끔 나는 이 꽁트 같은 상황이 생각날 때마다, 언어의 차이만큼이나 아빠와 딸을 대변하는 세대 간의 차이를 같이 생각하게 된다. 세대 간에 쓰는 언어는 똑같아도 그들이 인식하는 언어의 의미와 형태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민 사회를 예로 들어 이민 첫 세대와 그다음 세대 간의 차이를 언어로만 설명하기에는 여러 가지 논리의 비약(건너뜀)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이 한국보다는 선명하기에 더욱 세대 간의 차이가 또렷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세대 간에 언어의 장벽이 미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도 강도의 차이만 다를 뿐, 현실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각 세대가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고 서로의 언어를 세대 간에 공유하지 못한다. 같은 단어들도 각 세대로 들어가면 각각의 고유한 뜻들이 변형된다. 

하지만 그것을 메우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없다. 그러기에, 세대 간의 갈등과 오해가 이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빳데리와 베러리의 차이’는 세대 간의 언어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본다. 나이 들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이해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대문에 걸린 그림은 심재국 화백님의 '겨울' 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aekuk.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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