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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Nov 20. 2020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

IMF 세대의 미국사회 경험_03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나도 군에 입대하던 시절부터 무수히 들었던 이야기다. 

사람이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숙명이나 책임에 대해, 의지를 갖고 맞서라는 상징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한 가지 일에 대해서만큼은 반대로 행동했다.     


”피할 수 없다면, 그래도 끝까지 피해라!“     


늦은 나이에 이르러서까지 맞닥뜨린 ‘영어 공부’는 평생을 두고 쫓아다닌 빚쟁이마냥, 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아붙였다. 어떻게든 피해 보려 최선을 다했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영어와의 악연이 나에게서 항복을 선언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어린 시절부터 외우는 것을 너무도 싫어했던 성격이라, 우리말도 아닌 외국어를 암기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무척이나 심했다. 집안 분위기상 영어 공부를 가르칠만한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혼자서 어떻게 이런 괴물을 대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영어에 대한 흥미는 급속도로 떨어졌고, 그로 인해 학창 시절 모든 영어시험에서 5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대입과 편입 시험의 경우에도 영어점수의 비중이 낮은 학교 위주로 원서를 넣었다. 심지어 대학 입학 이후에도 공인영어는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 토익점수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삶에 있어 가장 강력한 ‘빌런’은 언제나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는 법이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미국이란 환경 속에 나를 내던졌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까짓 것 언어 하나 공부하는데 뭐 1년씩이나 걸리겠어? 6개월이면 충분해!“     


미국까지 가서 영어를 공부하는데 아무리 못해도 1년이면 뒤집어쓰고도 남을 거라 믿었다. 

그것은 아마도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가졌던 나만의 철없는 다짐이었던 것 같다.   

   

내가 경험해야 할 현실의 문제는 비행기가 도착한 워싱턴의 둘루스 공항에서부터 터지고 말았다. 입국심사 요원이 뭔가 잘못됐다는 표정으로 몇 가지의 질문을 던지는 동안, 나는 어떠한 답변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준비해간 모든 서류를 보여주고,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 제목처럼 ”Sorry, Sorry“를 수도 없이 외치고 나서야 어렵게 입국장을 마지막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뜩이나 더운 여름날에 식은땀은 등줄기를 타고 내렸고, 이미 정신은 반쯤 빠져나간 상태였다. 더구나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던 친구는 시간에 맞춰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공항 밖은 한 걸음도 나가지도 못한 채, 2시간이 넘도록 그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있었다. 

무엇하나 영어로 질문할 수 없었던 나는 그렇게 배고픔과 두려움에 지쳐갔고, 외국 공항에서는 좀도둑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화장실도 못 가고 마냥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마침내 그리도 기다리던 친구가 나타났다. 

가족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를 데리고 갈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늦어졌다는 변명에 한편으론 화도 났지만, 잊지 않고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짐이 가득 실린 밴에 올라탄 나는 이것이 나에게 닥친 현실임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경험이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어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배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굳건히 다짐했다. 열심히 학교 공부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어린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같이 식사도 하고, 들리지도 않는 영화도 보러 가고, 단체로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모이는 곳도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영어 실력은 성장하지 않았다. 같은 반 어린 동기들은 어린 아이들이 자라듯이 한 달이 다르게 대화 능력뿐만이 아니라 읽기와 쓰기가 점점 늘어가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뒤처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영어로 듣고, 대화하는 것이 너무도 간절했던 나는 영어의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로 주변에 영어를 가르쳐 주는 곳은 모조리 찾아다녔다. 마치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무공의 고수들을 ‘사부’로 삼아 그들의 무예를 습득하듯이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 스승들은 모두 찾아다녔던 것 같다.

은퇴 후, 봉사활동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 할아버지, 알바비 벌어보겠다고 유학생들을 상대로 회화를 가르치는 한인 2세, 외국인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봉사활동 점수를 받는 어린 원어민 대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안 찾아간 스승이 없었다. 모두가 너무도 고마운 스승들이었다.      


매주 그들을 직접 만나서 공부했고,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나의 실력이 느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로부터 배운 영어는 생활 속에서 원어민과 만나서 사용하는 영어와는 현실적인 차이가 매우 컸다.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언어능력이야 한국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 실력을 갖추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 후로도 나의 영어 공부는 계속되었지만, 실력은 여전히 기본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미국으로 신학 공부를 하러 오신 영문학 전공의 목사님을 소개 받았다. 

그리고 그를 통해 나의 영어 공부의 문제점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지적한 것은, 

내 머릿속에 언어적 체계가 바르게 정립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도구로 생각을 정립하고 정보를 전달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책을 멀리하고 언어적인 체계를 바르게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외국어뿐만이 아니라 모국어를 쓰는 것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글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과 나에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소홀했다. 기껏해야 자기소개서 정도를 베껴 쓰는 것 이외에는 거의 글을 쓸 일이 없었다. 당연히 말과 글을 통해 구성되어야 할 언어의 논리가 빈약할 수밖에 없었고, 생각을 표현하는데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태로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한다 해도 새로운 언어가 내 몸에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유튜버 동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여러 영상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영상은 그녀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 영어 가르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한 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포기했던 학생이 바로 모국어의 언어 능력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학생이었다. 그녀는 한글을 읽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조리있게 구성하지도 못했다. 단기 어학연수까지 방학 기간을 이용해 다녀오긴 했지만, 결국 그 영어 선생님은 그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모국어를 통해 언어적 사고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 불가능 하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다른 언어를 가르친다고 해도 노력에 비교해 성과가 거의 없다. 결국 내가 가지고 태어난 모국어를 통해 언어의 체계를 바르게 아는 것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않는 외국인으로서 첫 번째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모국어와 외국어 실력이 하루아침에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갖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새로운 언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어릴적 가졌던 영어에 대한 두려움 또한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외국어란 것이 뜻 모를 암호가 아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논리의 체계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언어에 관한 공부는 평생을 함께할 나의 업이라 생각하기에 천천히 하지만 가볍지 않게 배워 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나의 언어적 체계를 통해 나와 다른 이들의 생각의 모양들을 하나하나 이해해 가보고자 한다.


[그림은 심재국 화백님의 '체리' 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aekuk.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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