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디자인을 만나다."
ㅣ 들어가며 ㅣ
<북유럽 디자이너 토크>는 다양한 분야의 북유럽 디자이너들과 직접 마주 앉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 토크 세션입니다. 북유럽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비롯한 패션, 건축, 뮤지엄, 놀이터, 카페, 게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얼마 전 회사 프로젝트와 관련된 리서치 중에 인상적인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무선 스피커 브랜드의 지면 광고였는데 감각적인 컬러와 배색, 직관적인 레이아웃 기법이 기억에 남아 좀 더 찾아보게 되었고, 비파 (VIFA)라는 덴마크의 오디오 브랜드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파는 지금 덴마크 태생 무선 스피커 분야에서 급부상 중인 브랜드다. 스칸디나비아의 미니멀한 디자인과 깊이 있는 사운드 성능을 기반으로 젊은 세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모바일 기반으로 변화하면서 사운드 산업은 그야말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음악과 사운드를 전달하는 기능을 뛰어넘어 AI, AR, 머신러닝 기술까지 접목되며 엄청난 잠재성을 가진 시장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같은 맥락 안에 있는 북유럽 태생의 스피커 브랜드 비파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수 차례의 메일과 전화가 오고 간 끝에 성사된 이번 토크 세션은 비파의 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코펜하겐의 어느 갤러리에서 진행되었다. 비파의 최고 경영자인 마이클 소렌슨 (Michael Sørensen)과 디자인 파트너인 헨릭 매튜 아슨 (Henrik Mathiassen) 이 함께해 브랜드의 흥미로운 뒷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디자인 토크 세션에 온 것을 환영한다. 소개를 부탁한다.
비파의 대표 마이클과 디자인 부문 파트너 헨릭이라고 한다. (헨릭은 디자인 에이젼시 Design-people을 운영하고 있으며 비파와는 파트너 관계이다. www.design-people.com) 많은 사람들이 트렌디한 디자인과 감각 덕분에 비파를 신생 브랜드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파 브랜드를 소개하려면 9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미 1933년 설립된 회사이다. 초창기에는 스피커의 핵심 부품을 설계, 제작하는 비즈니스로 시작하여 전 세계 스피커 회사에 부품을 공급해왔다. 2014년, 자체적으로 무선 스피커를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우리의 모델을 내놓고 있다.
출시하는 모델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제품명이 흥미롭다
북유럽 주요 도시에서 모델명을 가져왔다. 스톡홀름(Stockholm), 코펜하겐(Copenhagen), 헬싱키(Helsinki), 오슬로(Oslo), 레이캬비크(Reykjavik)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무선 스피커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만 각 모델별로 사이즈는 물론 디자인, 컬러, 활용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권을 제시한다. 바로 얼마 전에는 비파 시티 (Vifa city)라는 미니 스피커 라인도 출시했다.
비파만의 디자인 철학과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그리고 그 부분을 어떻게 마케팅에 담아내는지도 궁금하다
궁극적으로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충실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인테리어 오브제에서 볼 수 있는 내추럴한 혹은 따뜻한 텍스쳐의 소재와 미니멀한 메탈 프레임의 조합은 비파만의 특별한 디자인 언어를 완성한다. 단순한 디지털 제품이 아닌 인테리어의 한 부분으로 스며드는 감성적인 느낌을 담아내려 했다. 특히 스피커 커버 부분에 적용된 패브릭은 덴마크 텍스타일 브랜드 ‘크 바드 라트 (kvadrat)’ 와 협업하여 진행한다. 사운드가 뭉개지지 않고 온전하게 스피커 천을 관통하는 기술은 결코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이를 위해 1년 넘게 사운드에 적합한 텍스타일 소재 연구를 공동 진행했다. 스피커 소재 천의 이음새와 간격까지 일일이 조정하는 섬세하고도 난해한 과정이었다. 물론 역사와 전통이 증명해주는 사운드의 기술력은 기본이다. 마케팅 전략에 있어서는 테크널로지에 집중하기보다 생활 속에 스며드는 ‘오브제’로서의 보다 감성적인 부분을 어필하고 있다. 소비자는 이제 단순히 기능적으로 더 나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어떤 스토리의 경험을 주는 제품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 제품의 론칭을 전자제품 관련 행사가 아닌 스톡홀름 가구전시회에서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거실이나 서재에 놓았을 때 자연스럽게 집안의 인테리어와 녹아들게 하는 것이 주된 콘셉트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스톡홀름 가구박람회가 최적의 조건이었다. 지금도 신제품이 출시되면 인테리어 관련 페어인 파리 메종오브제나 밀란 디자인 페어에서 론칭한다. 물론 CES, IFA 같은 전통적인 행사에도 참여한다.
감각적인 광고 이미지 컷 © VIFA
디지털 제품이 아닌 라이프 스타일 오브젝트로 접근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제품의 개발 프로세스도 왠지 다를 것 같다
개발 초반부에 진행되는 사용자 리서치 (User Research)에 상당한 공력을 들인다. 누가, 어떤 곳에서 어떤 목적으로 이 제품을 사용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내 포트폴리오 라인업과 비즈니스 플랜을 고려해 최종 타깃이 정해지면 이를 기본 틀로 하여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특히 디자인 개발 초기단계에서는 소재 (material)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데, 디자인, 음향 등의 중요한 영역을 담당하기에 개발 단계에서 상당히 집중하는 과정이다. 이 연구가 진행하면서 내구성, 음향, 음질 테스트도 함께 진행한다. 이 과정의 성패는 오픈된 협업 시스템이 좌우한다. 비파 내부 부서뿐 아니라 외부 협력업체와도 적극적으로 내용을 공유하며 개선방향을 함께 찾아나간다. 가령 예를 들어 코펜하겐 (Copenhagen) 모델의 경우 전체 메탈 프레임의 후가공을 놓고 협력업체들과 굉장히 다양한 시도와 검증을 진행했다. 보편적으로 금속에 컬러 착색에 적용하는 아노다이징 (anodizing) 공법은 손에 닿았을 때 차가운 느낌이 전달되기에 우리 제품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다이캐스팅 후 페인팅하는 공법을 택해 따뜻한 촉감을 주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 같은 프로세스 르 거쳐 인테리어 오브제와 같이 따뜻하고 감성적인 제품이 출시될 수 있었다. 덧붙여서 모든 소재는 환경친화적인 공법을 지향한다. 특히 유럽은 제품 리사이클링에 대한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에 이를 반으로 한 롱라스팅 (long-lasting)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이를 바라보는 비파만의 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연구와 투자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세대 모델들이 기획되는 것이 맞다. 스마트 홈의 개념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비파의 제품이 이 스마트 홈 카테고리에 어떻게 포지셔닝될지 앞으로 지켜봐 달라. 현재 코펜하겐 대학과 이와 관련된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흥미로운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디자인 제작과정 © Design-people
지금까지의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아무래도 론칭 초창기의 모델들이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이 있었다. 브랜드의 비전과 방향이 고스란히 드러나야 하는 제품이었기에 상당히 많은 시간 공을 들인 것으로 기억한다. 앞서 언급한 디자인의 방향성과 랭귀지 구축, 유니크한 소재와 공법의 적용, 풍부한 사운드 퀄리티의 실현 등. 초반에 정해진 브랜드의 방향성은 중간에 변경하기가 쉽지 않기에 첫 단추가 매우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지금 비파가 담고있는 고유 언어는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본다.
북유럽의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한국의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주목받는 것은 우리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웃음) 한국에는 삼성, LG 등 디자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훌륭한 기업들이 많기에 그만큼 기회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면 그 안에서도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겠지만 분명 한계도 존재한다. 한국과 다르게 덴마크의 디자이너들은 어느 기업의 소속이기보다는 스스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 브랜드의 창업하고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 방향을 선호한다. 여러 면에서 도전이 있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 훨씬 더 큰 성장의 에너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비파의 다음 비전은 무엇인가
가장 최고의 퀄리티를 위해 하루하루를 투자하고 있다. 이 매일의 투자가 다른 레벨의 클래스에 이르게 한다고 믿는다. 우리 제품이 뛰어나다고 외치기 (shouting) 하기보다는 제품의 디자인과 퀄리티로 조용히 하지만 묵직하게 전하려 한다. 결국 소비자는 그 가치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얼마 전 서울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했다. ‘VIFA home, living with music’을 테마로 하여 성수동 에디토리에서 론칭 케이스를 진행했다. 보다 많은 한국 사용자들이 방문하여 비파의 사운드와 디자인을 경험하길 바란다.
비파의 제품이 전시된 서울 성수동 에디토리 © EDITORI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 이미지 컷 © VIFA
트렌디하거나 힙한 유행의 흐름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다. 어느 순간 클래식이 되어버리기도, 한물간 이야기가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중 어떤 것은 오래도록 그 흐름이 지속되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기도 한다. 이렇게 선별되는 것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지속성이 있으려면 고유의 가치가 설득력 있게 드러나야 하며, 사용자를 머물게 하는 스토리 텔링 (story telling) 이 필요하기 마련. 결국 우리는 경험 (experinece)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자 경험 분야 (UX : User experience)가 컨슈머 제품뿐 아니라 은행, 공공기관, 카드사 등 비즈니스 경계의 구분 없이 거론되는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개발 초기부터 사용자가 경험하게 될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스토리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비파의 철학’이 더욱 와 닿는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북유럽의 많은 디자인 브랜드들은 공통적으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중요시한다. 소비자의 경험을 가이드해주는 역할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제품 자체에만 집중한 현란한 광고보다는 그 제품이 가진 본질과 가능성 혹은 확장성을 드러내는 것에 더 많은 수고를 들인다. 그 수고는 꽤나 정밀하게 포커스 되어 있고 그것은 결국 브랜드와 소비자의 접점을 연결해주는 링(ring)의 역할을 해준다.
그 접점이 연결되어 스파크가 튀는 순간, 진정한 브랜드의 가치는 만들어진다.
ㅣ END ㅣ
글쓴이 : 조상우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 사진을 기록하는 포토그래퍼로, 그림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으로 향한 한국인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은 책, <디자인 천국에 간 디자이너 / 시공사> 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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