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UN] 스톱워치와 유엔 합의 7

나의 개입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2016.12월 어느 추운 겨울 유엔 본부 지하 제5회의실(Conference Room 5).


“이건 공정하게 관리되고 있지 않습니다.”


말은 낮았지만, 유리벽 너머 통역 부스의 불빛까지 잠깐 흔들릴 만큼 또렷했다. 누가 마이크를 켰는지보다, 누가 나를 겨냥했는지가 더 분명했다. 빨간 불은 대표단 앞에서 켜져 있었는데, 시선은 내 테이블 위에서 멈췄다. 제5위원회에서 공정성 불만은 늘 ‘주제’가 아니라 ‘진행자’를 향한다. 방이 나를 보며 묻는 것은 단 하나—너는 중립이냐, 아니면 장식이냐.


“미스터 코디네이터, 발언권 배분에 대한 이의가 제기됐습니다.” 사무국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마이크를 켰다. “절차에 따라 요지 확인 후, 정리하고 다음 발언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코디네이터, 지금 필요합니다. 짧게, 정확하게.”


통역 부스에서 손짓이 들어왔다. 내 오른쪽 사무국 직원이 속삭였다. “아랍어 채널, 15초 뒤처집니다.”


“문장을 짧게 받겠습니다.” 내가 속삭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마이크를 켰다. “짧게라면, 좋습니다. 방금 상황은 ‘공정성’이 아니라 ‘지연’입니다.”


G77 대표가 즉시 받았다. “지연이 아니라, 배제입니다. 우리는 말할 기회가 사라지는 순간을 보고 있습니다.” EU가 끼어들었다. “우리는 발언권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문안 제안이 나오면 기술적으로 확인할 권리가 있습니다.”


절차주의자가 버튼을 눌렀다. “Point of order. 응답권이 반복되면, 대기 명단은 의미가 없습니다.”


“좋습니다.” 내가 숨을 짧게 들이쉬었다. 응급실 메스를 떠올렸다. 먼저 상처의 모양을 보여주고, 그 다음에 봉합을 제안하는 방식. “제가 이해한 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일부 대표단은 예산 아웃라인의 언어가 규율을 담보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표현의 강도—예컨대 ‘requests’냐 ‘recommends’냐—가 자원 배분과 감축 경로의 신호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 요지 맞습니까?”


그가 짧게 말했다. “맞습니다.”


“둘째,” 내가 이어갔다. “다른 대표단은 동일한 절차가 동일한 체감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통역 지연, 각 대표단 본부 지침의 시간차, 반복되는 응답권이 누적되면서 발언 기회가 잠식된다는 우려입니다. 이 요지, 맞습니까?”


작은 도서국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를 켰다. “맞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말할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니라, ‘오늘’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G77 대표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 확신이 없으면 합의도 없습니다.”


절차주의자가 다시 끼어들었다. “요지는 세 가지입니다. 예측 가능성—누가 언제 말하는지—그게 빠졌습니다.”


“그건 둘째에 포함됩니다.” 내가 바로 답했다. “저는 지금부터 예측 가능성을 ‘형태’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 방에서 중립은 선언이 아니라 수행이니까요.”


“지금부터는 이 두 가지를 ‘의견’이 아니라 ‘선택지’로 바꾸겠습니다.” 나는 노트 여백에 A와 B를 적었다. “현재 논점은 A, 표현 강도를 유지할지, B, 표현을 완화해 합의 가능성을 높일지입니다. 그리고 선택을 하기 전에 각 진영이 왜 그 선택이 원칙에 부합하는지, 같은 구조로 한 번씩만 말합니다.”


EU가 낮게 웃었다. “같은 구조라… 오늘은 작문 수업입니까?”


“오늘은 신뢰 수업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세 줄이면, 통역도 따라잡습니다.”


절차주의자가 물었다. “시간은요?”


나는 마침내 주머니에서 스톱워치를 꺼냈다. 책상 위에 올려놓는 순간, 카펫이 삼키던 소리가 잠깐 되돌아왔다. 스톱워치는 시간보다 정당성을 재는 장치였다. “각 대표단 2분입니다. 중요한 건 ‘같은 시간’이 아니라 ‘같은 형태’입니다. 1) 제안하는 표현, 2) 그 표현이 담보하는 원칙, 3) 상대의 우려를 수용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 세 줄. 제가 요지를 한 문장으로 확인한 뒤, 바로 다음 발언권으로 넘기겠습니다. 끼어들기 없습니다.”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당신이 그 ‘형태’를 강제하겠군요.”


“우리가 합의한 절차를 실행하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형태가 없으면, 공정성은 주장만 남습니다.”


내가 말했다. “반대 의견부터. 배분하겠습니다.”


“G77.” 내가 이름을 불렀다. “2분, 세 줄. 시작하십시오.”


G77 대표가 마이크를 켰다. “첫째, 우리는 ‘requests’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이는 개발과 지역 협력이 예산의 주변이 아니라 핵심이라는 원칙을 담보합니다. 셋째, 우리는 규율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절감은 특정 부문에 편중되지 않아야 하고, ‘효율’이 발언권을 줄이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들은 요지는 이렇습니다.” 나는 즉시 되돌렸다. “표현 강도 유지, 절감의 균형, 효율의 남용 방지. 맞습니까?”


“맞습니다.” G77 대표가 짧게 답했다.


“EU.” 내가 이어 불렀다. “2분, 세 줄.”


EU 대표가 말했다. “첫째, 우리는 ‘recommends’로 이동할 여지가 있습니다. 둘째, 합의 형성을 위해 문구를 유연하게 두되, 다른 문단에서 규율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원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셋째, 수용 조건은 ‘규율’의 언어가 특정 프로그램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명시입니다.”


“요지 확인.” 내가 말했다. “유연한 표현, 다른 문단에서 규율 보강, 비표적화. 맞습니까?”


“맞습니다.” EU가 답했다.


그가 마이크를 켰다. “우리 차례군요.”


“동일한 구조로 부탁드립니다.” 나는 엄지를 스톱워치 위에 올렸다.


그가 말했다. “첫째, 우리는 ‘requests’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둘째, 강한 언어는 자동으로 비용을 부릅니다. 셋째, 우리가 수용할 최소 조건은 어떤 표현을 쓰든 감축 경로가 텍스트 안에 ‘보이는’ 것입니다.”


“요지 확인.” 내가 말했다. “표현 완화, 비용 자동 상승 우려, 감축 경로의 가시화. 맞습니까?”


그가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맞습니다.”


절차주의자가 다시 마이크를 켰다. “코디네이터, 응답권은요?”


“지금은 응답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내가 말했다. “세 입장이 같은 형태로 제시됐습니다. 이제 문단으로 돌아가, A와 B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지지를 받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추가 발언 요청은—동일 쟁점에 한 번, 동일 형식으로만.”


나는 버튼을 눌렀다. 클릭은 작았지만, 방 안의 규칙이 바뀌는 소리였다. 그 이후의 분초는 무기가 아니라 난간이 된다. 난간이 생기면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계산을 시작한다.


절차주의자가 마이크를 다시 켰다. “미스터 코디네이터, 방금 당신의 정리에 따라 제 이의는 철회하겠습니다. 절차가 보입니다.”


작은 도서국 대표가 아주 작게 말했다. “이제 우리도 숨을 쉴 수 있겠군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숨은 언제나 합의보다 먼저 돌아온다.


(사진 출처: 개인소장)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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