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UN] 스톱워치와 유엔 합의 8

장시간 발언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2016.12월 어느 추운 겨울 유엔 본부 지하 제5회의실(Conference Room 5).


“코디네이터, 추가로 한 가지만 더 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그 낮음이 오히려 큰소리였다. ‘한 가지’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나는 그 한 가지가 늘 세 가지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단지 약속의 정의를 바꾼다. 방 안의 공기는 방금 내가 세워 둔 ‘형태’—세 줄, 두 분—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동시에 그의 여유도 기억하고 있었다. 여유는 언제나 권력의 외투다.


“대기 명단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마이크를 켠 채로, 최대한 평평한 음성으로. “지금은 문단 처리 중입니다.”


그는 웃지 않았다. “이건 문단이 아니라 원칙입니다. 방금 당신의 정리에는 빠진 부분이 있어요.”


G77 대표가 버튼을 눌렀다. “미스터 코디네이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려한 ‘추가 발언의 변질’입니다.”


EU도 곧바로 받았다. “코디네이터, 방금 합의한 ‘동일 쟁점 한 번’ 규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나는 스톱워치를 보았다. 숫자가 초 단위로 차갑게 뛰고 있었고, 그 차가움이 내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시간을 자르는 게 아니라, 사람의 체면을 자르는 일이다. 체면이 잘리면, 회의는 문단이 아니라 복수로 움직인다. 특히 모굴 같은 사람에게서 체면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의 보험이다.


“대표님,” 내가 그를 향해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빠진 부분’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만 말씀해 주시면 제가 요지에 반영하겠습니다. 그 이상은 대기 명단으로.”


“한 문장?” 그는 마치 낯선 규칙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되물었다. “그건 당신이 정한 규칙이죠.”


“우리가 합의한 절차를 실행하는 방식입니다.” 나는 즉시 되돌렸다. ‘내 방식’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공정성은 개인의 취향이 된다. “2분, 세 줄. 동일한 구조.”


그는 잠깐 정적을 만들었다. 정적은 그가 자주 쓰는 기술이었다. 상대가 먼저 불안해지길 기다리는 정적. 그러나 방금 내가 만든 ‘형태’는 정적에도 표정을 요구했다. 정적이 길어지면, 그 자체가 발언이 된다.


“좋습니다.” 그가 말했다. “한 문장으로 하죠.”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여전히 여유롭게 말했다. “감축 경로의 ‘가시화’는 다른 문단으로 미룰 수 없습니다.”


그 문장은 날카로웠다. 날카로움은 짧을수록 더 위험하다. 나는 그 문장을 내 방식으로 다시 말해야 했다. 상대가 폭발하지 않게, 그러나 의미는 흐리지 않게.


“요지 확인.” 내가 바로 말했다. “감축 경로 가시화는 현 문단에서 원칙으로 명시돼야 한다는 요청.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주 짧게.


“감사합니다.” 나는 그 ‘감사합니다’를 ‘종료’의 신호로 사용했다. “그 요지는 제가 정리해 두었습니다. 지금은 다음 대기 명단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나는 다음 대표단을 불렀다. “작은 도서국, 2분, 세 줄.”


그때 그가 마이크를 다시 켰다. “코디네이터, 그런데—”


그 ‘그런데’는 칼집에서 다시 빠져나오는 칼이었다. 방 안의 공기가 한 번 더 경직됐다. 통역 부스가 멈칫했고, 내 오른쪽 사무국 직원이 눈을 크게 떴다. ‘이제 끊지 않으면, 네가 방금 세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눈.


나는 선택지를 빠르게 계산했다. 1) 내게 책임을 던졌고, 나는 지금 그 책임을 다시 돌려줄 수 없다. 2) 부드럽게 허용한다. 그러면 규칙은 무너지고, 공정성 불만은 다시 폭발한다. 3) 부드럽게 끊는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른다.


나는 마이크를 켠 채로, 가능한 한 예의를 끝까지 붙였다. “대표님, 방금 말씀은 이미 요지로 반영됐습니다. 절차상 지금은 다음 발언권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추가로 필요한 사항은 주차 목록에 기록해 두겠습니다.”


“주차?” 그가 낮게 웃었다. “주차된 쟁점은 대개 방치됩니다.”


“방치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단호함은 문장에만 남기고, 목소리는 올리지 않았다. “주차 목록을 마지막 세션에서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말을 삼켰다. 나는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공손한 제지’를 어떻게든 ‘편들기’로 바꾸려는 계산. 여기서 내가 한 번만 흔들리면, 그는 그 흔들림을 증거로 만든다. 제5위원회의 싸움은 대부분 증거를 만드는 싸움이다. 문장 자체보다 문장을 만들 때의 표정이 더 오래 남는다.


“미스터 코디네이터,” 그가 방향을 틀었다. “절차상 제 발언이 제한되는 것이 적절합니까?”


“대표님, 우리 모두 방금 합의된 절차를 적용했습니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그가 잠깐 내 쪽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보다 평가가 많았다. ‘네가 정말로 이 방을 운영할 수 있는가?’라는 평가. 그 평가가 끝나면, 그는 나를 적으로 만들 수도 있고, 동료로 인정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판단이 그의 머릿속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뒤에는 그룹이 있고, 그 그룹 뒤에는 수도가 있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관계선 하나가 함께 무너진다.


작은 도서국 대표가 마이크를 켰다. “첫째, 우리는 발언권 배분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감축 경로’의 언어는 특정 프로그램을 겨냥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오늘 문장이 내일의 지침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지 확인.” 나는 즉시 되돌렸다. “예측 가능성, 비표적화, 문장의 파급. 맞습니까?”


“맞습니다.” 대표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지만, 떨림이 오히려 진실처럼 들렸다.


내가 정리하고 다음으로 넘기는 리듬이 다시 자리 잡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는 다른 리듬이 뛰고 있었다. 대가의 리듬. 나는 방금 ‘권력자의 발언’을 끊었다. 거칠게 끊지 않았다. 모욕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실이 문제를 없애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교묘한 문제를 남긴다. 그는 이제 ‘내가 그를 끊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젠가 다른 문단에서, 다른 의제에서, 다른 표결에서 이자를 붙여 돌아올 수 있다.


회의는 계속됐다. 통역은 따라잡았고, 대기자 명단은 한 번 줄어든 듯 보였다. 그러나 공정성은 여전히 얇은 얼음 위에 있었다. 나는 다시 스톱워치를 보았다. 숫자는 정확했고, 정확함은 이 방에서 늘 논쟁의 씨앗이 된다. 누군가에게 정확함은 정의지만, 누군가에게 정확함은 공격이다.


그가 마이크를 끄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더 이상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펜을 들고 무언가를 적었다. 그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내 귀에는 마치 ‘나중에’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다음 발언권을 불렀다. 목소리는 평평했고, 손은 떨리지 않게 유지했다. 그러나 내 속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방금의 제지는 회의를 살렸지만, 나의 얼굴 어딘가에 작은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그 상처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유엔에서는 보이지 않는 상처가 대개 더 오래간다.


(사진 출처: 개인소장)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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