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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엔이방인 김상엽 Oct 20. 2023

[올라 UN] 겨울 이야기

안보리는 추운 겨울

"하염없이 내리던 하얀 눈에 가려져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네 뒷모습

난 그렇게 선 채로 얼어붙어 갔지만

오직 널 향한 나의 마음만은 따뜻했어."

뉴욕 유엔본부 사무국 건물 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뉴욕 맨해튼 섬 오른쪽 중간, 광범위하게 뻗어있는 유엔 사무국 본부는 역사의 울림으로 항상 심도 있는 논의의 중심지이다. 뉴욕 경찰도 들어갈 수 없는 국제기구 영토 안에는 193개의 회원국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으며, 내가 근무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인 중동이라는 한 가지 문제가 끊임없이 최전선에 남아 있었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이 세계 질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네요.)


난 중동 전문가가 아닐뿐더러 오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깊게는 다루지는 않을 것이지만, 동 문제를 내가 근무하던 기간 안보리 회의 참여자로서의 시각을 독자분들과 공유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가 아니라, 컴퓨터를 켰다.


2016.12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https://press.un.org/en/2016/sc12657.doc.htm) 겨울이 되면 다양한 의제로 한창 토론인 UN이 있는 뉴욕은 은빛 망토를 입었고, 곧 있을 안보리의 중동 관련 브리핑은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 분위기는 여느 시험 준비 과정과 비슷하게 치열한 준비 과정 중 하나였다. 그 준비 과정 중에 왜 머릿속에서는 DJ DOC의 겨울 이야기 노래가 계속 맴도는지... 너무 추워서 그랬나 보다.

2016.12월 안보리

중동 문제에 대한 영감을 끌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날 사무총장은 중대한 우려와 평화에 대한 간절한 요청으로 가득 찬 연설을 했다. 상당한 인적 비용, 평화 정착에 대한 집단적인 실패, 그리고 세계 안보에 미치는 상황의 파급 효과에 대해 강조했다.


그 당시 안보리 이사국 대표단들과 교류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가자지구 청년의 열망, 이스라엘 학생의 눈에 비친 희망,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꿈과 두려움은 이 지속적인 갈등의 인적 비용을 증명했다.


브리핑 날은 상쾌하고 맑게 밝았으나, 안보리 회의실은 당면한 사안의 중대성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즉 부정적인 흐름을 현장에서 반전시키자고 간곡히 호소하는 말의 무게, 여러 지도자들이 극단주의자들에 맞서야 할 필요성, 그리고 갈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 등을 두 가지 국가 해법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야 할 시급성에 대해 언급했다.

1993.9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이 오슬로 협정 서명식

브리핑 이후 각 이사국의 연설에 대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의 속삭임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역시나 전형적인 유엔의 그런저런 논의의 끝이 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조용한 순간들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느껴졌는데, 이후 대표단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무총장의 행동 촉구를 되새기며 말의 힘을 재확인했다. 그날, 2016년 어느 겨울날은 나에게 있어 단지 또 하나의 브리핑 이상이었다. 그것은 유엔에서의 임무를 결정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정치적 복잡성과 역사적 불만(?) 속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간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사무총장이 그렇게 표현했듯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외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양심의 문제라고. (https://www.un.org/sg/en/content/sg/statement/2016-12-16/secretary-generals-briefing-security-council-situation-middle-east)


그 추운 겨울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유엔 사무국 본부의 거대한 복도를 걸으면서 예루살렘의 거리, 가자지구의 학교들에 문제가 되는 진짜 이야기들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상기시켰고 그 이야기들을 가슴에 새기고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유엔 사무국 본부 2층 복도

"하염없이 내리던 하얀 눈에 가려져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네(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뒷모습

난(안보리 회원국) 그렇게 선 채로 얼어붙어 갔지만

오직 널(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향한 나(안보리 회원국)의 마음만은 따뜻했어."


(사진 출처: 유엔사무국웹사이트)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국제기구 #해외취업 #유엔 #인턴 #영어 #스페인어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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