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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4. 2022

2022년 10월 14일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어디라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채바라기에게.


미루고 미루던 가을 옷을 드디어 꺼내 입었어. 그마저도 옷 정리가 다 되지 않아 간절기용으로 여름옷과 함께 꺼내 두었던 얇은 원피스야. 오늘은 집에 가면 정. 말. 가을 겨울 옷을 꺼내야만 해. 너는 벌써 가을 옷 정리를 마쳤다니 감탄스럽다. 나는 조금만 더 추워지면 정리를 한다는 게 벌써 10월 반이 지나고 있네. 띠용.. 언제나처럼 시간은 참 부지런하다.


채바라기야, 네가 태어난 달 10월이야! 나는 유독 받침 없는 달을 좋아하는데, 유월이랑 시월은 있던 받침도 사라졌다는 점에서 특히 더 애착이 가. 있던 게 없어도 온전한 달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특히 더 풍요로운 마음이 들지 않니? 그러고 보니 그런 점까지 채바라기는 태어난 달을 닮았다! 넘치고 부족함이 없달까. 왜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요리사님께서 "적당히 넣으세요~" 계속 그렇게 말씀하시곤 하잖아.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 그러니까 그 적. 당. 히.라는 게 어느 크기 스푼의 몇 그램 정도의 양이냐고요~~' 이렇게 울부짖거든. 그런데 채바라기는 항상 그 정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야. 달아도 이가 썩을 것 같지 않고, 진해도 질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되 심심하지 않달까. 배려와 친절이 요리라면 채바라기는 요리왕 비룡이고 홍시 감별사 대장금일 거야. 네가 가장 잘 만드는 요리는 디저트일지도 모르겠다. 스윗함은 네 전문이니까, 헤헤. 네가 만들고 행한 마음들은 순간에서 영원을 느끼게 하고, 더 먼 앞날을 지치지 않고 꿈꾸게 해.


나의 사랑 너의 사랑 해태야, 이번 여름 환기 미술관을 다녀온 후 내가 환기 미술관에서 본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성심>에 대해 엽서에 적었던 거 기억하니? "성심"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정성스러운 마음'이라고 뜨더라. "정성"은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

환기 미술관에서 <성심>이라는 작품 앞에 서서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어. 누군가의 '있는 힘껏'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말 너무 감격스러웠어. 내가 워낙 열심히 사는 사람들 좋아하잖아. 나도 있는 힘껏 해내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낭만이 차올랐어.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정성'을 너무 쉽게 보고 느끼는 게 아닐까 부채감도 밀려오더라. 물론 무게를 달자면 뭐라도 있는 힘껏 해내 보고 싶다는 긍정적인 기분이 더 앞섰지만, 위대한 작품 앞에서 자그마해지는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야.


지난여름 '성심' 이야기를 왜 굳이 꺼냈냐면, 내가 성심성의껏 해내고 싶은 것들 중 하나에 해태가 있기 때문이야. 나도 참 어지간히 새로운 걸 좋아하고, 다양항 형태의 사랑을 하지만, 해태도 나와 윤가은 감독님처럼 '호호호'의 사람이잖아. 좋아하는 게 많고, 또 좋아하는 걸 자체로도 좋아하는. 우리만의 '호호호'가 앞으로도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 기상 예보를 뚫고 쏟아지는 볕이라든가, 남들이 모르는 우리만의 제철 음식, 또는 지속 가능한 파라다이스 목록 같은 것들.


10월 14일, 연이어 붙여 놓아도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날짜 같아. 10월 14일 심지어 올해는 금요일이다. 금요일은 사랑. 네 생일도 사랑. 그러니 네 생일은 사랑 오브 사랑이구나. 사오사의 날이다. 생일 축하해!!!!!

너에게 준 손편지에도 적었지만, 네 이름에는 '운'이 들어가고, 네가 구름이라면 나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날도 놓아줄 수 있어. 운세의 '운'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불운이고,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싶은 행운이야. 네가 불행일 수는 없으니 너는 내게 매일 행운 복권이라구!


몸도 마음도 바쁜 날에는 내가 아는 곳에서 또 모르는 곳에서 매일 폐달을 밟고 있을 사람들의 두 발을 생각해. 거기에는 새롭게 자라고 있을 네 엄지 발톱도 있어. 내리막에서는 조금 쉬다 오르막에서는 다시 엉차엉차 조금 더 세게 밟을 테지. 그러다 의지와는 별개로 폐달이 풀리거나 클락션이 울리지 않거나 휘청거리거나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때도 있을 거야. 우리의 잘못이 아닌 일에 너무 낙담하지 않고 제대로 두 발로 폐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자!


알다시피 나는 낙관이 체질이고, 사랑이 운명인 사람이라서 우리의 앞날을 그리는  어려움이 없어. 우리는 앞으로도   해낼  있을 거야! 내가 믿는 것을 너도 믿을  있도록 성심성의 모시겠습니댜. 앞으로 함께하는 날들 속에서 마음껏 실감하자! 신샤인은 지치지 않고 빛을  테니, 채바라기는 산들산들 누려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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