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pr 05. 2023

축사

열에아홉의 인륜지대사를 축하하며

내 친구 은재에게.


은재야, 안녕? 나 민희야. 언제나처럼 네 생일과 함께 봄이 왔어! 올해는 1992년 이후 두 번째로 일찍 벚꽃이 피었고, 심지어 너와 성철 군이 머무는 서울에는 평년보다 2주 빨리, 작년보다는 열흘 앞서 개화했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드리는 첫날, 이렇게 분홍빛으로 축하해 주려고 벚꽃들도 신이 나서 서둘러서 피었나 봐!

세상 가득 벚꽃 흩날리면 봄이 오나 했는데, 나한테 봄은 세상천지 꽃들보다 네 생일로 다가와. 지금까지의 3월에는 네 생일이 있었고, 앞으로의 4월에는 네 결혼기념일까지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봄은 우리 은재의 계절이구나.


은재야, 결혼 축하해!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정말 실감이 난다. 너를 처음 알게 된 초등학교 2학년 아홉 살로부터 벌써 얼추 이십 년이 지났어. 내가 평균수명인 아흔 살까지 산다면 말 그대로 너는 내 인생의 열에아홉이야.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때가 많은 너니까 분명 나한테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도 잘 알 거야ㅠㅠ

초등학교 때는 미니홈피에 우리끼리 비밀 교환 일기를 적고, 중학교 때는 둘이서 논술 대회를 나갔다가 신산공원에서 햇볕을 잔뜩 받으며 광합성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모의고사 날마다 너희 집에 모여 각자 그리던 꿈을 나눴고, 대학교 때는 네가 알바하는 곳에 초대해서 맛있는 것을 만들어줬고, 네가 바로 취업하고 내가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에는 내가 가고 싶었던 전시에 대신 가서 내 선물을 사다 줬지. 작년에는 함께 걷다가 내가 길가에 핀 장미를 보고 기뻐하던 걸 기억하곤 며칠 지나 더 활짝 피었다고 따로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고, 그리고 올해는 이렇게 너의 기쁜 날 축사 기회도 주고!

너와 함께한 모든 시절을 되돌아보니, 구구절절 하나같이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붙잡고 자랑하고 싶어진다. 너는 곧잘 내가 새로운 좋아하는 것들을 찾을 때마다 너보다 좋냐고 귀엽게 질투하곤 했잖아. 내가 참 새롭고만 싶은 사람이라서 매번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것들을 주워 담는데, 그 새로움을 주워 담으려 내 마음 서랍을 열 때마다 언제나처럼 제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너와의 추억을 발견하고서 얼마나 안심하고 또 고마워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이것이야말로 내 삶의 훈장이라는 걸 나도 매일 깨닫고 있어. 너에게도 나와 함께한 시간들이 들춰보고 싶은 갈피가 될 수 있을까. 어느 하나라도 그렇다고 끄덕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야. 내 삶의 훈장 은재야, 결혼 축하해!


지난달, 예비 신랑 성철 군과 네가 함께 있는 모습을 처음으로 봤어.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까 작년에 내가 요즘은 누구랑 가장 친하냐고 물었더니, 네가 잠깐의 고민도 없이 네 베스트 프렌드는 성철 군이라고 대답하던 게 떠오르더라. 서로에게 서로가 베스트 프렌드라고 네가 그랬잖아. 너를 바라보는 성철 군의 눈빛이 곧고 사랑스러워서, 성철 군이 웃기려고 하지 않은 말에도 까르르 터지는 네 웃음이 말갛고 따뜻해서, 그동안 내가 무슨 헛걱정했던 건가 싶어 머쓱해졌어. 아, 이 사람이구나. 나한테서 네 베프 자리를 앗아가도 하나도 아쉽지 않을 사람이라서 누구보다 내가 더 기뻤다는 걸 이 자리를 빌려 꼭 말하고 싶어.


성철 군, 언제 어느 시기를 돌아봐도 또래보다 똑똑하고 야무지던 제 친구 은재는 스스로에게는 무던하게 넘어갈 줄을 알고 자기 사람에게는 부단하게 노력하는 천성이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큰 마음을 지닌 은재가 크고 작은 행복에 웃을 일이 많을 수 있게 늘 지금처럼 은재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주세요.


은재야, 조금 더 같은 챕터 안에 언제까지나의 우리로 남아주기를 바라던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성철 군과 함께 있는 지금의 네가 여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이 나서 기꺼이 너를 따라 다음 챕터로 넘어갈 용기가 생겼어. 언제나처럼 네 삶으로 깨달음을 줘서 고마워. 너는 모르지만, 너는 항상 나에게 배움을 주는 친구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너의 일생일대의 기쁜 날을 마음으로부터 축하할 수 있어 누구보다 기쁘다, 정말.


성철 군 그리고 은재야,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 오늘은 분명 사월 중 가장 기쁜 날이 될 거야!


마음을 담아, 민희가-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11년 13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