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위한 일기 예보
1인 한정 기상캐스터에게.
ㅍ아, 안녕. 실로 오랜만에 타자기를 두들기며 너에게 편지를 써본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편지를 시작할 때 곧잘 오랜만이라고 인사하게 되지 않니? 왜냐하면 나는 정말 오랜만이거든. 다음에는 좀 더 바투 편지를 써야지 생각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편지를 다 쓰고 나면 또 금방 까먹고서 다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매번 또 이렇게 오랜만이라고 낯설다가 반갑다고 다짐도 하고 그러나 봐.
해가 길어져서 나는 아침마다 기쁨의 발 동동 구르는데, 우리 ㅍ은 어떠려나. 나는 햇살을 너무 좋아해서 햇살을 말하려고 입을 '해'하고 벌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려고 해. 그런 나를 내 주변도 너무 잘 알아서 날 좋은 날이면 나를 많이들 떠올려주고. 그런데 ㅍ, 너는 날이 좋을 때보다 흐릴 때 더 자주 나를 떠올려주는 것 같아.
"내일 강풍이라던데 출근 조심해."
"밖에 비 온다. 우산 챙겨!"
나라는 한 사람을 위한 일기 예보가 있어서 나는 쉽게 젖지 않고, 자주 따뜻할 수 있었어. 고마워!
2023/04/14 14:07
나는 곧잘 네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고, 지난날 너의 표정을 곱씹는다. 함께 걸었던 날들의 온도나 향기, 어떤 날은 습도까지도. 그날 길가에는 꽃이 흩날렸는데, 햇볕이 강해 네가 얼굴을 찌푸렸던가. 네가 예-전에 올린 게시글을 다시 찾는다. 그러니까,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도돌이표 같은 마음, 앞뒤가 똑같은 토마토, 기러기, 스위스, 우영우 같은 마음!
지난달 중순에는 이런 메모를 적어놨었어.
언젠가 곧 꽃이 필 거라고 네가 사진 찍어 보내줬던 벚꽃 나무를 알아. 그 나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우리는 그 길을 걸어. 둘씩 노나서 또는 한 사람씩 줄을 지어서 말이야. 우리가 그 거리를 거닐 때 몇 번이고 흩날렸을 꽃잎들을 떠올리다가 아차 싶어지는 거야. 햇볕이 강했을 텐데 네가 얼굴을 찌푸렸었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처럼 눈이 따갑지는 않았을까? 꽃가루 흩날릴 때쯤 찾아오는 불청객 비염이 머물다 가지는 않았겠지? 뭐 그런 것들을 습관처럼 되감기 해. 그렇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만, 그대로 두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들. 그냥 마음을 써보고 싶은 날이 있잖아.
요즘의 나는 어쩌면 나는 나보다 너보다 '우리'가 보고 싶을 때가 많은 걸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떠오르는 날에는 습관처럼 네 블로그에 들어가서 옛날 사진들을 보곤 해. 너로 인해 봄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는 꽤 자주 어디에 갔었는데, 매번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잔뜩 신난 채로 질리지도 않고 봐. 그러고 보니까 내 마음이 우영우 같은 거야. 앞뒤가 똑같은 토마토, 기러기, 스위스, 우영우, 그러니까 도돌이표 같은 마음 말이야.
그러고 보면 마음을 쓴다는 게 나쁜 게 아닌데, 갈수록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 조금 고되면 어떻고, 지치면 어때. 닳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사실 뭐 조금 닳으면 어때. 새삥 아니어도 내 마음은 내 마음이라구. 다쳐도 아물 때 기다렸다가 읏챠 일어나면 되고, 심히 아프다가도 씩씩하게 쿵쾅거리고, 그런 게 다 마음 아니것어. 그냥 요즘은 마음도 몸처럼 자주자주 스트레칭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겉바속촉 까눌레처럼 중간중간 굳은살도 새겨놓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말랑말랑한 힘을 지닐 수 있게 말이야.
공시 준비할 때부터 생긴 계절병 같은데, 나는 오월마다 문턱을 지나는 기분이야. 그냥 바깥이 너무 푸르고 높고 찬란해서 그런가 자주 들여다보게 돼. 그 흐름에 나도 같이 머물다 가고 싶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계절이라는 시간이 옹달샘처럼 공간도 아니고 조금 지내다 가고 싶다니 언제나처럼 나는 참 대책이 없지?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나 너무 좋은 걸 이미 만나서 앞으로 이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걸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사람들. 나는 확실히 내가 너-무 좋아하고 또 계속 좋아할 만한 것들을 마주하고서도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없었어. 왜냐면 나는 알게 돼서 너무 좋았거든. 같이 수업도 듣고, 시험도 보고, 넋두리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지금은 유명해져서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그런 관광지와 카페에 그 시절 우리만 아는 기억들이 있고, 쉬는 날을 맞춰보고, 만날 날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각자의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공유하고, 그런 모든 것들이 참 좋아. 일일드라마처럼 기승전결 뻔해도 아마 안 질리고 매번 새로울 거야. 그런 걸 조금이라도 일찍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어. 그리고 함께한 사람이 너희라서 더 기뻤고!
출근하려고 까망 고양이 집게핀을 챙길 때, 명탐정 코난 극장판이 개봉할 때, 스누피 캡처 짤을 발견했을 때, 멋드러진 뜨개질을 볼 때, 귀여운 고양이를 마주했을 때 난 네 생각이 나! 너는 나만큼 떠올리지는 말고 그냥 지금처럼 내 생각날 때 티를 내주기만 하룜.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내 사랑은 오토라서 스틱과 달리 알아서 기어 변속 다 된다. 걱정말라구 후후.
앗, 생일 축하하려던 게 너무 길어져버렸다.
그러니까 이렇게 긴 글을 열 글자로 줄여보자면,
생! 일! 을! 진! 심! 으! 로! 축! 하! 해!
P.S. 만물이 낭창한 지금 바로 이 계절이 가기 전에 헬로 바비 걸 함께 보러 가쟈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