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자가격리
얼마 전부터 감기 기운이 조금 있기는 했다.
나도 있었고, 아내도 있었고, 아이들도 있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자가진단키트를 이용해 검사를 한 결과는 두 번 모두 음성.
요즘 워낙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음성이 나와 코로나는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 자가진단키트를 했다. 당연히 음성이 나올 거라 별 걱정 없이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외침.
"어, 어? 두 줄! 희미하게 두 줄이 나왔어!!"
놀란 마음에 병원에 가서 PCR 검사를 하니, 아이들 모두 양성 반응이 나왔고, 나와 아내도 마찬가지로 양성반응이 나왔다.
자가진단키트가 정확하지 않아, PCR 정밀 검사를 하면 양성이 나오는 환자들도, 자가진단키트 검사를 할 때는 음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작년 6월까지만 해도, 매장에 확진자 한 명이 다녀갔다고, 보건소에서 직원들이 매장으로 와서, 동일한 시간대에 가게를 방문한 사람들 모두 역학조사를 하고, PCR 검사를 받으라고 지침을 내리던 때와 지금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확진자와 함께 동거하는 가족들조차 PCR 검사 의무 대상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확진자와 늘 접촉해서 지내는 사람도 검사를 하려면 하고, 마려면 말아도 된다는 것이다. PCR 검사를 하지 않고, 확진자의 동거 가족들은 외부 활동을 한다.
확진자의 자가격리 기간도 이젠 7일. 7일이 지나면 PCR 검사 없이 그냥 자동으로 격리가 해제된다. 7일 이후 검사를 하더라도 체내에서 죽은 바이러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향후 수십일 동안은 양성반응이 나와서 PCR 검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K방역....... 잘했다 잘못했다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까지 흘러버린 마당에 더 이상 규제나 제제를 하는 일들이 무의미한 이런 시점이라면, 경제라도 제대로 돌아가도록, 내수경기가 살아나도록 코로나 이전으로 돌려놓는 것이 맞지 않을까??
너무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나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방역지침을 따라 우리 가족은 모두 7일간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함께 걸렸다는 것 정도?
누군 걸리고, 누군 안 걸렸다면, 안 걸린 사람을 위해 집에서도 또 서로 조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사실, 처음 아이들이 양성반응이 나왔을 때, 고민을 했다. 아내와 내가 의무적으로 PCR 검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확진자의 가족들은 무조건 의무적으로 검사를 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러지 않다 보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는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가게 문도 일주일 동안 닫아야 하고(식당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주일 동안 가게 문을 닫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피해로 돌아오는지 알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라이브 방송도, 나와 아내 모두 쉬어야만 했다.
머릿속으로 피해액들이 계산되기 시작했고, 그런 생각은 더욱 망설여지게 만들었다.
'내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라에서 피해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굳이 PCR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받을 필요는 없잖아? 누가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확진자가 엄청 늘어나고 있고, 확진이 의심되는 사람들도 PCR 검사를 하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굳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잔뜩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아내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아내의 곁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엄마는 검사 안 해?"
처음엔, 아이들에게 내가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할까 그것을 고민했다.
'지금은 동거 가족도 의무 검사 대상이 아니고...... 우리가 생활을 하려면 경제 활동을 해야 하고...... 남들도 다들 이렇게 하고 있고........'
그런데,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려 한다는 게 스스로에게 너무 구차하게 느껴졌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결국은 고민 끝에 받으러 가기로 했다. 국가나 사회를 위한 의무감 같은 거창한 마음을 먹고 간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만이라도 떳떳하고 싶은 마음으로 갔다.
PCR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나와 아내 모두 음성!
"네? 아이들 모두 양성인데, 우리가 음성이 나올 수 있나요?"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집에 코로나 걸린 사람이 있으면, 가족들의 면역체계 반응으로 감기처럼 살짝 앓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감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그런 사람들 많이 왔다 갔습니다."
나와 아내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의사 선생님이 처방을 해줄 테니, 처방을 받고 2층에서 주사를 맞고 가라고 하셨다.
아내와 함께 우리 코로나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2층으로 올라가서 주사를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2층에 있는 간호사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대답하자 간호사가 말했다.
"저기, 1층으로 다시 내려가 보시겠어요?"
"예? 왜요?"
"검사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려갔다. 1층으로 가니,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주 약하게 양성 반응이 나왔어요."
"아주 약하게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시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PCR 이 정밀검사가 아니었나요??"
"PCR 검사를 한 건 맞는데, 정밀 검사는 하루가 걸려서 내일 결과가 나옵니다."
난 PCR이 정밀 검사인 줄 알았는데, PCR도 정밀 검사가 따로 있단다. 예전에 보건소에서도 두 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모두 하루가 걸려서 결과 통보를 받았었다. 당일 결과를 받으려면 일반 병원으로 가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보건소에서 하는 건 정밀검사고, 일반병원에서 하는 당일 결과를 받는 PCR 은 정밀 검사가 아닌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이 아내는 음성으로 나왔는데, 아이들은 양성이고, 나는 양성일 수도 있으니, 아내도 다시 PCR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아내도 결국 다시 PCR 정밀 검사를 했다.
다음 날 아침 나와 아내의 스마트폰으로 양성이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문자를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의 반응이 조금만 더 약하게 나왔더라면 난 코로나 확진자가 아닌 건가?'
'아내만 갔었더라면, 아내는 정밀 검사를 받기 전에는 음성으로 나왔었는데? 그냥 감기 환자인 건가?'
'PCR 검사에 음성으로 나온 사람들 중에 정밀검사를 하면 양성으로 나올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지금 얼마나 많은 코로나 환자들이, PCR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 음성반응만 보고, 자가진단키트만 믿고 돌아다니고 있을까?'
암튼,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일주일 동안 같은 공간에서 머물며 지내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일주일의 시간. 처음엔 당연히 많이 걱정스러웠다. 경제활동을 할 수 없고, 매장을 찾는 손님들도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릴 테고, 아이들도 학교 진도에 뒤처질 테고.........
그런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이렇게 긴 시간을 집에 머물러 본 적이 없기에, 조금 쉬어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않고, 엄마와 아빠가 모두 집에 있으니 좋아했다. 아이들과 함께 맛난 음식도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이것저것 만들어서 먹기도 하고, 카드놀이와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키지 않아 했지만, 그동안 봐주지 못한 학교 공부도 조금 봐줬다.
밤에는 버너를 켜고, 음식을 구워 먹으며 영화를 보기도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들고, 홀로 남은 새벽. 우리가 이런 시간을 보낸 적이 언제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앞으로 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인 오늘까지 3일이 조금 지났다. 첫날엔, 택배를 받아야 하는 고객님들, 미리 연락을 해둬야 하는 곳들, 거래처 사장님들 등 집에 있으면서도 전화를 하고, 메일을 보내고, 자료를 보내드리면서 바쁘게 하루가 갔다. 그러면서 집에만 있는다는 게 다소 불안하게 느껴졌다.
3일이 지난 지금은 거래처에서도, 고객님들께도 연락이 없고, 나도 첫날처럼 불안한 마음이 들지가 않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이렇게 쉴(?)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은데, 확진 판정을 받고 나니, 도서관을 갈 수가 없었다. 미리 다녀왔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제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나 보다.
어젯밤에는 무척 오랜만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꿈에서 만났다.
보통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 나타난다고 하던데, 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참 동안 나의 꿈속에서 만나지 못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꾹꾹 눌러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시고 난 이후, 그들을 꿈속에서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의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에.......
어젯밤 꿈속에서는 할아버지 댁 앞의 넓은 공터가 보였고, 그곳에는 좌판을 벌인 노점상들이 바글거렸다. 할아버지와 내가 난장의 한 곳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시장은 왁자지껄했고, 꿈속에서도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며 붐비는 모습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나는 잠을 그리 많이 자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어제는 이상하게 피곤이 마구 쏟아지며 몰려왔고, 평소의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잠을 잤다.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꿈에서 깨서는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을 봤다.
기분이 묘했다.
얼마 전, 미용실에 들렀다가 아주머니가 한 말씀이 생각났다.
"아이들만 다 키우면 끝이라 생각하고, 정신없이 달려왔더니,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나이 드신 부모님이 이젠 집에 누워 있어요. 부모님 수발을 드는 건 정말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하고 살았을까........ 부모님 수발 다 들고 나면 나도 늙어서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우리 아이들이 내 수발들어야 할 나이가 되지 않을까요?....... 정말 아이들만 다 키우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인생이 흘러가는구나...... 싶어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의도치 않게 집에서 머물러 있다가 보니 다시 한번 지금 나의 삶과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매일매일 식재료를 준비하고, 가게 영업을 하고, 인터넷 방송을 하고, 택배를 보내고, 늦은 시간까지 가게 뒷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매일매일의 반복된 생활들.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면서, 이렇게 바쁘게, 열심히 살다 보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
'과연 지금 나의 방향은 옳은 곳으로 향하고 있는 건가....... 나는 정말 내가 가는 방향을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걸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그러나 열심히 산다고 해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열심히 살고, 바쁘게 살아간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곁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못 본 척(?)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전 경양식 가게를 할 때도 그랬다. 가게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이 나에게 말했다.
"사장님. 군대 다녀오면 또 알바 좀 시켜주세요."
"야. 내가 그때까지 장사하고 있겠냐? 얼른 돈 벌어서 여길 벗어나야지."
그렇게 말하며 장사를 12년 정도를 했다. 나는 언젠가 벗어날 거라 생각을 했지만, 매일 똑같은 하루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20대와 30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결국은 또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릴 것이다. 이 시간도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당시엔 12년의 세월이 흘러도 30대에 머물러 있었기에 다시 도전을 해볼 수 있었지만, 이젠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물론, 다시 도전을 해볼 수 없는 나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을 나이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들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것들일까....... 한 발짝만 뒤에서 관찰하면 그토록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그것들이 결국은 별것 아닌 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이번 코로나 자가격리가 나에게 준 시간은 가족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고마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