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 사랑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나는 비를 무척 좋아한다.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언젠가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보다는 나쁜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나쁜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생존과 관계가 있는 거라고 했다.
좋은 이야기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지만, 나쁜 이야기는 (예를 들어 사나운 짐승이 근처에 나타났다거나, 불이 났다거나) 놓쳤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을 읽다가 그럼 비를 좋아하는 사람의 선조들은 비가 귀한 지역에 살았었고,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선조들은 비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에 살아서 그런 건가? 그럼 우리 조상은 비가 귀한 지역에 살았겠네? 하고 생각했다가, 같은 가족이라도 비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야 싱거운 상상을 그만했다.
어떤 이유든 그냥 좋으면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나는 비를 좋아하고 또 바람도 좋아한다.
물론 비와 바람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식육점에서 배달을 할 때는 비가 싫었고, 길거리에서 노점을 할 때나 추운 겨울의 날카로운 바람은 싫었다.
특히나 길거리에서 노점을 할 때는 바람이 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하루 종일 물건들과 비닐천막을 단속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강한 바람에 비닐천막이 눌러놓았던 돌을 휙 들어버리고 바람에 펄럭여서, 천막 속에 있는 집기들이 대로변에 뒹구는 바람에 애를 먹었던 적도 있었다.
비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생명을 가져온다.
그리고 바람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세상의 모든 냄새를 데려온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속에 지구와 우주를 느낀다.
언젠가 어느 여름날. 계곡에 놀러 갔을 때 어떤 친구가 말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평생을 즐기며 이렇게 유유자적 사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다.”
나 역시 인생을 즐기며 산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즐긴다는 것. 그것에는 다양한 의미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의 그 누가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싫어하겠는가.
세상의 그 누가 많은 곳을 둘러보고 좋은 풍광과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다만, 그럴 정도의 여유를 갖기가 무척이나 어렵기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그런 여유가 있다고 한들, 그렇게 사는 인생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유유자적 안빈낙도하는 삶. 정말 좋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다른 삶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열심히 일을 하는 삶은? 일이 싫은데, 억지로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아니고,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정신없이 열심히 일하는 삶보다 여유롭고, 넉넉하게 사는 삶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개인의 인생은 그 개개인의 인생 모두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인생 그것은 하나의 우주다.
그것이 어떠한 삶이든 그 삶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누구의 인생도 다른 누구의 인생보다 낫거나 못할 수는 없다.
아침에 마당에 나와보니 매화나무 곁에서 흔들의자가 비를 맞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앉았던 의자.
누군가는 이미 사라졌고 남은 모두는 사라져 가는 중이다.
‘지와 사랑’을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르치스와 같은 삶 혹은 골드문트와 같은 삶.
삶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생은 한 번뿐이라 그 두 가지 삶을 모두 살아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어쩌면 나르치스나 골드문트 모두 행복했을 수도 행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하는 나르치스와, 언제나 자유분방하지만 거기에서 비롯되는 골드문트의 불안함.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의 평화를 부러워했지만 나르치스는 그것이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라고 하며 결코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어쩌면, 이 둘은 서로 하나가 되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