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들 - 자전거 자물쇠와 어린 사슴
예전엔 누군가 동물이나 식물과 말을 나누는 것을 보고
'도대체 왜 저러지?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년 장사를 하다 보니 이젠 내가 그러고 있다.
매장 주위를 배회하는 고양이들은 물론, 매장에 심어 놓은 식물들, 그리고 이젠...... 사물하고 까지도!!
헐레벌떡 가게에 출근을 해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녀석은 입구에 채워 놓은 비밀번호 자전거 자물쇠다.
도어록도 아니고, 가장 아날로그 적인... 아니, 그래도 자물쇠는 아니니까 조금은 덜 아날로그 적인가?
문 손잡이 두 개를 자전거 자물쇠로 묶어 놓았다.
아침에 나를 보자마자 녀석은 말을 건다.
- 왔냐?
- 그래 왔다.
- 지겹지도 않냐?
- 지긋지긋하지.
혼잣말을 하며 피식 웃는다.
20년. 여기서만 20년인데 안 지겹겠냐?
자물쇠를 풀어 입구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사슴 모양의 청동 조형물 등에 올려놓는다.
작은 사슴은 볼 때마다 안쓰럽다.
사슴은 나에게 늘 물어온다.
- 엄마는요?
원래 청동 사슴은 한 쌍이었다.
커다란 뿔이 달린 큰 사슴과, 뿔이 없는 작은 사슴.
뿔이 달렸으니 아빠겠지만, 이상하게 녀석은 계속 나에게 엄마는요?라고 물어온다.
큰 사슴은 오래전 2층에서 가게를 할 때, 쿵! 하고 넘어가 뿔이 부서져 창고에 치워졌다가, 고물을 치울 때 함께 치워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큰 사슴을 넘어뜨려, 어린 사슴을 홀로 남게 한 존재는 어린아이였다.
난 커다란 사슴의 뿔이 부러진 사실보다, 어린아이가 다치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했다.
당시엔 홀로 남을 어린 사슴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린 인간 아이가 다치지 않았음에 안도했을 뿐.
그래서 어린 사슴을 볼 때마다 더 미안하다.
내가 대답이 없자 또 묻는다.
- 엄마는요?
- 음...... 곧 오실 거야.
심파극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처럼 말을 하고 만다.
마땅히 다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대답은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몇 년 동안 똑같은 질문이었고, 똑같은 대답이었다.
언제나 똑같은 나의 대답에도, 작은 사슴은 군말 없이 입을 꾹 다문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 야. 네가 좀 다독여줘라.
등에 올려놓은 자물쇠에게 말을 하고 가게에 들어선다.
가게에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는 마치 시곗바늘을 빠르게 돌리는 것처럼 시간은 금세 흘러가버린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도 지나고, 마감을 하고 가게를 나서는 길.
하루의 마지막 마주하는 녀석도 역시 자물쇠다.
- 내일은?
- 또 와야지.
- 좀 있으면 보겠네?
밤 9시 30분.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매장에 도착.
맞다.
좀 있으면 보는 거.
- 지겹지도 않냐?
아침에 물었던 질문을 또 던진다.
-지긋지긋하지!
나는 똑같은 대답을 던지고......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
- 하지만.... 이 지긋지긋함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