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 인생
2024년 7월 11일
지구 온도 상승 한계점 1.5도 남은 시간은... 05년 00개월 11일
2024년 8월 1일
지구 온도 상승 한계점 1.5도 남은 시간은... 04년 11개월 19일
마치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한 위의 문구는 내가 사는 김해에서 발행하는 김해시보의 가장 뒤편에 기재된 글이다.
8월 찜통 같은 더위 속에 이 글을 보고서 아내와 나는 진짜 지구가 멸망하는 건가? 하면서 온갖 상상 속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매년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이 타는 듯한 한여름의 더위에 딱 어울리는 주제. 지구종말.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는 지금의 지구환경에 대해 엄청 심각하게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정말 4년 11개월 19일이 지난 후에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까?'
온갖 추측은 가능하겠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만약 인간의 경제 활동으로 지구가 이렇게 변한 것이라면, 정말 인간은 지구에게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구가 곧 자가면역반응을 폭발적으로 할 지도........
혼자서 별 희한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모든 사람들에게는 위의 신문처럼 카운트 다운이 되고 있는 인생의 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분명 존재하니까.
골골장수라고, 곧 죽을 듯 비실비실 하면서도 장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청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쓰러져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남겨진 시간을 모른다는 것은 행운이면서 동시에 불행이다.
남겨진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살기도 하고, 게을리 살기도 한다.
남겨진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급히 서두르기도 한다.
남겨진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즐거워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모르는 게 약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하다.
시시각각 주어진 현실 속에서 약과 독이 교차하며 바뀌어 가더라도,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이 들었을 이 말. 우리는 현재를 산다.
알면서도 충실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여름휴가를 가서도 휴가가 끝나고 마주할 현실을 걱정한다.
일요일 아침이 이제 시작되었는데, 벌써 월요일을 걱정한다.
걱정을 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 하나 없고,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것이 인생임을 이미 숱하게 겪어봐서 알면서도 또 걱정을 하고, 또 계획을 한다.
우리가 늘 이렇게 걱정을 하며 사는 이유는 어쩌면 내 이름 석자 명사에다가 미래에 나에게 부여될 또 하나의 명사 때문이 아닐까?
성공 또는 실패 이 두 개의 명사들 중에서 하나가 나에게 주어질 거라는 것.
성공이라는 명사를 거머쥐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 것인가,
실패라는 명사를 갖게 되어 남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불안함.
그러나, 인생은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개념으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어느 한순간 그 결과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살아가는 전 과정이다.
순간순간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 미래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형용사의 사전적 의미.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과 상태 또는 존재를 나타내는 말.
내가 지닌 나의 이름 석자 명사가 내가 아니라, 지금 나의 상태, 지금 나의 기분, 지금 나의 감정. 이 모든 지금에 충실한 것이 바로 나이다. 성공한 삶, 실패한 삶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마라. 나는 지금의 나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존재다.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다 -프란츠 카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