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2003년 12월의 겨울. 찬 바람을 맞으며, 다시 인력사무소로 돌아가는 길이다.
일요일이고, 몸은 평소 일을 마칠 때 보다 더 무겁게 처졌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 인력소의 의자에 앉아 일이 주어지길 기다리다가, 작업을 배정받고 현장에서 7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5시 30분에 마칠 때까지. 10시간.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현장에서 10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일한 나의 노동에 대한 가치는 5만 원. 거기서 인력사무소 소장은 수수료 10%를 떼고, 4만 5천 원을 나에게 건넨다. 이마저도 일이 없어 새벽에 인력사무소에 나왔다가 허탕치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돈의 가치를 새삼 느끼고, 세상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일도 나에게 할 일이 주어지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인력사무소에서 집까지 긴 오르막길을 터벅터벅 올라간다. 아파트 정문을 지나 엘리베이터 입구로 가며 누군가 함께 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흙먼지가 잔뜩 묻고, 땀 냄새가 풀풀 나기에 누군가와 함께 타기가 미안하다.
집에 도착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샤워를 한다.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샤워시간. 샤워를 하면 조금이나마 피로가 풀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이날은 평소와 조금 다르다. 뭔가 개운한 느낌이 없다. 왼쪽 발가락이 묵직한 느낌이다. 잠시 살펴보니 왼쪽 엄지발가락 발톱이 시꺼멓게 멍들었다. 일을 하며 유난히 왼쪽 발에 무게가 많이 실린 탓에 이리되어버린 것이다. 다음 날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기를 바라며 일찍 잠자리에 든다.
새벽 4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오는데, 왼쪽 엄지발가락에 뭔가 매달려 덜렁거린다. 불을 켜고 보니 엄지발가락 발톱이 거의 다 빠져서 대롱거리며 붙어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많이 놀랐다.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볼까 생각하다가 얼마가 될지 모르는 병원비를 생각하며, 그냥 하루 정도 쉬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제대로 배운 것도 없고, 특별한 기술을 익힌 것도 아니고, 몸이 불편해 제대로 일을 하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을 써줄 곳은 없다. 하루 정도 쉬고 발이 괜찮아진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상태가 더 심해진다면? 그리고 만약 공사장에서 또 다른 상처를 입는다면?
우리 같은 현장인력은 보통의 직장인처럼 아프다고 해서 하루, 이틀 연차를 내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파서 쉬는 날만큼 그만큼의 수입이 사라진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았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가 아님에도 집에서 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갑갑해져 온다. 뒤척이며 누워있다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선다. 길가에 놓인 생활정보지를 종류별로 집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리저리 생활정보지를 하루 온종일 뒤적여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찾을 수가 없다. 하루를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다음 날이 되자 마음은 더욱 조바심이 났다. 그렇지만, 마음이 급하다고 나에게 맞는 일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진 않았고 발가락의 상처가 바로 낫지는 않았다.
갑갑한 마음에 집에서 나와 아파트 주위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다. 그렇게 걷다가 우연히 아파트 단지 내에서 즉석 두부를 만들어 파는 아저씨의 트럭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머니들이 줄을 서서 아저씨의 즉석 두부를 사 간다. 추운 날씨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즉석두부 제조기계로 만든 두부는 정말 맛있어 보인다.
머릿속 뭔가 번쩍 떠오른다. 난 얼른 집으로 돌아간다. 어지럽게 펼쳐진 생활정보지를 다시 뒤적인다. 역시나 그곳에도 즉석두부 제조기계 광고가 나와 있다. 하지만 기계를 구입하기에는 내가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잠시 낙담을 하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광고 문구. 소자본 창업. 임차료 단 한 차례. 10만 원. **잉어빵. 눈이 번쩍 떠진다.
‘단돈 10만 원에 빌려준다고?’
당장 전화를 건다. 정말 10만 원에 장사를 할 수 있는 잉어빵틀과 장비를 빌려준다고 한다. 대신 잉어빵을 만드는 반죽과 팥은 자신들이 공급하는 제품만 사용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내가 가진 적은 돈으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즐겁게 통화를 했지만,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걱정이 밀려온다.
‘내가? 길에서 잉어빵 장사를?’
그렇게 걱정을 하지만, 그 걱정이 오래가진 않는다. 아니, 오래갈 수가 없다. 하루가 늦어지면, 그만큼 내 수중의 돈이 줄어드니까.
잉어빵 틀을 가져다 주실 아저씨는 장소를 정하고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그곳으로 가져다주신다고. 적당한 곳을 찾아 헤매다 해운대시장 골목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의 슈퍼마켓 앞으로 장소를 정한다. 혹시 몰라 슈퍼마켓 사장님께 양해를 구한다. 사장님은 흔쾌히 수락하신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많은 것이 서툴렀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세상을 배워나갔다. 길거리 장사에서는 비가 내리는 날보다 바람 많이 부는 날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루 종일 길거리의 좁은 천막 속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고, 길에서 어머니가 가져다주시는 도시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나의 첫 장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두 달쯤 지났을 무렵 누군가 나의 노점을 계속 신고하는 바람에 단속반에서 쇠사슬을 끊고 철거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노점을 했던 곳 주위로 군고구마, 떡볶이, 군밤 등 다양한 노점이 있었지만, 나의 잉어빵틀만 철거를 당했다. 헛웃음이 나왔고 거기서 또 한 번 세상을 배웠다. 얼른 다시 잉어빵틀을 찾아와서 장사를 하려 했지만, 한 달이 지나야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2월의 끝이었고, 한 달 후면 3월의 끝이었다. 마침 다른 일을 할 기회도 생겨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론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만큼 더 절박해지기 때문에 생각하지도 못한 용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용기는 스스로를 한층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 지금도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그때를 떠올린다. 가진 건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용감했던 그 시절. 그때의 경험은 지금껏 살아오며 겪은 많은 시련을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시간이었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해 준 깨달음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