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에게

부디 잘 지내

by 산호세



초등학교에서 나는 '미국에서 온 전학생'이었고 비록 많은 한글 단어를 모르는 부진아이더라도 영어 과목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던 특별한 아이였다. 인기가 좋다거나 친구가 많았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었고 학급의 반을 차지하는 무리 정도는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잘 나가는' 무리는 따로 있었고, 나는 그 축에 끼고 싶다는 바람조차 감히 갖지 않았다. 내가 특별했던 건 미국 출신이라는 타이틀 덕분이었고, 시간이 지나 한국인의 정체성이 짙어지며 다른 아이들도 그 특별함을 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한 번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내가 알기로 A는 가족을 제외한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입을 닫아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마치 목소리를 빼앗긴 듯했지만 말을 할 줄은 알았다.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으며, 다가갈 수 있지만 다가가지 않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소극적이고 숫기 없는 애였다. 철없고 거친 아이들은 A를 두고 욕하거나 놀리기 일쑤였고, 그나마 얌전한 아이들은 말 그대로 얌전하게 있었다. 안녕, 인사한다고 해서 반가운 인사가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 일부러 A에게 발표를 시키며 수치를 줬다. 크게 말하라고, 안 들린다고, 왜 말을 안 하냐고,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A가 울 듯 말 듯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애를 우스운 혹은 불쌍한 아이로 만들려는 악의가 엿보여 늘 불쾌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배려 차원에서 어깨를 토닥이며 한 마디라도 꺼내볼 것을 종용했지만, 그것 역시 A에게는 일종의 괴롭힘이 되었으리란 것을 안다.


나와 내 친구들은 A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얌전한 무리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친구들은 그 애를 비웃거나 싫어했다. 두 학급밖에 없던 작은 학교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던 크고 작은 괴롭힘은 부채질이 되어 어린애들의 속에 바람을 불어넣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A를 싫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 마음에 함부로 동정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정확히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A를 좋게 대했다. 마주치면 인사했고, 단체 활동에서 겉도는가 싶으면 불러냈다. 어느 날 A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마음까지 닫은 건 아니었는지 친구들과 술래잡기하며 노는 나를 졸졸 쫓아오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야, 어떡해. A가 너 좋아하나 봐!" 하고 외쳤다. 그건 분명히 놀림이자 A를 향한 거리낌 없는 야유였으나,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의 우월감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좋게 봐준다는 데 단순히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A와 나는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훨씬 컸고 학급도 많았다. 때문에 같은 반에 배정된 적은 없었으며,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진입했다. 종종, 어쩌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A는 여전히 입을 꼭 다문 채였고,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그를 가볍게 외면하는 것 같았다. 중학교는 넓은 만큼 특별한 아이들이 더욱 많았고, 그래서 A는 수많은 소문 속에 묻혀 갈 수 있었던 듯싶다. 나는 중학교 재학 내내 방송부 활동으로 바빴고, 3학년에 들어서서는 정신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A와는 마주치거나, 단 한 마디 나눌 기회도 없었다. 물론 초등학교 6년 그리고 중학교 3년간 그 애와 대화할 기회를 낚아본 학생은 아무도 없었을 거라고 예상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또 미국에 다녀오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고, 정신과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고,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동안 A는 내 머릿속에서 잊혔다. 내가 잊고 싶은 과거를 반추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혐오하는 동안에도 그 애는 기억 속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건 A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은 아니리라 믿는다. 여전히 나는 초등학교 때 무척 친했지만 중학교가 갈려 멀어진 동창 B를 꽤 좋아한다.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지만 중학교 때 크게 싸워 절연한 C에게 아직까지도 미운정을 갖고 있으니까.


내가 나를 더이상 혐오하지 않게 됐을 때, 나는 느닷없이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 보니 참 이상했다. 꿈에는 A가 나왔었다. A만이 있었다. 그것 외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던, 다시는 상상 속에서라도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던 A가 무의식에 나타나 내 밤중을 흩뜨리고 달아난 탓에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2년지기 절친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A의 카카오톡 연락처를 받아냈다(친구는 12년 동안 전화번호와 연락처 목록이 변함없었다). 당시에는 카카오톡 프로필을 통해 생사만 확인할 셈이었다. 왜냐하면 미신을 잘 믿는 나는 잊고 살던 사람이 갑자기 꿈에 튀어나오면 생사밖에는 의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A의 프로필은 그 애의 성장한 얼굴이었다. 프로필 변경 기록이 남아 있어 훑어봤는데 여러 셀카와 직접 찍은 듯한 필름 사진들 등이 있었다. A는 내가 알던 A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다. 감각 있는 사진들과, 사진 속 배경이 보여주는 장소들은 그 애가 예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셀카를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해 두지 않는다. 자신이 없으니까. 하지만 A는 이제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속 A의 얼굴, 그 시선은 전부 렌즈를 엇비끼고 있었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쏟아지는 각광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문득 그 애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했는지,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나는 궁금해졌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되찾았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요즘의 기분은 어떻고 어떤 예술을 추구하는지 그런 것들이 정말로 궁금했다. 왜냐하면 나도 똑같이 극복하고 꽤 좋은 예술적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숨겼던 A처럼 나도 꼭꼭 숨겼던 무언가가 있었다. 어린 시절, 은근히 손을 내미는 동안 혼자 A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오만한 버릇 같은 게 있었다. 그게 혼자만의 동질감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용기 내어 연락을 취했다. 잘 지내느냐고. 답장이 없어 며칠 뒤에 다시 한 번 보냈다. 불편했으면 미안하지만 소식이 궁금했을 뿐이라고, 네 꿈을 꿨다고. 괜찮다면 답장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참하게도 A는 나를 거절했다. 답장조차 주지 않고 끝내 차단한 것 같았다. 나는 실망했지만 실망감이 그렇게 길게, 깊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미련만이 조금 남았을 뿐이다. 나는 A가 멋진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확인했을 때 속으로 환희를 느꼈다. 아마도 외롭고 괴로웠을 당시의 나를, 또 외롭고 괴로웠을 당시의 그 애에게 생심코 투영해 보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함부로 기뻐하기는 일렀다. 누구나 무엇이든 또 어디에나 비밀은 있는 법이고, 고작 사진 몇 장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A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A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잊고 싶은 과거로부터 마구 도망칠 때가 있었던 것처럼, 짐작하건대 그 애의 잊고 싶은 과거에 내가 포함되는지도 모른다. 그 애가 애써 떨친 과거를 나도 떨쳐야만 한다고, 이제는 텅 비어버린 그 애의 프로필과 배경 사진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못해 오만한 수준으로 잦혀져서, 나에 대한 거절까지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어쩌면, 우린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끈질기다. 한 가지 후회되는 점이 있다: 한마디 답장 없이 차단당할 줄 알았더라면 '잘 지내?' 대신 '잘 지내'라고 보낼 걸 그랬다.






우리는 쉰다. 꿈엔 잠을 해치는 힘이 있다. 우리는 일어난다. 떠도는 생각 하나로 하루를 망친다. 우리는 느끼고, 사고하고, 추론한다. 웃거나 운다. 어리석은 고충을 껴안거나 근심을 쫓아낸다. 똑같다. 기쁨이나 슬픔이나, 출발하는 길은 여전히 자유롭다. 인간의 어제는 내일과 반드시 다를 것이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한애경, 을유문화사(2013)


Caspar_David_Friedrich_-_Wanderer_above_the_sea_of_fog.jpg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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