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자아

변칙적으로 방랑하는 내면의 유랑극단

by 산호세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면 더 쌩쌩하고 부지런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매일 12시 반에 자고 5시 반에 일어나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수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이미 입증되었다(적게 자든 많이 자든 피곤한 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든든하게 먹지 않아서인가, 의심할 만하다. 아니면 체력이 없다시피해서인가,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인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는 쳐다보기만 해도 숨이 찼던 언덕을 씩씩하게 오를 수 있고, 꾸준한 걷기 운동으로 체력이 조금이나마 향상됐음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슬슬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땅끄부부의 해맑은 얼굴과 목소리는 약 오르지만 도움이 된다.


나는 빠르게 변화했다. 이전, 방구석에만 틀어박혔을 적 시점에서는 매일같이 외출하고, 자주 지인들을 만나 인생네컷 같은 것들을 찍고, 달에 한 권씩만이라도 독서를 하고, 학교를 다니든 학원을 다니든 어떤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알바를 하든 정식 근무를 하든 해서 직접 생활비를 벌고, 그 모든 것들이 정상인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그것을 사회 활동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우울과 불안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고 그게 비정상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비정상의 정상으로 올려놓는 데에 최적화된 질환이었다.


깊은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져 몸부림치지도 못하게 된 건 열여섯이지만, 그리고 그때도 충분히 어렸지만, 그 전부터 난 주변 시선에 문득문득 숨을 들이켜는 아이였는데, 모두가 잠든 시각 얹힌 숨을 눈물로 토해내기도 했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결론은 이렇게나 오래 어쩌면 처음부터 '비정상인'으로 지내왔는데, 이제 와서 '정상인' 행세를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싶은 것이다. 내가 다시 나 자신을 혐오하는 건 아니고, 또다시 타인의 시선에 공포를 느껴 버리게 된 것도 아니지만, 묘한 기대감 한편에는 회의감이 도사리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내가 변화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포함한 주변인들은 내가 돌아왔다고 말한다. 이제야 어릴 적 밝았던 너답다고.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너로 잘 돌아왔다고, 그래서 기쁘다고. 그리고 정신과 선생님은 내가 밝아진 게 '당연한 거'라고 말씀하셨다. 난 아무 이유 없이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온 영문을 걱정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며,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며, 그냥 자연스럽게 원래의 나를 되찾은 거라고, 돌아온 거라고, 당연한 거라고. 정말 그런가? 유치원도 다니기 전에야 천진난만하긴 했겠지만, 그때조차 나는 할금할금 눈치를 살피며 겉가죽을 꾸몄던 게 아닐까? 아니면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나서부터 너무나도 이르게 마음을 닫았던가? 생각해 보면 내가 남의 집에 얹혀살았던 건 막내 이모네가 처음이 아니었다. 엄마가 미국으로 떠나고, 더이상 나를 돌볼 사람이 없게 되자 나는 고모네 집으로 맡겨졌던 것 같다.


그랬다. 처음부터 '가족'이나 '우리 집' 같은 개념 따위 나에게 없었는데 내 자아는 어디에서 어떻게 정착할 수 있었겠는가? 고모네 집에선 불편한 사촌 오빠가 있었고, 나중에 엄마를 따라 미국으로 갔을 땐 엄마의 불편한 남자친구가, 그 다음에는 불편한 첫 새아빠가 있었으며, 한국에 와서는 큰 이모네 집에 얹혀산다는 사실 자체가 거대한 부담과 부채감으로 다가왔고, 막내 이모네 집에서는 불편한 이모부가, 처음으로 월세 집을 얻어 들어간 아파트에서는 우울증이 구체화되어 내 몸에 새겨졌다. 지금은 불편한 두 번째 새아빠와 살고 있다. 중간중간 할머니 댁이나 아빠 집, 미국에 갔을 때는 내 앞에서 우리 엄마를 신명나게 욕해 대는 또 다른 불편한 사람들뿐이 없었다.


내가 영화나 문학을 좋아하는 건 교양이 풍부하고, 미적 감각이 뛰어나며 똑똑해서가 아니다. 비참하게도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도피성 취미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자연히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나도 예술로부터 감동받고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것뿐이다. 실제로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멋쟁이 시네필들은 영화 같은 데서 깊은 뜻이나 가치를 찾고 싶어하지만 나는 단순 재미와 한 눈에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도 두드러지는 미장센 같은 것들에나 가슴이 뛴다. 그러니까, 나는 멋모르는 대중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창작은 즐겁지만 인정받는 게 더 즐거운 것 같다. 그림을 그려서 돈을 받든, 글을 써서 빈말에 불과한 칭찬이라도 받든. 내 노력에 대한 인정은 굉장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스스로 수명을 늘리는 법을 알지 못한다. 작가들은 팬들로부터 창작에 대한 추진력을 얻는 데 비해 나는 작가가 아니고 그렇게 될 능력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IT 업계에서 지반을 확실하게 굳힌 아빠가 말하기를 작가 같은 직업에는 미래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림도 글도 심지어는 디자인도 AI가 대신할 것이라고, 이미 그렇게 대체되고 있다고 말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좀 많은 사람들이 좌절해야 되겠지만, 사실 난 믿고 싶지 않았다. AI는 인간을 위한 자동화 시스템이지만, AI는 또한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다. 이상과 원칙이 현실과 변칙 앞에 무너지는 상황은 위대한 산업 혁명일까, 참담한 전쟁일까?


어제 영화를 보다가 불현듯 '부모님이 두 분 다 예술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내용과는 무관하게 난데없이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왜냐하면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들려오는 TV의 골프 채널 소음 때문이었다. (나는 골프에 중독된 가족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골프 얘기를 듣고 있기에, '소음'이라고 표현함에 마땅하다.) 실제로 엄마는 미대를 졸업한 전직 화가였는데, 성공한 화백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범한 회사원으로 이직했다. 내가 좋아했던 엄마의 그림이 딱 두 점 있었다. 하나는 흑인 소녀의 초상화였고, 다른 하나는 대나무 숲의 풍경이었다. 이제 엄마는 그릴 줄 아는 게 꽃 한 송이밖에 없다. 하지만 나 자신도 아닌 엄마의 과거에 미련을 가진 건 결코 아니다. 그저 부모라는 든든한 지원군 두 명이 비슷한 분야의 전문가라면 그 자식인 내가 조금 더 뚜렷한 방향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내 자아에 대한 글을 내리썼다. 인생 목표나 계획 따위는 정해 두지 않고 내일 없이 살기로 하다가 첫 목표로 '자아 확립'을 지정해 볼까 했다. 하지만 어쩌면 50대에 진입한 지 오래인 엄마조차 아직까지 자기 자아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니 이미 그런 시도에 대해서는 체념하다 못해 아예 잊어버렸을지도, 아니면 애초에 시작조차 않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뭘까?' 영화 <아노말리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누군지 나도 몰라. 그러는 당신은 누군데? 자신이 누군지 답할 수 있는 사람 있어?" 그리고 짧은 침묵 끝에 덧붙인다. "떠나지 않았으면 해."


자기 혐오의 굴레에서 간신히 벗어났다면 이제는 타인에게서 나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되었다. 피해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다. 얼마 전 나의 존중욕구를 다룬 글에 대해서도 그렇다. 존중받지 못하는 건지 존중받지 못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의 온도를 감지하지 못하는 결핍을 타고나는 존재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괴롭다는 건 아니다. 다소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이 되긴 했지만, 머릿속에, 가슴속에 묵혀 뒀던 곰팡이 같은 관념들을 배출하고 나니 그동안 나를 앓게 했던 두통이 조금 완화된 것 같기도 하다.



아노말리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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