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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는 왜 힙할까?

by 호박엿

마드리드의 힙한 동네인 추에카(Chueca) 거리는 LGBT 커뮤니티가 성장하며 게이들과 힙스터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의 공식 영어 명칭은 Gay Madrid & the Chueca District로, 추에카의 성소수자 축제광장에서는 특유의 와일드함, 자유로움이 느껴져 ‘힙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거리를 걷는 동성 커플들의 패션 역시 스타일리쉬하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는 게이 프라이드 축제도 개최된다. 근처 세라노 거리에 가면 하이엔드 브랜드 스토어들이 즐비하다. 베르사체(@versace), 디올(@dior), 루이비통(@louisvuitton)의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ghesquiere), 샤넬(@chanelofficial)의 칼 라거펠트 이들 모두 게이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에 게이가 많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쯤 되면 외칠 수밖에 없다. ‘게이들은 힙하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feliciathegoat

조나단 앤더슨과 루카 구아다니노

@wmagazine

일반화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게이들이 힙한 경우가 유독 많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추에카의 게이들뿐만 아니라, 예술계 통틀어서도 게이들은 뛰어난 감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미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루카 구아다니노와 그의 영화 <챌린저스>에서 의상감독을 맡은 조나단 앤더슨(@jonathan.anderson) 역시 게이다.* 트로이 시반(@troyesivan), 프랭크 오션(@blonded),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feliciathegoat) 와 같은 아티스트 역시 동성애자거나 양성애자다. 영화계, 음악계, 패션계를 통틀어 예술계에 게이가 많다는 사실은 게이가 유독 힙한 것 같은 이유에 의문을 품게 한다. 게이는 왜 힙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게이들의 외모지상주의다.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점이지만, 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파트너를 고르는 이성애자보다 동성애자들이 파트너를 고를 때 외모에 더 민감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자신들의 외모 특징을 보다 세심하게 드러낼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을 어떻게 자신에 맞게 표현해야 하는지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추에카 거리의 게이 커플들을 보면 빨간색 아디다스 트랙 셋업에 흰 디젤 핸드백을 매치하거나, 청청 셋업에 허리에 메탈 체인을 두르고, 바게트백을 매치하는 등의 센스가 돋보이는 착장을 소화하는 이들이 많다.

@vogue

‘힙스터’ 뿐만 아니라, 힙한 게이 디자이너가 많은 이유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 중에 게이가 많은 것은, 양성의 특성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심미적 감각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센스를 갖추었기 때문에 여성복과 남성복을 잘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스콰이어> 심정희 패션 디렉터에 따르면, 게이 패션 디자이너는 ‘여자가 보지 못하는 여자의 아름다움’과 ‘남자가 보지 못하는 여자의 아름다움’ 을 총체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이트(이성애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고 한다. 여성적 특성과 남성적 특성을 모두 갖고 있기에 심미적 감각과 감수성이 뛰어나서 패션, 음악을 비롯한 예술계에 게이 아티스트가 많은 것이다.

혹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게이들이 어릴 적부터 무언가 예술적으로 표현해 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더 게이100>을 쓴 문화 연구가 폴 러셀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동성애와 이성애의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는 특별한 발상과 창조적 표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하여, 자신과 세상에 대한 표현을 하다 보니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예술성으로 발전된 것이다.

Richard Florida

@universityoftoronto

또 다른 이유는 다른 분야보다 관용적인 패션계를 비롯한 예술계의 문화다. 애초에 힙하다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리드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예술이 제일 먼저 반영하고 정치와 경제가 가장 늦게 뒤따라간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성을 뒷받침하는, 나와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일수록 추에카 거리와 같이 힙한 도시가 형성된다.


도시 경제를 연구하는 Richard Florida 교수는 ‘창조적 계급’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나와 다른 사람’인 이방인과 게이에 대한 포용력을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와 같은 하이테크놀로지 집적도가 높은 도시일 수록 게이가 많은데, 도시의 미래 발전 가능성과 시민 사회의 태도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은 사회적 부를 증가시키면서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선도한다. 현재는 대중매체가 동성애를 자유롭게 다룰만큼 관용적인 분위기였지만,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게이라서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했다고 보기 보다는, 그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패션계의 관용적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고, 패션계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vogue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는 주로 이탈리아 상류층의 욕망 이야기를 다룬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의 엘리오 역시 상류층으로, 그의 아버지는 영화 마지막에서 동성애에 매우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문화와 환경, 다양성을 존중하는 업계의 특성 상 능력을 펼치기 쉬운 것이다. 서양에 유독 게이가 많은 게 아니라 동성애에 동양보다 좀 더 관용적인 문화이기 때문에 게이가 많아 보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게이가 힙한 이유에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가 보지 못하는 각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심미적 감각과 양성의 감수성이 있기에 신선한 시선, ‘힙함’을 가졌을 수도 있고, 예술계의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동성애에 관한 연구부터 학자들마다 분분한 만큼, 관찰을 토대로 생각한 여러 이유 중에 어떤 것이 정확한지 알 수는 없다.


흔히들 이성이 좋아하는 패션이 다르다고 한다. 여자가 좋아하는 여자의 옷과,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의 옷은 다르다고.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력 있는 이성의 패션과 패션피플의 스타일 사이에는 약간의 괴리가 있다지만, 매력있는 동성과 매력있는 패션피플이 되는 것은 결을 같이 하는 바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게이는 힙하다. 그렇다.



*조나단 앤더슨은 정식 커밍아웃을 한 건 아니지만 게이로 많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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