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7월. 서울로 상경을 했다

by 산너머

미술 선생님, 글 잘 쓰는 작가, 돈 잘 버는 사람 그리고 엄마에게 사랑을 받는 딸이 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된 게 없다. 억지로 들어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뒤끝 있는 성질만 그대로 가지고 서울로 상경을 했다.


화전 밭으로 뜨던 태양은 차별을 안 하고 서울 하늘에 그대로 비춰줄 뿐, 달도 언제나 떠서 나를 바라볼 뿐, 서울이라는 골목은 좁고 지저분했다. 빌딩 숲으로 지는 해보다 산등성이로 뉘엿뉘엿 지는 해가 그리웠다.


내가 사는 방은 변두리 시장통 뒷골목에 있다. 낡은 양철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마자 문간방 입구엔 낮고 좁은 마루가, 마루 밑엔 연탄아궁이가 있다. 좁은 마루엔 미닫이 찬장이 한 개 놓여 있고, 방은 셋이 누우면 딱 맞는 넓이. 아랫목이 까맣게 탄 누런 장판이 깔려있다. 비키니장, 화장대 겸 서랍 두 개 달린 작은 베니어판 수납장, 그 옆엔 둥그런 양은 상, 양은 상은 밥상이었다가 책상이었다. 문간방을 지나 앞마당에 공동 수돗가 하나, 화장실은 주인집 부엌 뒤로 붙은 공중화장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뭔가 될 줄 알았는데, 무역회사 사무직으로 들어가서 전화받고, 장부에 기입하고, 사무실 직원들 물품이나 사고, 총무 겸, 경리 겸 커피도 타고 잔심부름을 하고 그랬다. 공부 잘하는 친구는 은행에 취업했는데, 공부를 잘하지 못해 사무실에서 잡다한 일을 했다. 직원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미스 강’


순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를 따라와 나보다 작은 사무실에 취업했다. 직원은 순자가 한 명, 사장이 영업도 하고, 업무도 보고, 사장 노릇도 하고 다 했다. 순자는 거래처 손님에게 커피를 타고, 다방에 커피를 시키고, 전화를 받고, 장부에 기입하고 나랑 거의 비슷한 일을 했다. 중학교 나온 순자나 고등학교는 나온 나나 회사 크기만 다를 뿐 거기가 거기 그 밥그릇이 그 밥그릇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회사가 종로 3가 쪽에 있는 높은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있고, 순자처럼 다방 레지들이 들락거리지는 않았다. 순자 회사는 명동에 있었는데, 낮은 건물이라 계단이었고, 사장이나 거래처가 다방 아가씨가 타 준 커피를 즐겼다.


순자네 사장이 다방 아가씨랑 바람이 나서 살림을 차리고 딸까지 한 명 낳았다. 본처가 알게 되어서 순자네 사무실로 쳐들어와 사장 옷을 찢고, 사장 책상 위의 물건들을 패대기를 치고 순자 책상 전화기까지 잡아당겨 작살을 냈다. 결국 다방 여자랑 헤어지고 딸은 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 불쌍한 아이들. 그 시절엔 그런 아이들이 많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많았다. 가까운 주변에도 그런 아이가 두 명이나 있었으니 비도덕적이고 난잡했다. 요즘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데, 작가들이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인 것 같다. 나와 같이 서울 바닥에서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이 방송작가가 되었나 보다. 나도 방송작가가 돼야 했었나?


여름에 주말을 껴 사흘 동안 휴가를 받았다. 순자와 함께 서울 물건을 사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는 뜨거운 여름날, 엄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계셨다. 머리엔 세수수건을 쓰고서는 우리를 보고 일어나 손을 흔들어 환하게 웃어주었다. 딸들이 커서 서울에서 돈 벌고 있으니 아무래도 좋았고, 같이 살지 않으니 부대낄 일도 훨씬 없고, 가끔 보니 반갑기도 했을 것이다. 이때 엄마가 제일 좋았고 뙤약볕에서 수건을 쓰고 있던 엄마가 제일 그립다. 우리를 보고 허리를 피던 모습이 보고 싶지는 않고, 그립다. 사흘 동안 엄마는 쌀밥도 해 주고 술빵도 쪄 줬다.

오빠는 장가를 빨리 들어 새언니가 있어서 옛날처럼 때리거나 눈을 부라리지 않았다. 새언니가 착했다. 우리가 오면 “아가씨 서울에서 고생이 많지요.” 하면서 손을 꼭 잡았다.


순미는 "언니랑 서울 가서 같이 살 테야" 이 말을 많이 했다.

"그래, 너도 중학교 졸업하면 서울로 올라와 언니랑 같이 살자."


내가 서울에서 고분고분 직장 생활을 한 것 같지만, 사실 아니었다. 상사에게 대들어서 잘리고, 부당하다는 이유로 회사를 때려치웠다. 70년대 그 시절엔 부당하지 않은 것을 찾을 리도 없고 있을 리가 만무했는데, 오래 못 다니고 이리저리 옮겼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고, 얼굴 반반하고, 겉으론 살살 눈웃음을 쳤기 때문에 취업은 금방금방 됐지만, 참을성이 없고 한 곳에 몇 개월 있으면 지겨워졌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을 들쑤시고 다녀서 늦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고, 3분만 앉아 있어도 내 친구 옥순이와 비교를 했다.

“저 느티나무집 옥순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밭일 다 해 놓고 밥을 했어. 밤엔 바느질에 다림질까지 싹 다 해 놓았어! 공장에서 밤낮 일해서 돈을 엄청나게 갖다 준다는데! 순희 저년은 겨우 몇만 원 몇 달 주더니, 그것마저 주질 않고 자빠져 잠이나 자고 툭하면 냇가에 가서 앉아있고. 에구, 내 팔자야.”

직장을 다녀야 돈을 갖다 주지. 엄마에게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휴가 맡아서 왔다고 하고 냇가에 가서 몇 시간씩 앉아 있었다. 냇가 언덕에 앉아 능선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았다. 이리 살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성질만 민물고기처럼 퍼뜩퍼뜩 살아 있어서 나도 내가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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