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료실 곽 선생은 기묘한 여자였다. 인사를 해도 안 받으려 고개를 돌렸다. 묘했다. 난들 뭐가 반갑다고 인사를 먼저 하고, 받지 않아도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나뿐만 아니고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순서고 내 이익을 위해서 눈치를 봐야 하고 비위를 맞춰야 한다.
디지털 자료실 일은 종합자료실과 전혀 달랐다. 종합자료실은 책이 오가지만 디지털 자료실은 컴퓨터를 시민들에게 공짜로 쓰게끔 하는 곳이다. 하는 일이 돈 받는 피시방이랑 비슷하지만 여긴 뭐든 공짜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 하는데, 도서관 이용은 다 무료다. 물론 라면을 끓여주지는 않는다.
이용자가 원하는 자리를 골라 컴퓨터를 실행한다. 기본 시간은 두 시간, 필요하면 두 시간 더 연장할 수 있는데, 그걸 내가 해줘야 한다. 인쇄가 안 되면 인쇄할 수 있게 알려줘야 하고, 컴퓨터 이용 방법, 노트북 연결 방법, 비디오 보는 좌석도 있는데, 그거까지 일일이 봐주고 안 되면 되게 해서 이용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척척 해야 하는데, 나는 기계치라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을뿐더러 조그마한 변수에도 헷갈렸고, 몰랐다.
곽 선생은 디지털 자료실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었다. 컴퓨터 관련 쪽으로 자격증도 있을 게 분명하고 경험을 많이 해서 잘하는 게 당연한건데, 시건방지기는.
처음이라 모른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줄 알았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그게 아니었다. 그런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했다. 특히 곽 선생은 더 그런 사람이었다. 서서 가까이 보려고 하면 서 있지 말라 하고, 앉아 있으면 배우려고 해야지 배울 생각이 없냐고 핀잔을 줬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디지털 자료실이 두렵고 몹시 불편했다. 가슴이 조여왔다. 한편으론 컴퓨터를 몰라도 정규직으로 당당하게 취업했어. 배우면 못할 것도 없다면서 나를 어르고 달랬다.
곽 선생은 두 번 물어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망치로 머리를 빠개려다 실패해 뜨거운 커피를 냅다 뿌렸던 텃새 자원봉사랑 비슷한 종족인가 보다. 그렇게 보니 뜨뜻미지근하게 생긴 외모까지 비슷하다. 해코지하고 싶지만 일단 배워야 한다는 결심으로 참았다. 배우고 나서 그다음 복수를 해야겠다며 스스로 나를 어르고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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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선생이 대충 모호하게 알려주면 수첩에 ‘모호하다’ 이렇게 적었다. 내가 물어보는 게 그게 아닌데, 딴 대답을 했고 웅얼거리면 ‘너도 모르지?’ 안 보이게 깨알만 하게 끄적였다. 한번에 못 알아들으면 더는 물어보지 않고 디지털 담당 주사에게 물어보고 제대로 적었다.
'곽? 내가 잘하는 게 뭐 게? 빈 수첩만 생기면 뭔가를 끄적이는 걸 잘하거든.'
잘하는 게 또 있다. 속은 부글거려도 미소 짓기. 남들이 볼 때는 속도 없고, 어딘가 모자라 보여도 상관없다. 간식을 준비해서 곽 선생에게 받쳤다. 아무리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려도 반박은커녕 대꾸하지 않고 칭찬을 과장되게 했다.
“오호~어쩜 이렇게 잘 아세요? 컴퓨터 학원 선생님 해도 되겠어요. 오호호홍~”
비싼 과일도 먹기 편하게 잘라 은박지에 싸서 조공 바치듯 받쳤다.
디지털 자료실은 책상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다. 1번 책상부터 40번까지. 그러니까 컴퓨터가 40대, 40명의 이용자가 상주하듯 있는 장소가 여기다. 하루에 최소 4시간을 쓸 수 있고, 책상이 많이 비어 있으면 융통성 있게 8시간도 쓸 수 있다. 시간 초과로 쓰던 이용자는 고맙다고 간식을 줬다. 특히 밤 시간대에 오는 이용자들은 나이 든 남자들이 많았고, 반갑게 대하니 그들도 친절했다. 내 책상엔 먹을 것이 쌓였다. 두렵던 디지털 자료실이 편해졌다. 알고 나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곽 선생이 나를 이용했고, 나를 무시했고, 나를 띄엄띄엄 봤다.
컴퓨터 책상과 비디오 보는 자리에 묶은 때가 껴 더러웠다. 언제 청소했는지 모르겠다. 하도 더러워 디지털 자료실 일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나서 청소를 했다. 언제 썼던 걸레인지는 모르지만 걸레는 있었다. 걸레 빨기도 귀찮고, 어디다 말려야 하는지 곤란하고, 잘 말리지 않으면 냄새가 날 수 있어서 휴지에 물을 묻혀 키보드를 들어가며, 마우스 패드를 밀어가며 그 많은 책상을 닦았다. 후련했다. 더러운 자국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는데, 뿌듯했다. 이용자들도 속으로 강 선생이 오고 깔끔해졌네 했을 것이다. 물론 칭찬 한마디 못 들었지만, 그러려니. 공짜면 바라는 게 더 많아진다. 돈을 내면 더 많을까? 그렇겠다. 나는 피시방에서 일해 본 적이 없다.
근데 다음날 곽 선생이 휴지를 많이 썼다고 시비를 걸었다.
“사무실에서 내가 가져다 놨는데, 이렇게 많이 쓰면 어떡해요!”
‘건다고 내가 걸리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손가락으로 데스크 책상을 가리켰다. 거기엔
<컴퓨터 책상을 항상 청결하게 닦으세요> 처음 출근할 때부터 붙어 있었다.
“그래서 어젯밤에 휴지로….”
“내가 갖다 놓은 휴지예요. 내가 가져왔다고요.”
“곽 선생님이 사비로 사 온 게 아니고 같이 쓰는 물품이잖아요.”
“사무실에서 내가 가져다 놨다고요!”
“아니, 휴지는 쓰라고 갖다 놓은 거고, 컴퓨터 책상이 하도 더러워서...”
“누가 이 휴지로 닦으라고 했어요?”
“여기... 청결하게…. 그래서….”
기분이 상하면 냉랭한 투의 목소리가 나가면서 끝을 맺지 못한다. 냉정해 보인다고 하는데, 뭔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되고 즉흥적인 대처가 느리다. 즉흥적으로 대처를 잘하는? 잘하기는 염병할. 따지는 건 고단수인 곽 선생은 나에게 서서히 찍히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 휴지를 가지고 와서 곽 선생 책상에 아무 말 없이 올려놨다. 말이 없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곽? 넌 모르지? 갑 티슈를 쓴 것도 아니고 두루마리 휴지를 썼는데. 갑 티슈를 다 쓰면 빈 곽을 발로 밟아 버린다, 나는. 곽? 너는 안 그러니?
서로 합의한 휴가를, 본인이 쓸 때는 신나게 쓰다가 내가 쓰려고 하면 혼자 일하면 힘든데, 왜 휴가를 이때 쓰냐고 트집을 잡았다. 알고 있었으면서 본인이 화가 풀릴 때까지 몇 날 며칠을 따졌다.
의자를 당겨 앉으며 나는 소리에도 신경질을 냈다.
차 한잔 마시고 와도 지랄을 했다. 1분 늦게 왔다고 따졌다. 본인 시계와 내 시계가 1분 차이 날 수도 있고, 본인도 몇 분씩 늦게 와 놓고서 빚쟁이처럼 따졌다. 나는 따지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다음엔 1분 일찍 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계획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치밀하게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