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료실 일을 배우는 동시에 종합자료실 일도 배워야 했다. 그전에 일했던 방식하고 전혀 달랐다. 그전 도서관들은 수동식이었는데, 여긴 자동식이었다. 수동식은 책을 한 권씩 찍었다면 자동은 여러 권 올려놓으면 좌르르 읽고 한꺼번에 휘릭 처리를 한다. 수동보다는 자동이 훨씬 편리하고 실수도 덜 나온다. 다만 다시 배워야 해서 머리가 아팠다. 너무 빨리 처리를 하다 보니 뭐가 어떻게 됐는지 금방 파악할 수가 없어 당황스럽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멀티 능력이 부족해졌다는 걸 여기 와서 알았다. 새로운 걸 접하면 알던 것까지 헷갈려서 정신이 없다. 저번에도 썼지만 모른다고 다시 알려달라고 하면 친절한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이 더 많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새들도 마찬가지였다. 약한 새는 어미도 버린다. 약하면 형제들이 쪼아서 죽여버린다. 사람 사는 곳도 마찬가지다. 무시하고 왕따를 시킨다.
정 선생은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못 하는 걸 옆에서 보고 얼른 본인이 처리해 줬고, 이용자를 응대하고 있을 때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아줬다. 점심시간에 혼자서 데스크를 봐야 할 때가 있는데, 위로의 말이라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고, 차 한잔 편하게 마시고 오라고 솔선수범해서 교대해 줬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8명이면 좋은 사람은 2명, 방관자 2명, 유리한 쪽으로 빌붙는 2명, 나쁜 인간 2명. 여기 도서관이 딱 이랬다. 정 선생은 좋은 사람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었다.
가끔 책갈피가 끼워진 채로 책을 반납한다.
<내가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
이런 문구가 있는 책갈피를 발견하고, 읽고 있는 책에 꽂아두고 수시로 봤다. 그러면서 버텨나갔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했다.
나쁜 인간 1은 곽 선생이었고, 2는 지 선생이라고 있다. 땅딸막한 몸. 마음도 짧고 좁았다. 처음엔 고향이 같고, 나이도 비슷하고, 큰아들도 비슷해서 사생활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지 선생 아들은 법대생이었다. 꾀나 자부심이 있어서 아들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도 큰아들이 회계과가 다닌다고 서로 아들 자랑이 오갔다. 그러다 보니 남편 이야기도 나왔고, 남편 자랑을 할 게 없어서 흉을 봤다. 흉을 본 게 잘못된 것 같다. 그렇게 솔직하게 지냈는데, 지 선생은 속이 좁쌀이라서 내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를 들어서 나는 일찍 출근해서 아침에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빨리 해 놓은 편이다. 예약 도서, 다른 도서관으로 갈 도서 찾아 놓기, 타관 반납을 처리해서 박스에 넣기, 소급할 도서 얼른 분류하기 이런 일들을 도서관 문 여는 시간 전에 처리해야 편했다.
지 선생은 달랐다. 지각만 안 하면 되지 뭘 그리 빨리 와서 일할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냐고 하는데,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래야 편하다고 했는데도 지 선생은 내가 불편하단다. 그렇게 어긋났다.
그러더니 사서 선생, 사무실 주사, 보조 인력에게 내 흉을 봤다. 흉을 보다가 내가 나타나면 말을 멈추고 나랑은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 야비했다. 나도 지 선생이 싫었지만 흉을 보고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니까 나에게 맞게 일하면 그만인데, 표시 나게 무시했다. 내 남편이 숨어 지내고 가난하다는 걸 떠벌리고 다녔다.
지 선생 아들은 법대생이고 우리 아들은 회계학과라는 것도 무시의 이유였다. 엄밀히 말하면 지 선생 아들은 B급 대학이고 우리 아들은 A급이었는데도.
지 선생은 직원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사서 선생 대부분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나를 따돌렸다.
그래? 그럼 너도 내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천천히 제거할 예정이다. 한꺼번에 두 명을 죽일 수 없으니 곽 선생을 먼저 처리하고, 두 번째는 지 선생이 될 것이다.
이맘때 천명을 죽이지 못해 한이 된다는 정남규가 등장한다.
<사람의 피에선 향기가 난다>
<정남규는 천명을 죽이고 싶었다고 호송차 안에서 중얼거렸다>
이런 제목으로 대문짝만 하게 난 기사를 신문에서 봤다. 2006년부터 대한민국은 정남규로 인해 떠들썩했다.
'차례대로 두 명을 망치로 죽일 것이다’ 대문짝만 하게 내 가슴에 새기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