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음악다방 디제이였다. 용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고 ‘취미로’였다고 한다. 물론 처음엔 취미인지 돈을 벌기 위한 건지 직업이 이 계통인지 몰랐다. 다방 이름은 ‘별따라’였다. 회사 앞에 있었다. 친구와 여기서 만났다. 친구와 음악 신청 쪽지를 다방 아가씨에게 줬고 다방 아가씨는 디제이 부스에 쪽지를 넣었다. 디제이는 앨범을 골라 즉각 틀어줬다. 중학교 때 도서관 같았다. 남자는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앞머리를 입바람으로 날렸다. 멀리서 봐도 머릿결이 비단실 같았다. 그 뒤 나만 가면 신청했던 노래를 틀어줬고 친구가 신청한 노래는 안 틀어줬다. 디제이 부스 안엔 앨범이 책처럼 꽂혀있었다. 학창 시절 학교 도서관 같았다. 도서관을 수시로 들락거렸던 나는, 왠지 그런 착각이 들었다.
그날은 친구가 사정이 생겨 다방에 오지 않았다. 혼자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또 노래를 틀어줬다. 제목은 생각 안 나지만 팝송이었다. 다방 아가씨가 쪽지를 내게 줬다.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누가 줬나 하고 둘러보니 디제이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머리를 날렸다. 조금 멋있었다. 전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 뒤 약속이 없어도 별따라 다방에 갔다.
비가 몹시 내렸다. 우산이 없었다. 다방 입구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뛸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데, 빨간 포니 승용차를 내 앞에 대고 빵빵거리며 창문을 열었는데 별따라 디제이였다.
“타!”
별따라는 대뜸 반말을 했다.
“왜 반말을 하세요?”
새초롬하게 따지며 정류장으로 뛰었다. 탈 걸 그랬나 버스 안에서 후회했다. 그 나이에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연애. 일 년을 만나다가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그때는 남자를 만나면 결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승용차를 타고 다녀서 그게 우쭐했다. 친구 중에서도, 친구 남편 중에서도 제일 부자였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잘 웃고, 붙임성이 좋았다. 나처럼 모가 나지 않았다.
서울 태생인 별따라는 된장국은 안 먹었고, 계란프라이와 햄을 잘 먹었다. 취미는 노래 듣기, 운전하며 돌아다니기였다. 나도 노래 듣는 걸 좋아한다. 여행 다닐 환경이 안 되었을 뿐 나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직업은? 음악다방 디제이는 취미고, 직업이 없었지만 결혼하자마자 집을 사줄 거라며 자랑을 했다. 그래서 결혼했다. 집이 있는데 뭔 상관이야.
1976년 10월 결혼을 했다, 신혼여행은 제주도. 신혼집은 신행동. 집은 자주색 기와를 얹은 방 두 개, 마루, 실내화장실, 입식 부엌이 있는 주택이었다.
시집은 신행동 부자 동네였다. 정원이 넓은 2층 양옥집이었다. 현관 입구에서 부엌까지 프라자 호텔 로비처럼 길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넓고, 반질반질했다. 남편 위로 형이 둘, 큰형 부부는 부모님과 신행동 양옥집에서 살았고 작은형도 결혼해 잠수동에 살았다. 막내아들은 가까이에서 살아야 한다며 길 건너 주택을 사줬다.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매형이 넣어준 직장에 다녔다. 일명 낙하산이었다. 그리 오래 다니지 않았다. 남편은 직장 생활에 맞지 않는 방랑자였고 별따라 떠도는 나그네였다. 구멍가게도 한 곳에만 가고, 낯가림이 심해 집에만 콕 박혀있는 나는, 남편 따라 사는 게 버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