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간 빈둥거렸다. 60이 넘은 나를 오라는 곳도 없지만 힘쓰는 일은 몸에 부대끼고 머리 쓰는 일은 머리가 아파서 직장을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쉬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밥 먹듯이 떠든다. 좋은 뜻에서 한 말이겠지만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하긴 일 년 동안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내 팔자가 상팔자구나 했다. 낮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 줄 알고 놀라기도 했다.
먹고사는 데 문제가 있지 않으면 이 나이에 직장은 무리다. 이대로 늘어지게 사는 게 맞긴 하다.
안 만나던 친구도 만나러 다녔다. 안 다니던 콘서트도 다녔다. 안 다니던 서울 고궁도 다녔다. 영화도 보러 다녔다. 근데, 일 년이 되니 재미 대가리가 없다.
큰아들은 회사 근처로 방을 얻어 나갔다, 주말만 되면 싸우다가 엄마랑 못 살겠다고 나가길래 잘됐다 나도 지겹다고 따로 살자고 했다. 큰아들과 안 사니 세상만사가 편하다. 내 팔자가 상팔자다.
작은아들은 애인이 생겼다. 미술학원 선생이라고 했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연애하느라 저녁을 먹고 들어올 때가 많았고, 주말에도 나갈 때가 많았다. 밥 안 하니 세상 편하다.
딸은 번역일을 한다. 처음엔 서류 번역을 하더니 요즘 미국소설을 번역하고 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이 작가 번역만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손녀와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이혼하고 싶어 한다. 걱정하지 않는 게 딸을 위하고 나를 위하는 일이다. 직업만 뚜렷하면 혼자 살아도 무방하다. 이렇게 비우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큰아들은 자주 안 오고, 딸은 자주 온다. 나는 아들보다 딸이 좋다. 친정엄마랑 반대로 살았더니 우리는 대화를 잘 나눈다.
친정엄마는 전라도 솔참시에서 장수상을 받았다. 동네 친구들은 거의 다 죽었던지 거동을 못 해 친정엄마는 텃밭에서 온종일 살다시피 하면서 본인 아들에게 구박만 받고 있다. 장수하는 팔자가 좋은지 모르겠다. 나만 보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예방접종 하는 날만 되면 제일 먼저 제일 일찍 보건소에 간다. 무병장수하는 엄마가 부럽기도 하다. 표현은 안 하지만 아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 걸 후회하는 것 같다.
편한데 심심하다. 편한데 지루해서 도서관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몇 군데에서 자원봉사 할 사람을 구한다고 한다. 안 다녔던 도서관 중에 제일 먼 곳으로 자원봉사 신청서를 작성하러 갔다. 버스를 타고 40분이 걸렸다. 멀다. 넓은 공원에 도서관 건물만 덩그러니 있었다. 외따로 떨어진 유배지 같네. 사람 많은 곳은 속 시끄러운데 맘에 들었다. 유배지라고 하면 너무 깎아내리는 거지. 그래, 여긴 변두리 도서관이다. 돌아오는 길이 한참이었다. 괜히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나….
봄이 막 오려는 3월부터 다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 년 동안 놀면서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간 적도 없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도서관을 멀리하고 싶었는데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들어섰다. 돈 받고 일하는 곳이 아닌 순수한 자원봉사로 도서관의 투명한 유리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자원봉사 강순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