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후회(마지막회)

by 산너머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인간들을 죽였지만, 탈출구는 없었다. 탈출구는 이런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계절마다 피는 꽃을 보고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십오 년 하고 책을 보면서 여유로워지니 후회가 밀려왔다.


남편은 오 년 전에 고독사했다. 지방 여관에서 살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늙으면 자다가 죽는 게 소원이라는데 남편이 딱 그랬다. 일주일에 한두 번 카톡으로 생존을 확인하고 계절마다 한 번씩 자식들과 만났다. 만날 때마다 바가지를 배에 엎어놓은 것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바가지는 고무통으로 바뀌었다. 숨을 헐떡여 살을 빼야 하는 게 아니냐고 자식들이 한소리씩 해도 괜찮다더니 자기 목숨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숨이 막혔다. 그렇게 사돈의 팔촌까지 경조사를 챙기더니 본인의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빌어먹을 인간들….


부부가 정답게 사는 연속극을 안 보고 그런 내용의 책도 안 본다.

나이가 들수록 시야가 넓어지지 않고 좁다. 너그러워지기는커녕 심통만 남아있게 된다. 남의 인생 기웃거리지 않는다고 해 놓고 배알이 꼬이는 건 뭔지. 나도 참 미련 맞다.

남편을 만나면 혼자 살고 싶다고 악을 썼더니 결론은 완전하게 혼자가 되었다. 우라질….


독단적이고 독창적인 과거를 가지고 산다고 해서 후회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안다. 흉측했다. 아쉬움도 남아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뭐든 자연스럽게, 뭐든 받아들여야지 별 뾰족한 수는 없다.


지금은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받아 들어야지 별수 없다. 엄마는 늙어가는 일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망을 했다, 엄마는 백 살 넘게 살았다. 전라도 솔참시에서 장수상을 받을 정도로 솔찬히 살았다. 엄마는 안 계시지만 보고 싶지는 않고 가끔 그 시절이 그립고 한 사람의 인생 자체가 어리석었고 불쌍할 뿐이다.

엄마는 헌신적이었지만 나는 헌신적이지 않다.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희생해 놓고 딸들에게 대가를 바랐다. 엄마는 남의 딸과 비교를 많이 해서 나를 미치게 했다. 엄마를 만나러 갈 때는 심장약을 먹어야 했다. 나중엔 엄마를 덜 만나게 됐다. 후회는 하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자식들을 미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망치로 내리칠 때 눈을 까뒤집던 곽 선생이 떠오른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들키지 않았으니 미안하지만 다행이긴 하다. 미안한 줄 아냐고? 그럼 안다. 가슴 깊숙이 끌어안아 품었으면 됐지 자꾸 떠올리면 뭘 하나 해도 맥박이 빨라져 약을 먹는다. 나는 이게 문제다. 비슷한 잡목만 봐도 그 밤이 떠오는 게 문제다. 세월이 흐르면 흐릿해져야 하는데 그 순간만은 선명하다.


강이 흐르고 산이 보이는 곳에 가면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된다. 딸에게 한 달에 두 번씩 이런 곳에 가자고 한다. 커피를 마시고 물길 따라 걷는다. 감사하게도 딸도 걷는 걸 좋아한다.


변두리 도서관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게 되어 자원봉사를 쉬게 되었다. 쉬는 동안 잡생각이 밀려 들어와 자백 겸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무리에게 속하지 못한 나는 도서관을 그만두지는 못하고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고 응징을 했다. 지긋한 나이가 되어 후회한다.

어둑어둑한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게 마련인데 그 새를 참지 못했다.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가증스러웠다. 스스로 나를 보듬지 못했다. 세상은 각박할 수밖에 없는데 세상을 탓했다.


내년에 다시 자원봉사를 할 예정이다. 변두리 도서관에서 나와달라고 연락이 와서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했다. 올해가 지나면 칠십 대 후반으로 들어선다. 저물어 가는 해를 보거나 저물어가는 한 해를 접하니 멍청하게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싫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요즘 이 노래가 이빨에 엿처럼 붙는다. 틀니가 아니라 괜찮다.

트로트 질색한다고 했는데 이젠 트로트 가사가 솔찬히 정겹다. 솔직한 내 인생 같다.


<나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할머니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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