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벽이 있는 남편은 출근했다 하면 들어오질 않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먹고 2차는 맥줏집으로 3차는 청평으로 양주를 마시러 가는 사람이라 신새벽에 들어오는 일이 일주일에 서너 번은 됐다. 그러더니 멀리 원정 술집을 안 가면 도박을 했다. 성인 오락실이나 화투를 치느라 외박도 잦았다. 먼동이 뜰 때까지 남편을 기다리며 밤을 새웠고 해 뜨는 창가를 보며 아침을 맞았다. 마음 갈 곳 없이 외로웠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을 만큼 증오했다.
매형이 넣어준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하고, 운전하는 걸 좋아해 운송회사에 들어가 택시를 몰았다. 하루 할당금을 못 채워 겨우겨우 생활비를 줬다, 경기가 안 좋아서 조금밖에 못 번다고 하길래 그런 줄 알았다. 동료끼리 화투를 치느라 영업을 안 나가서 그랬던 거였다. 최소한의 생활비는 카드로 대출을 받아서 주고 도박을 하느라 없앴다. 카드로 돌려 막기를 하다가 독촉장이 날아와서 알았다.
단골이었던 은행 카드들을 본인이 잘라버리더니 운송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서도 도박만 하고 운행을 안 하는 직원은 필요 없어서 옳다구나! 퇴직 처리를 총알택시처럼 해 줬다.
시댁에서 봉고차를 사 줘서 잡다한 물건을 싣고 장돌뱅이를 시작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느라 엿새 동안 밖으로만 돌았다. 일요일 하루만 집에 있는데, 온종일 잠만 잤다. 남편은 술 항아리, 도박꾼, 방랑자, 잠충이었다.
삼 년 조용하다 싶으면 몇천만 원 빚을 져 조용히 내 눈치만 봤다. 서울 집을 팔아서 지방으로 전세를 얻어 이사를 했다. 결혼했으니 끝까지 살아야 하는 줄 알았지, 이혼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주변에선 법도 없이 살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밥값, 술값을 솔선수범해서 냈고 집까지 다 바래다주고 왔다. 운전하는 게 천직인 것 같다.
자식에게도 나쁜 아빠는 아니었다. 나는 자식들에게 원하는 걸 다 사주지 않았다. 형편도 그랬고, 버릇이 나빠질까 봐 그런 것도 있다. 아이들이 나 몰래 아빠를 데리고 나가서 갖고 싶은 걸 손에 쥐었다. 특히 큰아들이 아빠를 적절하게 이용하더니 돈 씀씀이가 헤퍼졌다. 물건을 사면 최고 좋을 걸 마구 사들였다. 남편은 자기 옷 한 벌 제대로 못 사 입고 오만 잡것, 유흥비에 몰빵을 했으니…. 차라리 큰아들이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둘 다 저축이란 걸 모른다.
장사한다고 방방곡곡을 트로트를 들으며 다니더니 나중엔 빚만 신명나게 남았다. 차 안엔 테이프 한 상자, CD 만 한 상자였다. 발로 확 차 버렸다. 밟아버리려다 참은 거다. 노래는 죄가 없지만 그래서 트로트를 질색한다.
시집에서 두 번째 집을 사줬는데 그마저 빚으로 찢어져 분해 돼 버렸다. 길거리에 나 앉았다는 뉴스를 봤는데 우리 가족이 그 꼴이었다. 가전제품과 이부자리만 남았다. 홍수가 훑고 지나간 집도 뉴스에서 봤다. 생활 쓰레기만 엉겨있는 방바닥이 우리 집과 별다를 게 없다.
남편이 우는 걸 두 번 봤다. 두 번째 집을 팔면서 아이들과 헤어질 때 밤새 잠 못 자고 우는 걸 봤다. 나는 울지 않았다.
딸이 결혼할 때 혼주석에 앉아서 남편은 울었다. 주례사 없이 내가 쓴 편지글을 내가 읽었는데,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겉으론 약한 건 같은 데 냉정하고, 남편은 착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 냉정하지 못해 끌려다닌 것 같다.
남편의 취미는 경조사 챙기기.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다닌다. 결혼식에 가면 돌잔치 때 부르고, 개업할 때 부르고, 그들 부모님이나 장모님 장례식까지 불렀다. 부르면 오고 오면 봉투를 두둑이 주니까 얕잡아 봤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필요할 때 이용하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착하면 우습게 여긴다.
남편 친구 마누라는 필요한 게 있으면 자기 남편을 놔두고 내 남편을 시켰다. 남편은 출석에 답하듯 얼른 대답하고 메뚜기처럼 팔딱 뛰어 사러 갔다. 한쪽 뇌가 모자란 것 같다. 경계성 지능이 아닐까 의심했다.
나는 아무도 안 부른다. 준 만큼 돌아오는 게 맞긴 하다. 갈수록 사람 만날 일이 없어지고 일직선 고속도로처럼 주변이 휑하다.
남편은 모임도 많고, 전화 거는 사람들도 많다. 주변머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교차로같이 혼잡하다,
남편이 맞는지 내가 옳은지 종잡을 수가 없다.
1989년 9월 초 남편은 봉고차에 옷가지만 싣고 떠나고, 나는 눈치만 보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손때 묻어 정들은 가전제품을 싣고 임대아파트로 옮겼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도롯가엔 때 이른 코스모스가 색종이처럼 드문드문 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