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앞집 방 수상한 딸)
수도를 같이 쓰는 앞집 방 나이 든 부부는 맞벌이를 했는데 다 큰딸은 빈둥거렸다.
학교 갔다가 온 오후에는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날 따뜻한 날에는 미닫이문을 반쯤 열어 놓는다. 방이 워낙 작아서 누워 있어도 앉아 있어도 수도가 보이고 앞집 방문이 보인다.
많은 날 남자가 자주 들락거렸다. 남자는 자주 바뀌었다. 남자가 오면 수돗가에서 먹을 걸 씻고 방문을 꽉 닫는 소리가 난다. 한참 있다가 빨간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서 들어갔다가 더 한참 있다 세숫대야를 들고 나와 하수구에 버리는 물이 희뿌옇다. 문틈 사이 남자 얼굴이 뻘겋다.
다 큰 딸이 놀고먹으며 남자만 들락거려서 그런가 그 집 아줌마 얼굴이 허구한 날 찌그러진 양은 냄비였다. 돈을 달라고 소리를 치는 딸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남자가 생겼으면 결혼하면 되는데…. 내가 보기엔 다 큰 딸인 것 같지만 고등학생 나이일 수도 있다. 1970년대는 고등학교에 안 간 소녀들이 꽤 많았다.
우리 방만한데 사는 것 보면 우리 처지와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어느 여름날 슬쩍 방문을 여니 앞집 방 틈 사이로 다리 네 개가 보였다. 내가 부끄러운 짓을 해 들킨 것처럼 소리 안 나게 얼른 닫았다. 다리 네 개가 뭘 하는지 모르지만 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방문과 방문이 가깝고 방과 방 사이 합판만 대고 있어서 비밀스러운 일들이 보이고 모든 활동이 라디오처럼 흘러나오는 데가 이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