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잇길 골목 풍경)
첫 번째 골목과 두 번째 골목 사이에 사잇길 골목이 있었다. 이쪽 길은 점포가 쭉 이어지고 미용실을 지나 100미터쯤 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이 나온다. 저쪽 길은 구멍가게를 지나 30미터쯤 걸어가면 내리막길이 나오면서 시장통과 이어진다.
사잇길 골목엔 두세 평 남짓한 점포가 여러 개 있다. 세탁소가 있고, 구멍가게가 있다. 얼음 가게가 있고, 튀김집도 있다. 겨울엔 세탁소 일이 좋아 보였고 여름엔 얼음 가게가 돈을 잘 버는 것 같았다. 튀김집은 여름엔 데 죽을 것 같고 겨울엔 손이 시릴 것 같고 봄가을에는 튀김을 맘껏 먹어 좋겠지만 얼굴에 기름막이 껴 숨이 막혀 보였다. 뭐니 뭐니 해도 구멍가게가 계절을 안 탈 것 같았다. 가게에 달린 온돌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돈이 저절로 들어오니깐. 나는 뭐든 계절로 기억하고 꽃으로 추억한다.
내가 사는 두 번째 골목을 지나 세 번째 골목 계단을 내려가면 큰 점포들이 마주 보고 쭉 이어졌다. 가구점이 많았다. 각가지 모양대로 색깔별로 의자들이 점포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거울만 파는 곳, 책상만 파는 곳, 옷장만 파는 곳, 비키니장만 있는 우리 집에 제대로 된 옷장이 있으면 했다. 하긴 옷장 들어갈 만큼 방이 넓지 않다는 걸 알기에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가구점을 지나면 음식점이 즐비했다. 고깃집, 생선구이 집, 곱창집이 줄 맞춰 있었다.
음식점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극장이 보였다. 동시상영을 하는 극장이었다.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아도 자주 기웃거렸다. 높게 걸린 영화 간판을 보고 극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극장 안은 지린내가 진동했다. 영화를 보러 와서 구석진 곳에 오줌을 싸지르나 보다. 아니면 화장실 냄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비가 내렸고 툭하면 끊겼다. 손님들은 아우성을 쳤다.
제일 많이 가던 곳은 만화 가게였다. 사방이 만화책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새로 나온 만화는 돈 받는 곳 매대에 누워 있었다.
만화방 창가에 비루한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그 나무가 파래지고 비를 맞고 단풍이 들고 눈이 소복 쌓였다. 나는 뭐든 계절로 기억한다. 늦은 봄까지 연탄난로가 놓여있고, 여름이 오면 날개가 파란 선풍기가 돌아갔다. 선풍기 얘가 시끄러웠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만화방에 자주 들락거렸다.
시장통을 건너 반대편 골목을 몇 개 지나면 도화천이 나왔다. 4월 중순이 되면 복사꽃이 나비 날개처럼 꽃잎이 펴졌다. 복사꽃을 보려고 반대편 골목을 지나고 지나 일부러 찾아갔다. 나는 뭐든 꽃으로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