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옥집 오빠

by 산너머

8. 양옥집 오빠)


골목엔 집마다 사는 모양새가 다 비스름했다. 이 층 붉은 벽돌집이거나, 1층 슬레이트집이거나 기와를 얻은 낮은 집들이었다.

2층엔 주로 주인이 살면서 1층엔 방을 쪼개서 월세나 전세방을 놨다.


이 골목엔 반듯한 서양식 양옥집이 딱 한집 있었다. 바로 앞집이었다.

외관은 동글동글한 예쁜 돌이 벽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냇가 돌을 실어와 붙인 것 같았다. 나무 하나 꽃 한 포기 없는 칙칙한 골목에 이 집만이 조약돌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햇살이 돌벽으로 비스듬하게 비칠 때는 소설 ‘비밀의 정원’에 나오는 저택 같았다.

정원이 있고 잔디가 깔려 있고 여름엔 빨간 장미꽃이 피었다. 서양 영화에 나오는 대문처럼 대문 밖에서 정원이 보였다. 쇠봉 틈 사이로 얼기설기 보였다. 이 층 창까지 길게 뻗은 나무도 양옆으로 서너 그루 있었다. 어떤 나문지는 모른다. 크리스마스 나무인지 사철나무 일종인 향나무였는지 그랬다.

양옥집엔 세를 준 방이 없었다. 집 전체를 다 썼다. 이 골목에서 제일 부자였다는 걸 한눈에 봐도 느껴졌다. 이 층엔 직사각형으로 난 창문이 네 개 있었다. 그 창문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오빠가 밖을 내려다봤다. 나는 그 오빠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양옥집 오빠는 갸름한 얼굴형처럼 옷차림도 세련되었다. 골목에 나와 또래들과 공놀이를 하고 자치기 놀이를 하는 걸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대문에 숨어서 오빠를 훔쳐봤다.


그날이었다. 대문 밖을 나가려고 하는데 양옥집 오빠가 이 층에서 창을 열고 날 보더니 환하게 웃어줬다. 내 가슴은 장미꽃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다시 방으로 들어와야 했다. 이날부터 양옥집 오빠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저번엔 모진택을 좋아했는데 그거랑 이거랑은 감정이 달랐다. 양옥집 오빠가 창문에서 나를 보고 웃어준 뒤부터 갈아타 버렸고, 부끄러워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심하게 감기를 앓아 며칠 만에 양옥집 오빠를 골목 계단에서 봤다. 전체 실루엣이 한참 멀어졌다가,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가, 튕겨 나갔다가 아스라이 멀어졌다. 감기를 앓아서 어지러운 거였는데 오빠를 짝사랑한 감정이 지나쳐서 그런 줄 알았다. 신기루 같은 오빠였다.


외갓집에서 쌀이 제때가 올라오지 않아 쌀이 떨어졌다는데 쌀 살 돈이 없었다. 작은 이모는 양옥집 오빠네 식모에게 쌀을 한 바가지 빌렸다. 그 시절에는 잘 사는 집들은 식모를 두었다. 식모는 입술이 두툼하니 말이 많을 것 같았다. 양옥집 오빠가 알까 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비루해 창피스러웠다.


몇 년 뒤 우리 집은 그 골목에서 이사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양옥집 오빠를 시장 입구에서 마주쳤다. 오빠는 나를 못 알아보고 휙 지나가 버렸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중학교 때는 그리 세련돼 보이고 서양사람처럼 늘씬해 보였는데 키가 그대로였다. 커다란 잠바를 입고 구부정하게 걷는 모습이 아저씨 같았다.

화, 목, 일 연재
이전 07화같은 집 다른 방으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