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목욕탕과 파마)
수도 하나를 세 집에서 썼을 정도니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자체가 없었다. 연탄아궁이에 올린 양은솥에는 밤새 물이 뜨겁게 데워진다. 연탄아궁이 숨구멍은 헝겊으로 막아 연탄을 아꼈다. 너무 꽉 막아 놓으면 연탄불이 꺼져 적절하게 다독여야 했다.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씩 퍼 찬물을 섞어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뜨거운 물은 양은솥만큼이라서 동생들과 돌아가며 머리를 감았다. 겨울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감으면 자주 감은 거였다. 떡 진 머리카락이란 말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머리카락이 엉겨 붙어서 시루떡 같았다.
목욕도 한 달에 한 번 하면 자주 하는 편이었다. 일 년에 몇 번만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뜨거운 물은 없지, 집마다 목욕탕이 없지, 목욕탕이 있다고 해도 바깥 기온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두 달에 한 번 공중목욕탕을 이용했다. 두세 시간씩 했다. 때를 불리고 때를 밀고 비누칠하고 때를 밀고 또 비누칠을 했다. 피부가 벗겨지도록 밀어서 뻘겠다가 피딱지가 때밀이 수건처럼 까슬까슬하게 앉았다. 빨래도 했다. 목욕탕 주인이 빨래한다고 난리를 치고 우리는 주인 몰래 빨래에 비누칠을 했다.
작은 이모는 멋쟁이였다.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다. 잡지에 실린 연예인 사진을 가지고 가서 이대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시장 골목에 양장점이 여러 개 있었다. 양장점 중에서도 유리창이 넓고 마네킹이 서 있는 양장점에서 맞췄다.
이모는 머리도 자주 바꿨다. 대팻밥처럼 구불거리게 파마를 하거나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길게 떨어지는 파마가 유행이었다. 작은 이모가 자주 한 머리는 우쭈마끼와 소르마끼였다.
석유난로에 쇠막대기를 뜨겁게 달궈 머리카락을 안으로 말았다가 밖으로 말았다가 딱딱딱딱 쇠막대기 소리가 나면서, 연기가 나고 머리 타는 냄새가 구수하니 군옥수수 같았다.
새로 맞춘 양장이랑 홀랑 까뒤집은 머리를 한 이모는 잡지에 나오는 인형인 줄 알았던 배우가 살아서 튀어나와 있었다. 겨울엔 목이 긴 까만 부츠가 종아리랑 딱 맞아서 아침마다 부츠를 신느라고 애를 썼다. 부츠도 이모 종아리에 맞게 맞춘 구두였다. 새까만 스타킹 같았다.
작은 이모는 그렇게 뭐든 맞춰 입고 엘리베이터 운전을 하러 고층빌딩으로 출근을 하고 퇴근 후 팅팅 부은 다리를 벽에 올렸다. 그렇게 받은 월급으로 내 용돈을 챙겨주고 중학교 학비를 대줬다.
근데 엄마는 멋 부리는 이모를 시기 질투해 눈을 바로 안 뜨고 흘겨봤다. 이모는 옷을 새로 사면 감췄다가 몰래 입고 나갔다. 그런 엄마가 이해가 안 돼 이모가 하고픈 말을 대신 해줬다.
“이모가 번 돈으로 사는 건데 엄마가 왜 뭐라고 해? 내 학비도 대 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