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설탕 시루떡

by 산너머

11. 흑설탕 시루떡)


시장통에서 세 번째로 이사한 집은 첫 번째 골목 2층 방이었다. 어설프게 지은 적산가옥이라 연탄아궁이가 아닌 다다미방이었다. 2층에도 주인이 살았고, 주인집도 연탄난로로 난방을 해결했다.


대문을 열고 시멘트 계단 두 개를 올라 신발을 벗고 1층 마룻바닥을 지나 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면 왼쪽 방이 우리 집이고 오른쪽 방은 가방공장이었다. 주인은 가방공장 사장이었다. 주인집도 2층에 살았는데 방 두 칸에 네 식구가 살았다. 엄마와 같은 연배로 보이는 부부와 아들과 딸. 아들은 군인이었고 딸은 나와 동갑이었다.

방은 좁은데 창문이 넓어서 겨울엔 얼음 바람이 창문 틈 사이로 거침없이 지나다녔다. 창문을 열면 나무로 대충 잘라서 이어 만든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원두막 같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가 부엌이었다. 비닐도 치지 않은 완전 바깥이었다. 수도는 주인집 부엌과 호스로 연결해 썼다. 주인집이 물을 쓰고 있으면 기다렸다가 쌀을 씻고 양치질을 했다. 세숫대야만 한 네모난 개수대가 겨우 달려있고 하수구는 호수로 연결돼 1층 마당으로 바로 내려갔다.


1층은 단독으로 세를 사는 집이 있었다. 방 세 칸에 비를 안 맞는 부엌과 마당이 있었다. 우리 집 부엌 아래로 그 집 마당이 훤하게 보였다. 1층 아줌마도 남편 없이 혼자 살았다. 흑설탕에 콩을 버무려 시루떡을 아침마다 쪄서 작은 리어카에 실어 시장통에서 팔았다. 오후 5시만 되면 다 팔고 빈 시루만 마당 수돗가에 담겨 있었다.


뻘건 함지박에 맨날 파는 게 다르고 다 팔아도 겨우 밥이나 먹고사는 우리 집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노점상도 위아래가 있고, 하루 버는 돈이 달랐다.

흑설탕 시루떡 아줌마 목소리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마시고 줄담배를 피운 것같이 걸쭉하고 포댓자루처럼 배포도 커 보였고 어쩌면 주인집보다도 현금이 많을 것 같았다. 우리 엄마도 저런 장사나 하지…. 흑설탕 떡 실컷 먹고…. 돈도 많이 벌고…. 딱 한 번 먹어봤지만 무지 달고 맛났다. 아침마다 올라오는 달콤한 냄새 때문에 반찬도 없는 밥이 더 먹기 싫었다.


어느 날 1층은 야반도주했다. 주인집 아저씨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해서 1층을 내리락 오르락했다. 월세도 몇 달 안 냈고, 시장통에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 돈도 떼먹고 도망을 친 것이다. 그깟 떡 설탕 덩어리였어. 시금치나 된장찌개만 먹고사는 우리 집이 더 낫구나. 흑설탕 시루떡 아줌마랑 바꿨으면 했던 엄마에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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