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텔레비와 캐비넷 장롱)
텔레비전이 생겼다. 엄마가 노점상을 해서 가전제품을 처음 산 것이 텔레비전이었다. 연두색 14인치 델레비. 그땐 텔레비전도 티비도 아니고 텔레비라고 했다.
원래 공부에 흥미가 없던 나는 텔레비만 봤다. 원래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해 쉬는 날엔 큰 단추같이 생긴 채널을 돌리고 돌려도 야구만 했다. 할 수 없어서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토, 일요일 내내 보다 보니 야구 규칙을 알게 되면서 주말이 기다려졌다. 나는 강한 팀보다는 약한 팀에게 끌렸고 그러다 보니 삼미슈퍼 스타즈를 응원하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2층 다다미방에서 프로 야구를 보았다고 기억하는데, 1982년도에 프로 야구가 창단되었으니까 고교야구를 처음 본 것이 프로 야구랑 헷갈린 것 같다. 기억력은 길게 이어지다가도 동시상영 극장 필름처럼 끊어졌다가, 단편소설처럼 썼다가 장편으로 이어진다.
그때 텔레비전과 비슷한 시기에 산 가구가 캐비넷 장롱이었다. 철제 가구라 여닫을 때 옥수수밭에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가 났지만 넓어서 이불과 옷가지가 다 들어갔다. 색깔은 짙은 회색이었고 문에 다이얼 같은 게 달렸고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중간중간 잃어버린 퍼즐 조각 같아서 그림이 맞춰지지 않는다.
송찬이는 삐지면 장롱 이불 위에 올라가 황소 같은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송국이는 몇 날 며칠 말을 안 해서 쇠심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는 툭하면 신경질을 냈지만, 반나절이면 풀렸다. 텔레비를 보다 보면 화가 풀렸다. 가요와 야구를 즐겨봤다.
다 같이 이불속에 엎드려 주말의 명화를 봤다. 흑백이었지만 눈 부리부리하고 코 큰 서양 사람이 신기했고 그들의 자연환경과 생활방식이 흥미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