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당주산)
시장을 중심으로 이쪽 끝은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저쪽 끝은 번화가를 지나 고가도로가 있는 도로를 건너면 산길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오솔길은 점점 비탈지고 가느다란 물길을 따라 바위가 나오면 산언저리에 접어든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사람들 발길이 제법 있다. 등산이나 관광으로 오는 게 아니고 신을 모시는 허름한 재단이 많기 때문이다. 물가 위 큰 나무나 바위에 지저분하게 촛농이 떨어진 초가 놓여있고 색색의 천도 지저분하고 기분 나쁘게 묶여있다.
가까이 가기 싫은 허접한 무당집도 있고, 두어 사람 앉을 수 있는 찢어진 천막집도 있다.
하릴없이 집에만 있다가 날씨가 좋으면 산을 향해 저쪽 도로를 건너 물길 따라 몇 번 간 게 다다. 산 고랑 길 따라 내려온 물은 도화천으로 흘러간다. 올라갈 땐 산길로 올라가고 내려올 땐 도화천을 목적으로 걷게된다.
초여름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 한쪽 볼이 발그스레한 복숭아를 한 개 따 깨물면 시큼 떨떠름해서 두 번은 안 따먹다가 여름날에 무르익은 말랑말랑한 과육을 한입 깨물고 기겁을 했다. 벌레가 반으로 똑 잘린 것이다. 더운 날씨에 땀이 흐르고 벌레를 반으로 깨물어 진절머리를 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당주산에서 재넘이 바람이 불면 땀이 쏙 들어가 버리고 온몸은 과즙처럼 끈적거린다.
어스름해지는 밤이 오면 산꼭대기에서 평지로 부는 바람은 덥고 축축한 시장통을 식혀주고
골목을 앵돌아져 들어와 활짝 연 2층 우리 집 창문으로 껑충 들어온다.
당주산에 정화수를 떠 놓고 장사가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아픈 몸이 낫게 해 달라고 빌고, 자식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빌고, 좋은 데 취직해 달라고 빌다 보니 영험한 산이 되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변두리 시장통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굶지 않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돈을 모아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우리 집만은 그러지 못했다. 엄마가 당주산 신에게 빌러 간 적이 없어서 그랬나 보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으니 당주산 산신령이 화딱지가 나 뭔 재물을 주겠어.
나는 하릴없어서 당주산을 몇 번 간 게 다였으니. 꽃을 찾아갔고, 계절을 느끼러 갔고 복숭아를 한입 깨물러 간 게 다였으니 뭔 복을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