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작은 이모 루주)
작은 이모는 방을 얻어 독립했다. 시장 건너편 골목 안으로 꽤 들어간 옛날식 한옥이었다. 도화천과 가까웠다.
심심하면 작은 이모네를 갔다. 이모는, 이모가 출근해도 언제든지 아무 때나 와서 있으라고 했다. 결혼한 큰 이모네는 너저분했는데 작은 이모는 깔끔했다. 거울엔 손자국 하나 없었고 화장대 위 화장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공동 수도가나 그 주변 시멘트 마당에도 바가지 하나 흩어지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큰 이모부는 결혼할 때부터 직업이 없었고 본인도 먹여 살릴 겨를도 없이 이모의 열정에 못 이겨 결혼하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택한 일이 리어카 한 대를 사서 변학골 시장통 노점상이었다. 과일이든 채소든 그때그때 시세에 따라 도매상에서 떼와 팔았다.
큰 이모네를 가면 김치 반찬만 세 가지였다. 김칫국, 김치 볶음, 총각김치. 나는 김치 삼 형제라고 놀렸다. 먹기도 싫고, 방안이 어수선하고 이모부가 자주 집에 있어서 큰 이모네는 덜 가고 작은 이모네를 벌레 드나들 듯 기어들어 갔다.
벌레 종류가 16가지 크레파스 색깔처럼 많았다. 발 많이 달린 노래기, 발이 실처럼 가는 돈벌레, 자기가 들어와 놓고서 방구석에서 내보내 달라고 우는 귀뚜라미, 쥐며느리, 콩 벌레, 집게벌레, 노린재, 각종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것들, 파리는 뭐…. 두말하면 입 아프다.
외할머니가 그랬다. 이모들이 그랬나? 여름엔 황소 뒷다리만큼 벌레를 먹게 된다고.
무엇보다 싫었던 건 쌀벌레다. 쌀은 꼭 항아리에 넣어놨다. 근데 여름만 되면 항아리 밖으로 허연 벌레가 기어 나왔다. 작은 이모는 쌀을 박박 씻어 벌레를 죽여 둥둥 떠내려가게 해서 밥에 벌레가 안 보였는데, 큰 이모는 쌀을 대충 씻어 벌레가 다 보였다. 그래서 나는 큰 이모네에서 밥 먹는 것보다 작은 이모네로 밥을 먹으러 갔다. 작은 이모는 들기름을 발라 김을 맛깔나게 구워줬고 시금치나물도 작은 이모 손을 거치면 달짝지근한 맛이 돌았다.
화장대 위에 놓인 작은 이모 루주 뚜껑을 열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 번은 루주를 발라봤다. 작은 이모처럼 예뻐지고 싶었지만 별로 예쁘지 않고 어색했다. 거울에 비친 입술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다가 지웠다. 작은 이모가 퇴근해서 나를 보더니, 루주 발라봤구나 했다. 아니라고 잡아뗐다.
“뭘 아냐. 다 알아…. 하하하.”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운 루주 빛이 왜 볼에 가 붙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