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노점상

by 산너머

19. 리어카 노점상)


엄마는 함지박 노점상을 걷어치우고 큰 이모부처럼 리어카를 장만해 리어카 노점상으로 바꿨다. 기초자금은 많이 들지만, 함지박보다 벌이가 낫기 때문이다.

주로 파는 게 과일이었다. 여름엔 참외와 복숭아, 가을 겨울엔 사과와 귤, 봄엔 뭔 과일을 팔았는지 모르겠다. 1970년대에는 하우스가 발달하지도 않았을 테고, 하우스 재배는 난방비가 많이 들어가 없었을 텐데…. 비닐하우스가 개발된 초기는 1960년대부터였다고 한다. 난방장치가 없어서 딸기와 채소류만 조금 일찍 당겨 재배를 할 수 있었다. 그랬다. 봄 딸기가 나오기 전 감자나 시금치를 팔았다.


엄마는 새벽에 일찍 도매상에 나가 그날 팔 물건을 사서 리어카에 실어 놓고, 아침밥을 챙기러 들어와 우리를 학교에 보내고 장사를 나갔다. 저녁엔 잠깐 들러 저녁을 차려주고 또 장사하러 나갔다가 늦은 밤에 집에 왔다. 엄마는 항상 천으로 된 앞치마를 차고 있었다. 앞치마는 큰 주머니가 두 개 달려있었다. 한쪽은 지폐, 한쪽은 동전 주머니였다.

장사를 마치고 밤에 오면 앞치마를 풀었다. 초록색 만 원짜리 지폐와 천 원짜리 지폐가 섞인 걸 방바닥에 놓고 가지런하게 챙겨 돈을 셌다. 어느 날은 만 원짜리가 제법 많고 어느 날은 띄엄띄엄 섞여 있었다.

엄마 혼자서 아이 셋을 먹이고 학교를 보냈다.

함지박에서 리어카로 바꿨지만,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자식들이 커가기 때문에 학비가 많이 들었다. 항상 도장이 찍힌 일수 수첩이 앞치마 안에 있었다. 일숫돈을 빌려서 우리를 먹이고 재우고 가르쳤다.


노점상은 불법이었다. 함지박 노점을 할 때는 함지박만 들고 냅다 뛰어 골목으로 숨으면 됐는데, 리어카는 그럴 수가 없었다. 경찰이 노점상을 잡으러 하루에도 몇 번씩 방망이를 들고 가난하고 힘없는 노점상들에게 달려들었다.

엄마는 여러 번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 벌금을 물고 풀려났다. 함지박보다는 그래도 돈벌이가 나았지만, 고생은 더 심하고 뜯기는 돈이 많았다.

“개씨부랄 잡것들”

노점상 장사꾼들은 경찰들을 이렇게 불렀다.

나도 따라서 경찰을 보면 속으로 욕을 했다.

‘씨부랄 잡것들’

개를 좋아해 ‘개’자는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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